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단평] 필요한 미투운동,  파쇼적 미투정치 2018·02·28 19:20
 

최덕효(한국인권뉴스 대표겸기자)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 감독 낸시 마이어스, 2003)에서 해리와 에리카의 러브스토리 한 토막.

자유로운 만남을 추구하는 60대의 부유한 독신남 해리(잭 니콜슨)의 상대는 이른바 영계들이다. 이번에도 역시 미모의 20대 여성, 이름은 마린(아만다 피트).

그러나 우연찮게 해리가 마린의 엄마 에리카(다이앤 키튼)와 조우하게 되고 순간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한다. 해서 졸지에 연적이 되려는 순간 딸이 쿨하게 양보함으로써 사랑은 이어진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특정 여성에 구속당하기 싫었던 해리가 에리카에게 매료되자 스스로 두려움을 느껴 6개월 간 잠적한 것이다.

냉각기를 갖게 된 해리가 궁금증으로 찾은 지난날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문전박대한다. 그녀들의 삶은 이어지고 있었고 오히려 자신을 찾은 해리가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요즘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미투 (MeToo) 이야기.

언론에서는 ‘태풍’이라고 부른다. 태풍은 일정 시간 후 소멸되므로 미투가 일시적 위력에 그친다면 틀린 비유가 아니다.

그러나 미투는 ‘쓰나미’(지진해일)에 가깝다. 해일이 일어나 해안에 도착한 바닷물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다음 해일이 밀려오는 일이 되풀이 되므로 미투의 ‘지속성’을 상징하는데 적합하다. 쓰나미는 모든 걸 쓸어버린다.

왜 ‘지속성’인가. 미투는 인간의 본성을 건드렸다. 성性은 중장기적인 감정이거나 일시적인 탐닉이거나 서로를 유혹함으로써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미투는 일체의 시효와 무관하게 모든 보따리를 풀어놓자고 강제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명백한 성범죄조차 인간의 자연스런 ‘유혹’의 영역에까지 종종 침범하게 된다. 따라서 ‘젠더성폭력’ 문제를 풀자며 선의에서 출발한 '미투운동'이 순식간에 ‘미투정치’로 돌변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미투는 정부의 중심 정책과제로 신속하게 상정되었다. ‘권력형’ 성폭력을 매개로 출발한 미투가 연예계를 거쳐 일반 사회로까지 확대되는 중이다.

이미 전국의 그 많은 성폭력 신고센터에 이어 신규기관의 증설을 예고하고 있다. (급진)페미니즘 교육도 곧 뒤따를 것이다.

피해자들은 치유되어야 하고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미투운동’이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아울러 사안의 미확인 상태에서 양자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고로 우리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 피해자와 가해자 대신에 피해호소인과 가해지목인으로 불러야 한다. 

다른 한편, 논란의 소지가 많은 ‘피해자 중심주의’로 진술을 절대화하고, ‘2차 가해(피해)’로 상대의 입을 봉한다면 이는 민주적 법치가 일체 필요 없는 파쇼적 ‘미투정치’가 된다.

미투를 두고 프랑스 지성계가 전체주의를 우려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