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성적 갈망 넘어 '동지적·우애적인 결합'이어야 - 마광수

2010·07·07 
 

[편집부]

나는 인간의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요소 가운데 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과 결혼이 일치되는 것에는 절대로 반대한다. 결혼에 의해서 성욕을 해소시키기 보다는 차라리 자위행위로 성욕을 배설시키는 편이 낫다. 결혼은 그만큼이나 무서운 위험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성性인권] 결혼과 성

마광수 (연세대 교수, 국문학)


성충동의 빈도가 가장 높은 시기는 남자의 경우 13세에서 19세까지이다. 그러니까 대학 1학년이면 대개 19세 전후이므로 성충동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예전보다 한결 윤택해진 경제상태 때문에 식욕의 충족에 주력하는 시간이 적어지게 되었으므로, 성욕의 충족에 대한 미칠 듯한 갈망이 생겨 쉽사리 결혼에 대한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청춘기 남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성적 충동을 경험한다. 항상 변함없이 찾아오는 관능적 갈증을 실제적 오르가즘으로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초조감에 따른 심한 마음의 동요로 괴로워한다. 그러나 사회의 기존 도덕률은, 인간의 생애 가운데 성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무정하게도 그들의 성욕을 짓밟아 버린다. 사회윤리는 혼전에 성적 욕망이 실제로 실현되는 것은 부도덕하므로, 그것은 일단 죄라고 선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결혼만이 성욕의 합법적 배출구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청소년의 자살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사실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 이유를 추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겉으로 나타난 이유가 성적 부진이나 가정불화 등에 대한 비관이라 할지라도, 그 깊은 내면에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록 여자가 남자보다는 성적 충동의 정도가 얕다고는 해도, 여러 가지 정보매체를 통해 막연하나마 성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이 혼전 순결이 엄격하게 강요되는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은 '강간 콤플렉스(rape complex)'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간 콤플렉스란 겉으론 강간 당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잠재의식적으로는 강간당하기를 원하는 심리를 가리킨다. 강간은 여자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므로 순결을 빼앗긴 데 대한 책임이 여자에게는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 "난 아무 죄가 없어요. 그저 당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특별히 관능적 상상력이 발달한 여자의 경우, 현실적 도덕률과 본능적 욕망 사이에 적절한 타협을 이루면서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강간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강간의 형태와 절차로 이루어지는 것이 요즘 마담 뚜들에 의해 맺어지는 일종의 정략결혼인 것이다. 부모의 의사에 의해, 또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결혼이 이루어진 뒤, 여자는 결혼 후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불행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보장 비슷한 것이 성립되는 셈인데, 이런 보장을 얻기를 바라는 심리는 강간 콤플렉스와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결혼 초야에 신부가 남자의 성행동에 강한 충격을 받아 금세 파탄에 이르는 수도 많고, 또 설사 결혼생활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계속적으로 정신적 외상(外傷)에 시달리게 된다. 합법적인 결혼절차에 의해 신혼의 첫날밤을 보냈다할지라도, 여자 쪽에서는 자기가 단지 강간당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결혼에 이르게 되면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성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 결혼이 조혼이든 만혼이든 간에, 결혼의 동기가 '성욕으로터의 신경질적인 탈출'에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부정한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남녀 모두가 섹스 때문에 결혼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리지 못한다.


      
      △ 마광수 그림 '함께 가요'


그래서 부부는 24시간 어떻게 재미있는 성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하며 날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부부들은 얼마 안 가 시시하고 따분하고 권태로운 생활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된다. 그 주요 원인은, 부부의 성생활에 있어 남자 쪽에서는 자기가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모시키고 있다는 데 대한 본능적 공포감을 느껴서이고, 여자 쪽에서는 성적 오르가즘이란 것이 생각보다 쉽사리 찾아와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하기도 쉽다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적용된다.

사실 현재의 불합리한 결혼제도 아래서의 원만한 부부생활이란 성적 관계로서 보다는 동지적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원칙적으로 성은 종족 보존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므로 매일같이 기가 막히게 황홀한 오르가즘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동물처럼 이따금씩 주기적으로 성적 교섭을 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그러나 결혼 전에 워낙 성적으로 굶주려 왔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여기에 불행한 결혼생활의 원인이 있다.

