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진행된 노동해방실천연대 발족 10주년 사회주의대토론회의 발제문 및 자료집입니다. 관심있는 동지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발 제 문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성과와 문제점

 

이 영 수

노동해방실천연대 회원,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장

 

 

들어가며

 

사회주의 운동의 강화와 사회주의 정당건설을 기치로 발족한 해방연대(준)이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10년의 기간 동안 사회주의 세력은 힘 있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당건설도 1차적으로 실패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왜 이렇게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있는지 솔직하게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흐름도 거의 없이, 힘겹게 각개약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사회주의의 내용이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런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러 가지 사회현상의 대부분이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세계적으로는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내고 투쟁하려는 흐름―예를 들어 점거운동(월가, 스페인), 새로운 세력의 형성(시리자 등)―은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 또한 더 이상 이러한 상황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계급적 자각이 확대되고 있지만, 사회주의 운동은 민주대연합 등 자유주의, 소부르주아 세력에 종속되는 경향을 힘 있게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상황 자체는 사회주의 세력에게 불리하지 않다. 하지만 주체의 준비정도는 여전히 미약한 상황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이전에도 여러 토론과정에서 지적되었던 부분이지만,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솔직하게 평가하고,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성과

 

(1)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칭하던 이들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 운동을 청산하고 떠나갔다. 이는 한국의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자신의 취약한 사상적 기반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청산주의에 맞서면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노동자 대중투쟁에 함께 하면서 사회주의의 내용을 옹호해 나갔다.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급속한 후퇴를 막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조건에서 기본적인 주체세력을 유지했다는 역사적 역할을 하였다.

 

2000년대 이후 대중정당으로 성장했던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한다’라는 강령 내용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4년 당내 논쟁을 통해 사회주의 성격을 더욱 강화 발전시켜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사회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주장의 가능성을 열었고, 이후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조직들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는 한국사회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는 상황이었다. 1997년 IMF사태 이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정권은 신자유주의를 더욱 심화시켰고, 노동운동은 더 이상 전투적 조합주의만으로 상황을 헤쳐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내부에서 열린우리당의 2중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반자본주의 정당의 성격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강화되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대중적으로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조선일보조차 자본주의 4.0을 이야기할 정도로 자본주의 문제는 대중화 되었다. 정부 고위 관료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실패했다고 얘기하는 상황이 되었고, 대안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방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록 소수지만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2) 사회주의의 내용을 재정립하는 기초를 다졌다.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사실이 확산되고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한 이후 그 대안이 사회주의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 사회주의 당건설을 위해서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함께 사회주의의 핵심 내용을 재정립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여러 사회주의 조직들이 이러한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해방연대는 ‘한국사회주의 노동자당 강령초안’을 마련하면서, 구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사회주의의 상을 제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부각되고 있는 여성, 생태, 소상인 문제 등에 관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정리하는 성과도 있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은 ‘우리의 입장’, ‘대중행동강령’ 등을 통해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선동해 나갔으며,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 공동준비위원회(이하 사노위) 또한 강령초안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사회주의 정당의 강령초안 등 토론을 촉발시키는 시도가 진행되었지만, 아쉽게도 사회주의자들간의 공동 강령토론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의 핵심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계속됨으로써, 한국의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확대 강화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3) 사회주의의 핵심사상을 대중적으로 선전보급하는 활동이 확대되었다.

 

사회주의 내용의 재정립과 함께 사회주의의 핵심사상을 대중적으로 선전보급하는 활동이 진행되었다. 해방연대의 경우 ‘사회주의의 핵심을 학습하자’는 취지로 ‘노동자 정치학교’를 개최하였고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사적유물론, 임노동과 자본(잉여가치론), 국가론, 정치경제투쟁론, 사회주의 혁명론, 전략전술론, 조직론, 사회주의노동운동사 등 사회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을 복원하고 이를 실천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상당수 활동가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하지만, 사회주의의 핵심적 내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선전활동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방연대 뿐만 아니라 여러 조직에서도 학습, 교육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사노련의 경우도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교육책자를 제작발간하였고, 사노위 또한 회원 학습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처럼 예전보다 교육과 학습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재구축해야 하는 이 시기에 얼마나 충분하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은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선진노동자, 활동가들 사이에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내용을 학습하고 토론하는 운동이 대규모로 확대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하자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규모를 가진 사회주의 교육, 학습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사업들조차 사회주의자들이 공동으로 진행 못하면 사회주의 확대가능성은 낮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투쟁사례, 정세교육을 넘어 사회주의 핵심내용을 바탕으로, 정기적이고 규모있는 선전보급 활동이 시급하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문제점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운동의 후퇴로 인해 임금, 고용문제에 대처하는 것도 급급한 상황이 되고 있다. 전투적 조합주의가 한계로 드러나자 이를 대치하는 실리주의, 개량주의, 노사협조주의가 강화되었고, 현재는 이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과 분노가 커져있는 상황이다. 상당수 활동가들이 조합주의 활동 속에서 스스로를 좌파, 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있으나, 현장내에서 사회주의 활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다. 발제자 스스로도 그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직의 명칭은 사회주의지만 사회주의 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1) 여전히 조합주의와 단절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적 실천이 너무나 부족하다.

