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라비 칼럼]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를 말하다 2018·07·30 16:58
 

오세라비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


이 구호는 오늘날까지 페미니스트들이 내세우는 중심 표어다. 얼핏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니.

페미니스트들이 이 슬로건을 중심 표어로 채택하기 전, 1968년에 일어난 ‘68혁명’ 당시 학생운동, 청년저항 혹은 청년반란으로 일컫는 신좌파(New Left)운동의 정치 담론이 등장하면서 내세웠던 사뭇 낭만적 구호가 바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였다.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68운동

신좌파의 슬로건을 1970년 초 급진적 페미니즘이 재등장해 여성운동을 이끌면서 채택한 것이 바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다.

신좌파운동과 함께 청년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발생한 급진적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의 출현은 신좌파와는 같은 편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신좌파가 페미니즘을 적극 지지하며 페미니즘 확산에 기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다.

뿌리를 같이 하므로, 1970년 초 등장한 급진적 페미니즘이 대학가로 둥지를 옮긴 후에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신좌파세력도 마찬가지로 대학가로 퇴각한 후 대학 운동권의 주요 담론을 이끌고 있다.

68혁명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학생운동, 흑인 민권운동, 그리고 페미니즘을 낳았다. 이는 1980년대 들어서며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로 개념이 규정됨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 정치로 이어지고 있다.

개인의 정체성, 개인적인 것은 사실은 모두 정치적인 것으로 연결돼, 정치활동, 사회운동은 나의 정체성의 표출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자유 낙태는 개인의 권리이자, 당사자의 선택이며 여성 개인의 일인 동시에 다른 여성들의 문제이며 이는 곧 정치적 실천 활동으로 이어진다.

68혁명으로 시작된 신좌파운동의 핵심 슬로건은 ‘자유’다.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신좌파운동, 정체성 정치가 등장했는데, 자유주의는 분리주의와 중복된 의미의 자유주의적 노선으로 뻗어 나갔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우파와 신좌파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동거가 시작된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1950년대를 기점으로 중산층이 번영하던 시기였다. 미국 백인 여성들은 대학에 진학해 고학력 중산층 주부가 됐고, 남자들은 각자의 직업전선에서 활약했다.

청년들의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고, 이때부터 개인의 자유, 정체성의 자유에 천착하며,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개인의 자유 구가와 한 편으로 반항적인 문제의식을 사회적 행동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운동으로 돌아가 보면, 페미니즘 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미국 페미니스트의 대모로 불리는 베티 프리단이 대표적 인물이다. 베티 프리단은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주부로 고학력에 교외의 고급 저택에 살며 풍족함을 누렸다.

                      
                      △베티 프리단(출처 위키)

베티 프리단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내 삶의 전부인가?”라는 정신적 공허함에 몸부림쳤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저서가 1963년에 출판된 <여성의 신비>다. 이 책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여성은 가정에서 신비로운 존재로 남을 것이 아니라, 가정은 안락한 포로수용소이니 뛰쳐나가자, 부엌 바닥에서 일어나! 를 외치며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베티 프리단의 일련의 정치적 행보는 미국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그녀는 최초의 전국 여성 조직인 NOW(National Organization of the Women), ‘전국여성협회’를 출범시켰다.

말년에 이르러 베티 프리단은 “가정은 안락한 포로수용소”라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절절히 후회하며 가정으로 복귀했다.

1968년을 기점으로 개인 정체성의 중요한 의미 부여는 정치적 담론이 됐고 인종 문제, 동성애, 이민자 문제, 여성 문제가 부각돼 성차별, 동성애 해방, 여성 해방운동이라는 정체성 정치 활동으로 전개됐다.

개인적인 것은 곧 정치적인 문제이므로 나의 정체성을 반영하기 위한 정치 활동이 됐다.

<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THE ONCE AND FUTURE LIBERAL)>의 저자 마크 릴라의 말을 빌려보자.

“여성인 나에게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 활동이 곧 정치적 활동이라는 말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그 말은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에 나설 동기를 제공한다. 1970년 초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중심 사회의 계급구조에 대항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를 여성해방 슬로건으로 사용하였다.”

신좌파의 정체성 정치는 하나의 사안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개인주의가 강화된 시대에 더욱 개인적으로 분리돼 나아갔다. 신좌파운동이 남긴 유산은 개인적인 정체성을 더 깊게 넓게 분산시켰다.

페미니즘은 성의 구분을 없애는 ‘성 중립 사회’가 목표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최종적으로 성별의 구분이 없고, 성별 관점을 초월한 성 중립(Gender neutrality)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페미니즘의 목표, 성의 구분을 없애는 ‘성 중립(Gender neutrality) 사회’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두 개의 성별을 거부한다. 그 때문에 많은 젠더 정체성 옵션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71개의 젠더 옵션이 있다. 또 이미 63개의 젠더 정체성 성별이 있다. 호주에서는 33가지 성별 정체성을 나타내는 용어가 있다. 넌 젠더, 넌 바이너리, 데미젠더, 데미보이, 데미걸, 에이젠더, 인터젠더, 앤드로지니 등.

사람에 따라 불확정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젠더 정체성의 나타내는 용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젠더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성 식별 용어집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개인의 젠더 정체성을 알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어쩌면 “나는 이러이러한 젠더 정체성을 가졌다”라는 표식을 달고 다녀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정체성 우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비전과 공동체 의식을 밀어내고 더욱 개개인의 자아만 중요시하게 만든다. 현시기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광풍은 사회 구성원의 비전과 책임 의식보다 정체성 정치로 돌진해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추세에 맞게 페미니스트들 가운데 요즘 부쩍 나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무엇이라며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젠더 식별 용어로 설명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음을 봐도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기준이 사라지고, 아니 그 기준을 없애버리는 시대, 기준을 잃은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 지은이 오세라비 (본명 이영희)
칼럼니스트, 사회운동가. 국내 최초로 분리주의적 페미니즘의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여성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책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혐오에서 연대로. 2018) 의 저자.  
여성운동을 거쳐 복지국가 제대로 알기 학습모임을 주도했으며, 복지국가만들기운동과 사회연대정신 실천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체에 서평, 사회 이슈에 대한 칼럼과 특히 페미니즘 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 사회연대포럼 공동대표이다.


▒ 출처: 리얼뉴스 http://re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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