현대의 결혼제도를 졸지에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급진적인 성해방주의자들은 가족제도 자체를 파괴해버릴 것을 주장하고 한다. 하지만 거대한 문명의 그늘 아래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인류가 가족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쉽사리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완전한 성해방이란 어쩌면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혼에 임하는 자세를 바꾸는 일이다. 치밀어 오르는 성적 갈망 때문에 결혼할 것이 아니라 동지적 또는 우애적인 결합에 의해 결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나 빠른 나이에 결혼을 감행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지금 내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생각의 근저에 '성적 집착으로부터의 탈출 심리'가 내재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중매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이라고 해서 그들의 결혼 동기가 더 순수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흔히들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는데, 그 '사랑' 역시 '성욕'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의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요소 가운데 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과 결혼이 일치되는 것에는 절대로 반대한다. 결혼에 의해서 성욕을 해소시키기 보다는 차라리 자위행위로 성욕을 배설시키는 편이 낫다. 결혼은 그만큼이나 무서운 위험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충동에서만이 아니라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스스로 처한 암담한 상황으로부터의 도피심리 때문에 결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결혼한다고 해서 모든 상태가 호전되지는 않는다.


      
      △ 마광수 그림 '기다림'



결혼한 사람들이 독신자보다 휠씬 더 오래 산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원만한 결혼생활을 했을 경우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거꾸로 평생 독신생활을 한 예술가들이나 성직자들이 훨씬 더 건강하게 장수를 누린 사례도 얼마든지 많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욕을 어떻게 배출시키느냐에 있다.

성에너지는 인간의 생명 현상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그래서 불교의 밀교(密敎) 교파나 도교에서는 성에너지의 흐름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만 있다면 완벽한 성인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학설은 책에 따라 아주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즉 '다양한 형태로 성을 즐기되 결코 성교 자체에는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한 형태란 성적 욕구를 정신적 구도행위로 승화시키는 것을 비롯해서 예술 창작에의 몰두 또는 자위행위 등까지를 두루 포함한다.

특히 도교에서는 성교를 하더라도 절대로 정액을 사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 의학 이론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이론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정액을 오랫동안 사출시키지 않을 경우 전립선염 등의 방광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로서는 도교에서 말하는 '접이불루(接而不漏)'는 범인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이고, 적어도 '접이적루(接而適漏 : 성교를 하되 적당한 때에 사정하라)'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어쨌든 성교 자체에 대한 집착이 결혼 이전이나 결혼 이후의 성생활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지적 결혼이나 우애적 결혼이란 그러니까 성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결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넓은 의미의 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거나 각자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존중해 주는 결혼'을 가리킨다.

확실히는 잘 모르겠으되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전 생애에 걸친 계약결혼은 바로 이러한 형태가 아니었나 싶다. 사르트르는 보봐르 말고도 많은 여인들과 교제했으며 보봐르 또한 그러했다. 또 1970년대에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된 <에마누엘 부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데, 에마누엘과 그의 남편은 동지적 부부애를 지속시키면서 각자의 성적 취향을 존중해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윤리 풍토로서는 용납하기가 곤란하지만 그 책에서는 에마누엘의 동성애까지도 남편이 이해하고 협조해 주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정신적 결합'이란, 사실 육체적 결합보다 더 중요하다. 다만 흔히들 이 '정신적 결합'이라는 말을 성과 완전히 유리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될 뿐이다. 진짜 정신적 결합은 '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결합까지도 포함하는, 보다 융통성 있고 자유로운 개념으로 쓰여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기 전에는 정신적 결합이요, 결혼한 후에는 육체적 결합이라는 통념이 젊은 남녀 사이에 통용되고 있어 그들의 애정생활을 불행에 빠뜨리고 있다.

연애기간 증에 아무리 변태적인 내용의 것일지라도 각자의 관능적 취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만이라도 있다면, 무모한 결혼으로 인한 비극은 상당히 방지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아이를 하나만 낳거나 또는 아예 낳지 않겠다고 하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성교 중심의 성으로부터의 탈피'는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마광수 저 <성애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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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권뉴스는 ‘성해방운동’ 실천의 일환으로, 그동안 선진적인 성담론을 주장하다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도 외면당한 채 제도 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바 있는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웹2.0' 교류를 진행 중입니다. 그의 철학적 세계관이 유교적 성문화에 침윤된 한국사회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진보적 성담론의 공론화로 변혁의 한 축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사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