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단평] 진보의 '폭망' 앞에서 신영복 선생을 생각하다 2018·09·11 19:25
 

최덕효(한국인권뉴스 대표겸기자)


천하대란의 시기.. 시장에서 팔아먹을 게 어지간히 동이 났는지 이젠 성까지 분리한 혐오상품들이 트렌드로 자리 잡아 연일 상종가를 기록한다.

예전에 우리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중대 문제가 대두될 때 ‘시국회의’를 연다거나 ‘재야인사’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혜화역에서 광화문에서 곳곳에서 난리가 나도 시국회의는커녕 물어볼 때가 마땅찮다.

각자도생에 급급한 침묵의 시절.. 잡설만 횡행하는 기레기들, 우리 사회가 대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생각이 제자리를 맴돌 땐 지난 시기 중요한 증인을 호출해 탐색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먼저 떠오르는 증인은 고 신영복 선생. 선생에게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은 우리 사회가 온통 혼란의 도가니에 빠질 것을 충분히 예견했으면서 왜 손을 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은 2015년 4월 선생의 발언.

“제가 출소(1988년)해서 후배들 몇을 만났는데, 같은 공간에서 나하고만 얘기하지, 자기들끼리는 말을 안 해요.. 민주화투쟁이 열어놓은 공간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여러 사회운동단체들이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거기서 많은 정파들이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무주공산에 자기네가 먼저 깃발 꽂으면 선점할 수 있겠다’ 하는 대단히 기회주의적인 사고로… 아, 얘들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제가 일찌감치 했어요.”
(신영복 교수 녹취록 다시 보니…“청년시절만은 잃지 마라” 중에서)

선생은 문제의식을 느낀 지 27년 뒤에 그렇게 회고는 했으나 정작 그들이 ‘운동’을 빌미로 벌이는 전횡 앞에서는 침묵했다. 주로 개인적인 글쓰기와 강의에 몰두하며 안온한 삶을 보낸 것이다.

이른바 진보진영은 그의 예상대로 무주공산에 깃발 꽂는데 집중했는데 그 대표적인 분야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환경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반일운동이었다.

특히 부문운동 중에서 가장 성공작?이 된 여성운동은 90년대 중반 이후 성 적대 분리주의를 기조로 하는 급진페미니즘으로 악성 진화해 오늘날 메갈워마드를 낳게 된다. 또한 여성계가 주축이 된 반일운동으로 전국은 동상으로 넘쳐나고 있다.

아울러 여성할당제에 힘입은 파워엘리트 여성들의 성정치가 통치행위의 중심에 자리한 가운데 성 혐오를 부추기는 온갖 법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는가 하면, ‘과거청산’ 작업이 무려 120년 전인 동학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이와 같은 진보의 ‘폭망’ 앞에서.. 고인을 칭송하거나 유난히 관대한 우리네 관습에 비추어 굳이 선생을 들추어낼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 내에서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여느 지식인들처럼 시대정신의 직무유기로부터 선생 또한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