 

스스로의 경험으로 볼 때, 자신이 사회주의자이고 조합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사회주의라고 하면 무언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과격한 것 같고,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많기 때문이다. 뒤풀이 자리에서나, 교육에서는 사회주의를 간혹 얘기하곤 하지만, 자신의 활동 정체성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을 말하는 경우는 없지만 현실에서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전에 해방연대는 사회주의 실천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치투쟁체를 제안하고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해방연대는 자본주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문제는 자본주의다’라는 것을 가지고 집회에서 현수막도 들고, 독자적인 거리강연이나 선전전을 하자는 제안을 하고, 사회주의 핵심을 선전학습하는 교육을 대대적으로 진행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세력이라면 총파업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논의되어야 하지, 선전전, 교육 등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조합주의 활동으로는 현재의 주체상황을 극복할 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위력적인 정치총파업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노동운동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교육선전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의 핵심을 학습하고, 자본론도 학습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자. 사회주의 세력이 각개약진하는 것보다, 이런 부분들은 함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실업, 연금, 해고의 문제 등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연결시키는 대중선전전을 공동으로 진행해 나가자. 이런 것들이 축적되어야 활동가 스스로 사회주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그렇게 될 때라야 사회주의 정당건설의 초동주체가 대규모로 형성될 수 있다. 현장투쟁만으로 사회주의 주체세력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런 방식으로는 소수 활동가들이 사회주의 조직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 진 몰라도, 사회주의 당건설의 주체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위기의 본질은 자본주의 모순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사회주의 노동운동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정당건설을 위한 과제를 설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회주의 조직들은 이러한 주체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당건설일정을 올렸다 연기하기를 반복하거나, 조직의 확대가 바탕이 되어야 당건설이 가능하다는 인식으로 사실상 조직확대를 위한 현장투쟁 결합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2) 사회주의 세력의 종파적 태도가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공공연히 사회주의를 주장했던 세력들이 등장했다는 긍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년간 실천과정에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발전에 부정적인 태도들도 드러났다.

 

사회주의 세력으로 계급정당을 추진해왔던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은, 민투위 소속 회원들이 2005년 현대차 비정규직투쟁과정에서 류기혁 열사를 부정한 것에 대해, 조직적으로 명확히 징계하지 않고 흐지부지하게 처리하면서 관료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관료주의에 오염되어 있음을 보였다. 비정규직 투쟁 초기였던 당시 이 문제가 정확하게 처리되었다면 운동적으로 중요한 교훈을 남겼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써 그 여파는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힘이 해산되고 다수가 사회주의 노동자당 준비위원회(이하 사노준)로 전환되었다.

 

2008년도에 결성된 사노련은 사노준과의 공동토론회를 통해 류기혁열사 논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노준과 함께 사노위를 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사노련은 노힘의 관료적 변질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사노위를 결성한 것은 사회주의 세력으로서 불철저함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노련은 사노위를 제안한 주체였지만, 그 일부가 이행전략,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현장분회에 대한 입장 등 강령마련과정에서 먼저 탈퇴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이러한 무원칙한 이합집산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대중적 평가를 접할 수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종파적 태도라 말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체적 과정에 대해 명확히 평가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나서더라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2012년 대선이후 사노위는 또다시 해산을 하고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위원회(이하 계급정당추진위)를 구성하였는데, 사회주의정당건설을 추진하고 준비하다가 또다시 계급정당으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식으로 또다시 후퇴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조직으로 매우 문제가 많은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로는 사회주의 정당을 절대 건설할 수 없다. 같이 해야 할 활동가들조차 당을 건설한다는 것인지 의심이 가게 만드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자본주의 모순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강화하고 사회주의당 건설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동안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공공연하게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내용을 재정립하면서 선전보급활동을 이전보다 확대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주체세력의 상태는 취약하다.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가 하는 평가를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평가할 때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해방연대는 조합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사회주의자들의 불철저한 태도가 중요한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 교육의 강화 사회주의 정치실천의 강화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조합주의, 경험주의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교육한다고 바뀌냐’,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선전전으로 되냐고 푸념하는 활동가들도 있지만, 이것 없이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전진할 수 없다. 규모있고 공개적인 사회주의 기본교육과 토론을 강화하는 것, 해고, 실업, 연금 등 문제에 대해 자본주의를 폭로하고 사회주의적 대안을 선전해 내는 것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고 불철저함을 극복해야 한다. 스스로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대한 확신이 없이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