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에 대항하는 투쟁은


볼셰비키에 대한 투쟁으로 시작된다 (3)


오토 륄레, 1939


 

5.


의회주의 문제에서도 레닌의 역할은 정치적 발전을 저해하고 대중의 혁명적 해방을 위협하는 부패한 정치제도의 상투적 옹호자로서 되풀이 된다. 급진 좌파는 모든 형태의 의회주의를 부정하고, 의회선거를 거부하며, 의회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레닌은 매우 열정적으로 의회에 참여하고, 선거와 의회활동에 노력을 다한다.


급진 좌파는 의회주의를 역사적으로 낡은 것으로 선언했다. 의회제도는 선동무대로서의 가치를 이미 오래 전에 상실했으며, 지도부나 대중에게 위험한 부패의 근원지이며, 합법적인 개혁에 대한 환상으로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의식을 잠재운다. 또한 의회는 분쟁 시에 반혁명의 기구로 발전한다. 이러한 이유로 의회제도는 타파되어야 하며, 의회제도가 아직 가능하다면 방해해야 하며, 의회제도 전통이 대중의 의식에서 아직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부정되어야 한다.


이에 반하여 레닌은, 자신의 반대 의견에 대한 지지자를 찾기 위하여,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낡은 제도를 구분하는 교묘한 술책을 써서 모면한다. 그는 의회는 역사적으로는 낡은 제도지만 -이러한 이유로 부정되어야 하며- 정치적으로는 아직 낡은 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실천의 측면에서 의회를 고려하여야 하며, 의회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얼마나 천재적인 술책인가? 이 술책은 모든 문제에 교활하고 기만적인 분열의 이중성을 허용한다. 자본주의 역시 역사적으로는 낡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 낡지 않았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혁명적으로 투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타협하여야 한다! 레닌 전술의 결과는 기회주의, 타협, 모든 정치적 문제들에서 추악한 정치적 거래이다. 군주제 역시 역사적으로는 낡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 낡지 않았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군주제를 철폐할 권리가 없다. 군주제와 타협하여야 하고, 군주제의 존속을 고려하여야 하며, 군주제의 권리와 특권에 대하여 군주제와 대화하고 협상하여야 한다.


레닌은 그렇게 할 것이다. 교회 또한 역사적으로는 낡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 낡지 않았다. 혁명가로서 레닌에게, 아직 대다수의 사람이 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대중 속에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기준이다. 따라서 교회 속으로 가야한다! 성직자들과 함께 사기를 쳐야 한다. 이것이 올바르게 이해된 혁명의 의무이다!


파시즘도 언젠가는 역사적으로는 낡을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낡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와 타협하고, 조약을 체결하고, 파시즘을 충실하게 모셔야 한다! 현재 히틀러와 모스크바와 베를린 간의 동맹을 협상하고 있는 스탈린은 레닌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볼셰비키 대표들과 선동가들이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사이의 우호관계가 유일한 혁명전술이라고 찬양하는 것을 곧 경험할 것이다.


의회문제에 대한 레닌의 입장이 그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서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진정한 시금석이다. 레닌의 혁명은 전적으로 부르주아 혁명이다. 다수를 차지하기 위한, 정부의석, 법안의 문고리를 잡기 위한, 강한 권력을 위한 투쟁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닌은 아직 의회선거를 더 많은 표를 얻은 후, 의회에서 강력한 분파를 형성하고, 표결에서 다수를 차지하여, 법안의 내용과 경향에 영향을 주고, 정치권력의 일부를 잡아채기 위한 것으로 믿고 있다. 레닌은 이러한 의회주의가 오늘날 단지 기만, 겉치레, 모조품일 뿐, 부르주아 국가에서 실제 권력은 전혀 다른 곳에 있으며, 부르주아가 좌파의 선거승리, 분파형성, 표결 성공에도 불구하고 의회 밖에서 자신들의 의지와 이해를 옹호할 수단과 방법을 아직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레닌은 의회에서 퍼지는 크레틴병, 즉 매수당하고, 겁에 질리고 수입에 겁을 먹은 지도자들에 의한 공공도덕의 오염이 대중에게 미치는 파멸적인 영향을 보지 못하였다. 파시즘 시대 이전에, 독일 제국의회에서 반동들은 법안이 거부될 경우 의회를 해산한다고 위협함으로써 모든 결정을 관철시킬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부르주아 의원들처럼 의회 해산과 그로 인한 세비손실을 두려워한 공산당 의원들은 거리낌 없이 모든 것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베를린, 모스크바, 이탈리아는 어떠한가? 여기나 저기나 의회에는 의견도 의지도 전혀 없이 독재자들의 수중에 있는 노예들만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독재자들은, 만약 노예들이 잘 훈련된 개처럼 짖거나 엎드리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권력을 무자비하게 파괴의 나락으로 몰고 가지 않겠는가?


