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뉴스 [성性인권] 시리즈
유엔에서 여성권한척도(GEM)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기준이 나오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진 ‘여성주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과 남성을 철저하게 분리 사고하는 이론인 ‘급진적 여성주의’는 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이를 불문하고 세계 여성을 마치 단일한 집단처럼 상정함으로써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고 급기야 모든 성性들의 계급·계층적 모순 해결을 지향하는 사회변혁운동에 가공할 재앙을 불러왔다.
사실 어떤 사안에 대해 보수·수구세력과 진보진영이 같은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체불명의 무수한 ‘여성주의’에 관해 공통적으로 친밀도 높은 입장을 견지하거나 혹은 비겁하게 침묵함으로써, 마치 부르주아 정치권력이 스포츠·연예계를 이용해 철지난 ‘국가주의’로 인기몰이를 하듯 노동자민중들의 눈을 가리는데 치명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국인권뉴스는 다양한 성性들의 평등한 인권을 포함한 사회변혁운동 차원에서 ‘급진적 여성주의’를 비롯하여 관련 여성주의의 폐해를 깊이 우려하는 진보진영 일각의 목소리가 있음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이제 관련 문건을 시리즈로 실어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우선 진보진영에서부터 활발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다음은 두 번째로 <가자! 노동해방> 49호에 실린 조영태님의 글 “여성노동자는 어떻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가?” 전문이다. (편집부)
▒ 여성노동자는 어떻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가?
조영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회원)
올해 3월 8일은 102번째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투표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투쟁한 데에서 유래한 여성의 날이, 어느덧 102번째 생일을 맞은 것이다.
이렇듯 처음부터 노동자의 투쟁으로 시작된 여성의 날은, 줄곧 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날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도, 3월 8일 전개된 시위로 촉발되었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운동을 대중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던 한국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할 수 없게 금지시켜왔다. 한국의 여성들은 지난한 노동자투쟁을 통해서만 여성의 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여성의 날의 정신은, 세계에서나 한국에서나, 바로 노동자투쟁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6일 치러진 전국여성대회에서, 이러한 투쟁의 정신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반적인 대회의 분위기는 투쟁결의대회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대회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것은 이미 몇 년째 계속되는 일이었다.
노동자투쟁과 자기해방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의 주체화가 필수적이다. 스스로 삶과 정치의 주인이 되지 않고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결코 박살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투쟁과 분리된 이데올로기 투쟁, 예를 들어 반성폭력 캠페인, 여성빈곤퇴치 캠페인 등에 여성해방운동의 중추를 놓으려는 시도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여성들은 <집단적인 노동자투쟁>의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이, 또 가장 급진적으로 주체화하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노동자투쟁으로 한번 투쟁의 주체가 된 이는,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처음으로 투쟁을 시작한 여성노동자들이 그동안 자신에게 체화시켜온 ‘희생하고 순종하는 여성상’을 버리고, 질문하고 도전하는 ‘주체적 여성’이 되어가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실제로 외박이라곤 한 번도 안 해봤을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은 점거파업을 통해 처음으로 가정의 굴레에 완전히 갇혀 버린 ‘아내, 엄마’가 아닐 수 있었다. 파업 내내 남편과 가족의 만류에 시달려야 했던 여성노동자들은, 파업이 고조되자, 자신의 투쟁을 발목 잡는다면 이혼할 수도 있다며 더 이상 남편과 가족에 종속되지 않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요즘 폭넓게 조직되고 있는 환경미화노동자들도, 투쟁의 승리 후 성취한 자신감으로 가사의 일부를 남편에게 부담시키는 주체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처럼 여성노동자들이 참여하는 하나하나의 노동자투쟁은 여성해방을 이룩할 가장 단단하고도 폭넓은 대오가 형성되는 객관적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집단적인 노동자투쟁과 연결해서 여성해방의 문제가 제기될 때 여성노동자들은 이것을 가장 철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불의와 억압, 착취, 차별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 속에서 여성차별에 대한 저항정신 또한 가장 잘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집단적 노동자투쟁과 연결될 때,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을 없애고자 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남성노동자들의 진심어린 지지를 끌어내기 쉽고 ‘자본에 맞선 남성, 여성 노동자들의 일치단결’이란 계급적 관점에서 제대로 흡수되고 소화될 수 있다.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페미니즘과 같은 위험한 경향과 분리되면서 노동계급적 여성해방의 관점을 갖게 되는 것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여성해방에 도달하는 직선로
이것은 여성해방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바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폭넓게 조직하는 것, 이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것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해방의 길에 들어선 여성노동자들은 성차별과 성폭력을 잔존시키는 모든 종류의 장애물(그것이 가부장제든 관료주의든 상관없이)에 기꺼이 맞서 싸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노동운동의 대의를 해치는 가장 위험한 해악 중 하나임을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집단적인 노동자 투쟁의 경험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여성노동자들. 사진은 여성 노동자 권리찾기 DAY 행사를 하고 나서 집회 마무리로 풍선을 날린 환경미화노동자들/ 참세상 사진)
▒ 출처: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발행 <가자! 노동해방> 49호
[한국인권뉴스 2010.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