[한국인권뉴스 2008. 9. 23]
[칼럼] 성노동자들 주거생존권,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함께 가야
최덕효(대표 겸 기자)
"한국 매매춘의 문제는 여성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문제"지금 우리나라에는 두 무리의 순례단이 제각기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 무리는 2008년 1차년도 순례로 지난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했는데 11월 1일 충남 공주의 신원사까지 59일간 일정으로 오체투지 순례중인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순례에는 시민학생들과 종교계 동료들이 뒤따르고 있으며 19일차를 맞은 22일 현재 남원시를 지나는 중이다.
수경 스님은 불교계 시국법회추진위원장으로 서울광장 집회를 연출한 분이고 문규현 신부는 1989년 당시 방북한 임수경을 위험을 무릅쓰고 데리고 휴전선을 넘은 분이다. 이들은 순례에 앞서 조계사에 피신 중인 촛불집회 수배자들과 KTX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음으로써 순례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해서 사람들은 고행으로 가득한 이들의 오체투지 순례를 두고 "광화문에서 물대포로 꺼진 촛불이 지리산에서 봉화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다른 한 무리는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6박7일 동안 여성인권활동가 45명이 전국 성매매 집결지를 돌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이른바 2008민들레 순례단이 펼치는 "성매매업소 집결지 폐쇄와 성구매 근절을 위한 행동"이다.
이 순례는 성매매특별법(성특법)이 시행된 지 4주년이 되는 9월 23일을 기념하는 성명을 통해 "성특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에서는 성매매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법 집행 의지가 부족한 결과라고 비판"한 것으로 보아 오직 집결지 폐쇄에 역량을 쏟고 있는 순례자들인 것 같다. 성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인 집창촌을 폐쇄하자는 이들의 이상한 순례는 역시 23일 청계광장에서의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위한 집회로 마감된다.
성특법이 시행된 그날이 오면 매년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재무제표 작성이 바빠진다. 경찰의 단속 결과 성매매 사범 000명이 검거됐고 이러저러한 형태의 업소가 각기 몇 군데 발각됐으며 성매매업소와 종사자 수가 전년대비 몇%가 감소했다는 등의 천편일률적인 발표가 주를 이룬다. 그나마 확실한 건 통계상 드러나는 '풍선효과'지만 주류여성계에서 이를 외면한 채 남성들의 각성과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는 것도 매년 변함이 없다.
그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성매매특별법은 과연 효과가 있기나 한 것일까. 성특법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이 법의 태생적 모순인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만나보는 게 빠른 방법이다.
미 부시 대통령도 그렇지만 가장 가까운 예가 성특법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예전 대만의 천수이벤 타이베이 시장이다. 그는 1997년 당시 공창제를 폐지함으로써 그간 공창으로 등록되어 있던 수백명의 여성들을 순식간에 실직 상태로 만들어 버린 쾌거(?)를 이룬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후일 자신의 이미지인 깨끗함(청렴)을 무기로 총통의 지위까지 올라갔다가 7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선거자금 잔액을 돈세탁해 해외로 빼돌린 부패혐의 등으로 축출됨으로써 위선자로서의 실체가 드러난 이중인격자였다.
반면에 소득도 있었다. 당시 대만에서는 천수이벤의 억압 덕분에 분노한 성노동자들과 후원자들로 구성된 조합인 코스와스(COSWAS)가 태동되고 이들이 아시아 성노동운동의 견인차 노릇을 하게 된다. 코스와스는 천수이벤이 공창제를 폐지한 것을 두고 "자신의 이미지 정치를 위해 성노동자들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천수이벤의 경우는 정치가들이 '매춘 금지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위선을 도덕으로 포장한 전형적인 예에 해당한다. 한국은 더 나아가 성특법에 주류여성계가 앞장섰으니 오히려 그런 정치꾼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준 꼴이다.
한편, 지난 19일 김용태 의원이 인터넷매체 기자들과의 만찬간담회에서 행한 발언이 화제다. 그는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해 "불교 문제로 궁지에 몰리니까 성매매 단속한다 어쩐다 해서 화제를 돌리려 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가) 살아남으려고 써먹는 전략들이 있지 않냐.. 어 청장이 살아나려고 지금 쇼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김 의원 말대로라면 어 청장은 천수이벤의 '이미지 정치' 같은 것을 황당하게 벌이는 주연이며 주류여성계는 주연 겸 조연으로 어 청장의 믿을만한 파트너인 셈이다.
김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찰력을 통해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찰지휘자의 생각이나 전략은 틀린 것"이므로 "이제 우리 국민들도 성에 대해 '커밍아웃'을 하고, 이를 입법부에서 진지하게 논의해서 풀어야 할 때"라고 밝혔는데 이는 금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성특법 대신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주장하고 있는 비범죄화나 합법화 공론화를 시사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이 부분에 관한 한 여야를 넘어 모처럼 입바른 소리를 했다.
평택에는 국내 유일의 성노동자 노동조합인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가 활동 중이다. 법외노조이긴 하지만 이들이 사측과 단체협약을 맺고 자신들의 생존권과 건강권(요즘은 집창촌 폐쇄와 재개발 움직임에 대항해 '주거생존권'이란 용어를 많이 쓴다)을 지키려 특정지역 선포를 주장하며 투쟁하는 것은 성특법이 가져온 썩 괜찮은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슈가 성(性)이라는 엄청 '뜨거운 감자'임에도 사회단체들이 자진해 연대에 나선 것도 진보진영의 아름다운 진정성을 잘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이주노동자· 간병노동자· 가사서비스노동자· 노점상· 재활용수집노동자· 성산업노동자 등을 '비공식노동자'로 보고 각국 정부가 이들의 안정되고 인간다운 노동의 광범위한 창출을 위해 경제적, 사회적, 법적, 정치적 시스템을 제공할 것을 촉구한 점이나,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ughts Watch)가 2007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국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 대체복무제 채택, 사형제도 폐지, 성노동자 권리 보호, 이주 노동자 처우 개선, 난민과 망명자 처우 개선을 권고한 것은 민성노련 성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을 운동으로 연결하는 소중한 존립기반이다.
아울러 비정규직과 비공식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현 시기 한국사회 양극화의 가장 첨예한 지점이며 성노동자들의 상황 또한 그 가운데 치열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이성숙 교수(한양대 사학과)가 여성학회 발표문에서 "한국 매매춘의 문제는 여성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문제"라고 규정한 것은 성매매를 남녀관계에서 계급 계층의 관계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매우 솔직하고 시의적절한 것이다.
이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KTX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집창촌 폐쇄 재개발로 위기에 놓인 성노동자들의 주거생존권 문제가 함께 가야 한다는 확대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특히 진보진영에게는 마음을 크게 비워야 가능한 만만찮은 화두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혈세만 낭비하고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을뿐 별 소득이 없는 성특법을 그래도 계속 방치해야 하는 건지 뜻있는 이들의 솔직한 성찰이 필요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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