분명히 의회제도는 타락하고 부패하였다. 그러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이전에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던 부패한 정치제도를 거부하게 하지 못하는가? 비합리적인 의회주의와 화해하는 과정, 부패가 냉소주의와 파시스트적 찬탈자와 폭력배의 경멸 하에 제공하는 비참한 연극보다는, 영웅적이고 혁명적인 행동으로 의회주의를 철폐하려는 결단이 대중의 정치적 의식에 더 유용하고 교육적으로 더 가치 있다.


레닌은 오늘 날의 스탈린처럼 이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레닌에게 지식의 종속, 의지의 오염, 의식의 혼란과 인간존재의 자기소외로부터 인간 해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개조, 환멸의 세계와 비인간적인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해방은 혁명의 본질적이고 진정한 과제가 아니었다.


레닌에게 혁명은 순전히 권력투쟁이었다. 그는 부르주아처럼 많고 적음, 지출과 수입,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였다. 이러한 장사꾼 같은 계산에서 레닌은, 당원 수, 유권자 수, 의회의 의석, 투표결과, 승리의 트로피 그리고 지배적 지위 등 단지 외형적인 것만을 생각했다. 그는 부르주아 의미에서 유물론자였다. 그의 유물론은 물질, 기계적인 사건들과 관련되며, 생동하는 인간과 생기 있는 인간의 행위와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레닌에게 변증법적 사고능력이 놀랄 만큼 부족하다. 의회는 레닌에게는 의회이다. 진공상태 공간의 추상적인 개념이다. 레닌에게 의회는 모든 국민들이나 모든 시간에서 언제나 동일하다. 자신의 반박문에서 스스로 지적하고 있듯이, 레닌은 의회주의가 수많은 발전단계들을 거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혁명 전략이나 전술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즉, 레닌은 혁명의 포기를 풍자적인 사회정책의 개혁주의로 포장하고 있는 부르주아 몰락시기의 낡은 의회를, 부르주아가 정치적으로 상승하던 초기시대의 의회를 통해 논박하고 있다. 이렇게 레닌은 정치적으로 위급한 경우에 부르주아들과 함께 ‘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를 결정하였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정치는 ‘혁명의 예술’이다.



6.


정치타협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간단히 다루어 보자.


독일 사민주의는 1차 세계대전에서 노동자의 사정을 부르주아에게 누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주의는 혁명을 상속했다. 이는 본질적으로는 독일 평의회운동을 파멸로 몰고 간 러시아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자신의 품속으로 굴러온 권력을 가지고 사민주의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민주의는 부르주아와의 동맹을 갱신했다. 당쟁을 중지하는 경향이 함께 하는 재건구호로 되돌아 왔다. 사민주의는 민주주의자들 그리고 성직자들과 권력을 나누기 위해 타협했다. 민족적 성과로서의 자본주의 부흥과 강화가 목표였다.


이러한 새로운 공공연한 배반에 대항하여 급진 좌파는 ‘반혁명과의 비타협’이라는 요구를 가지고 저항하였다. 따라서 매우 구체적인 경우가 문제이다. 특정한 시점에서 그리고 특정한 상황 하에서 출현한 특정한 문제에 대한 입장에 관한 것이다. 이 사안이 바로 변증법적으로 전형적인 본보기였다.


실제 문제 그 자체를 인식할 능력이 없는 레닌은 변증법적으로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일반문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단지 변증법적으로만 다루어야 할 요구를 주요요구로 격상시켰다. 일반적으로 중요하고 근본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레닌은 정치적 적대자들과 타협하는 것이 어떤 상황 하에서든 혁명적 의무라는 사실을 급진 좌파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급진 좌파에게 그의 커다란 논박폭탄을 발포하였다.


오늘 날 레닌의 저술에서 타협에 대한 문구를 다시 읽으면, 레닌의 비판적 토로와 스탈린의 레닌주의적 타협정책 결과들 사이의 비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탈린 치하에서 볼셰비키적 현실이 되지 않은 볼셰비키 이론의 대죄(大罪)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닌에 따르면 급진 좌파는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레닌의 원칙에 따르면 공산당은 타협하고, 히틀러 근위병의 편에서 조약에 반대하여 저항했어야 한다. 그에 의하면 라우펜베르크(Laufenberg, Heinlich)1)의 민족볼셰비즘은 “천인공노할 부조리”이다. 그러나 라덱(Radek, Karl)2)과 공산당은, 레닌의 원칙에 따라, 독일 민족주의와 타협했으며, 루르지방 점령에 항의한 쉬라그에터(Schlageter)3)를 민족의 영웅으로 찬양했다.


국제연맹은, 레닌에 따르면 “자본가 약탈자와 강도들의 무리”이며, 노동자들은 이를 끝장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스탈린은, 레닌의 전술에 따라, 이 범죄 집단과 타협했으며, 소련은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인민(Volk)" 개념은 레닌에 따르면 부르주아의 반혁명 이데올로기에 대한 양보이며 범죄 행위이다. 그러나 스탈린과 디미트로프(역자 주, 1935년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처음으로 인민전선을 주창) 역시 레닌의 원칙에 따라 쁘띠 부르주아와 타협했으며, 정치적 기형아인 ”인민전선“ 운동을 고안했다.


레닌에게 제국주의는 집중된 자본주의적 위험이며, 이에 대항하여 모든 반대 세력들을 동원하여야 한다. 그러나 스탈린은 레닌의 원칙에 따라 독일 제국주의와 곧 동맹을 맺어야 했으며, 마지막 남은 러시아 혁명의 성과들을 새로운 혁명이 두려워 히틀러에게 팔아먹었다. 더 많은 예와 증거가 필요한가? 역사적 경험들에 따르면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타협은 언제나 혁명의 약화를 야기하였다.


그리고 혁명의 약화는 언제나 혁명운동의 파멸을 가져왔다. 따라서 혁명에서 타협은 언제나 파멸정책이다. 독일 사민주의가 타협으로 시작한 것은 히틀러에게서 끝났다. 레닌이 코뮤니즘의 ‘소아병’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사이비 코뮤니즘의 ‘노인병’으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계속)

 

 


1) 라우펜베르크(Laufeberg, Heinlich, 1872-1932)는 독일의 이론가이다. 철학과 역사를 공부 한 후, 맑스와 엥엘스를 학습하기 위하여 런던에 장기간 체류하였다. 1904년 독일 사민당에 가입하였다.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민당의 분열에서 그는 급진 좌파의 편에서 전쟁을 거부하였다. 1919년 독일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같은 해에 처음으로 “민족 볼셰비즘“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독일 공산당에서 제명된다.


2) 라덱(Radek, Karl, 1885-1939)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정치가로 폴란드, 독일 그리고 소련에서 활동하다가 스탈린에 의하여 시베리아로 유형된후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1차 대전 이전에 이미 레닌의 노선에 합류하였으며, 레닌의 스위스 망명 시절을 함께 보냈다. 1920년대 라덱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성원이었으며, 스탈린과 트로츠키 간의 권력싸움에서 트로츠키 편에 섰다. 1927년 당에서 제명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지만, 다시 돌아와 “자기비판”을 통하여 당의 노선에 무조건 복종 할 것을 천명한다. 하지만 라덱은 1937년 트로츠키의 지지자로 다시 법정에서 10년의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지며, 그곳에서 1939년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3) 쉬라그에터(Schlageter, Albert Leo, 1894-1923)는 1차 대전에 참전한 독일의 군인이자 의용군이다. 1923년 프랑스와 벨기에가 루르지방을 점령하자 전투적으로 대항하다가, 프랑스 군사법정에서 간첩죄와 여러 번에 걸친 폭탄테러로 교수형을 당한다. 처형 후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우파를 넘어 거의 모든 정파로부터 민족의 영웅 또는 순교자로 칭송되며, 나치에 의하여 “제 3제국의 첫 번째 군인”으로 선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