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코로나19 글로벌 반혁명의 본질에 대하여

 

                                                                             

                                                                                    ( * 각주를 보려면 위에 첨부한 PDF 파일을 참조하시오)


 

 

이 장에서는 현 글로벌 반혁명의 특징들과 그 방향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 전에 먼저 우리가 이러한 시도의 한계를 십분 인식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당연히 이 같은 초기 단계에 세부적인 성격규정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주도적 부르주아지 써클들 자신들이 여전히 향후 진행방향을 놓고 전면적인 토론 중에 있다. 더욱이 향후 대대적인 계급투쟁이 불가피하며, 이 계급투쟁이 이후 발전방향에도 의당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객관적인 경향들을 볼 수 있는데, 세계정치의 지난 사태발전에서 비롯한 경향뿐만 아니라 현 자본주의 위기의 본질에서 비롯한 경향이 있다. 모두 일정한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향후 계급투쟁의 도전과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객관적 경향들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1920년대 스탈린주의 사상 단속 이전 소련의 주도적인 맑스주의 철학자 아담 데보린은 맑스주의자는 무엇보다도 전반적 발전 방향을 가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로 기본 동역학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이는 혁명가들은 정치적 방향 상실로 빠져버릴 것이다.

막 열린 새 시기에 전개되고 있는 부르주아 정치의 발전에 대해 성격규정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위에서 언급한 한계를 의식하며 우리는 자본주의의 현 발전방향을 포괄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a) 독점 강화

b) 국가자본주의

c)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d) 배외주의

이러한 방향들에 대해 보다 세부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일반적인 평가를 먼저 해보자. 우리는 이 네 가지 특징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1929년 수준의 경제적 파국은 불가피하게 대대적인 독점화 과정을 가속화시킨다. 큰 물고기가 많은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특히 그 큰 물고기가 배고플 경우에는 말이다. 깊은 공황기에 대자본가들은 국가로부터의 더 많은 도움과 규제를 필요로 한다. 대자본가들은 잠재적으로 반란 기세에 있는 대중에 대한 강한 주먹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외의 자본가 라이벌들에 대한 강한 주먹도 필요하다. 이 모든 동역학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나라들의 독점 부르주아지를 배외주의적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방향으로 몰아간다. 당연히 이 과정은 각국 상황 및 계급들 간 투쟁의 진로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서로 다른 속도를 취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과정이 일반적인 추세로 나타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독점 강화와 국가자본주의

 

첫째, 위에서 우리가 보여주었듯이, 현 자본주의 세계경제 침체는 그 골이 너무도 깊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소부르주아 자영업 층과 나아가 중소 자본가들의 파산이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임을 뜻한다. 많은 나라들에서 일찌감치 나오고 있는 보도들이 이를 확인해준다. 이 과정은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자유시장나라들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지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강타하면서 1분기에 46만 개 이상의 중국 기업들이 영구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것은 한편,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한층 더 커질 것임을 의미한다. 즉 이 위기의 중요한 결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독점화에 더 큰 도약이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훨씬 더 적은 수의 제국주의 국가 독점체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초과이윤을 전유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독점체가 시장과 가격을 조종할 훨씬 더 강력한 지위를 점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결과와 함께 중요한 정치적 결과도 있다. 상당 부분의 소자본가들 및 소부르주아 제 계층의 위기, 고통, 절멸은 부르주아 체제의 지배 엘리트 독점자본가들 및 그들과 연계된 정치가들·장군들 가 지금까지 자기 지배체제의 한 기반이 되어온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층을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필사적인 상황으로 내몰리는 소자본가와 소부르주아 제 계층은 급진화가 불가피할 것이고 좌우 어느 쪽으로든 방향을 틀 것이다. 전위가 노동자계급을 전장으로 이끄는 데 성공하면, 전위는 이런 층들에게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층들은 종교적 반계몽주의나 파시즘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둘째, 현재의 거대한 붕괴 때문에 불가피하게 자본가 국가가 경제생활에 대규모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 장에서 개괄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미 대대적인 경제 지원 프로그램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2008-09년 대침체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제한된 성격의 국가자본주의적 개입이 단순히 재현되는 수준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번 경제파탄이 훨씬 더 혹독하기 때문이다. 3차 대공황은 불가피하게 많은 은행과 업체의 파산 임박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 국가가 대대적으로 개입하여 그러한 기업을 인수하거나, 타 기업과의 합병을 강요할 것이다.

더욱이 세계화의 붕괴를 고려할 때 국가들 간의 경쟁적 다툼이 따라서 국가들의 경제적 역할도 증가할 것이다. 여기에는 관세, 수출 지원, 외국의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규제 등이 있다. 리처드 하스 같은 부르주아 주류 사상가들도 이러한 상황 전개를 인식하고 있다. “세계무역은 부분적으로 회복되겠지만, 그 중 더 많은 부분을 시장보다는 정부가 관리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신자유주의의 정치적·경제적 파산을 보여주는 것으로, 부르주아 진영의 영리한 관측자들도 이미 인정하고 있다. 물론, 좌파 자유주의자들과 케인스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 모델이 결국 자본주의를 망칠 것이라고 항상 선언해왔고, 따라서 그러한 파탄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가자본주의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당연히 이러한 논자들은 현 사태로 자신들의 옳음이 완전히 확인되었다고 보고 있다. 가디언의 글로벌 환경 편집자 조나단 왓츠는 이렇게 썼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정치적 문제인 위험을 어떻게 분산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의 절박성을 일깨웠다. 기후 위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이 문제에서도 특히 부적합한 체제로 입증되고 있다... 이 팬데믹의 결과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가장 파멸적인 실패 중 하나로 판명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코빈 식의 노동당 노선을 지지하는 영국의 저명한 진본 언론인 폴 메이슨도 현 글로벌 위기를 새롭고 매우 다른 자본주의 모델을 실시할 기회로 보고 있다. 알 자지라 홈페이지에 게재된 최근 논평에서 메이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좌파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성장 정체와 높은 부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책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해 왔다. 자동화로 인해 괜찮은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희소한 일자리가 되면서 국가가 시민들에게 보편적 소득을 지급하는 정책, 이러한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국가에 직접 대출해주는 정책, 이윤으로 운영될 수 없는 공공 필수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주요 기업들을 대규모로 공공 소유로 전환하는 정책. 아주 드물게 과거에 이러한 정책들이 투자자들에게 제안됐던 경우 보통 반응은 정중히 머리를 가로 젓는 것이거나, 아니면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를 목격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격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죽일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여기 있다. 보편적 지급, 국가 구제금융, 국가 부채에 대한 중앙은행의 재원 조달, 이 모든 조치가 그 주창자들조차도 충격을 받을 정도로 급속도로 채택되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긴급 조치들은 언제나 상상 가능한 일이었다. 2015년 이래로, 나는 우리가 새로운, 매우 다른 자본주의 모델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고령화 인구 지원에 따른 경제적 비용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기후 변화의 위협 때문에라도 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는 모든 것을 단기적인 차원 안으로 가져왔다. 2020년대 중반에 이로부터 생겨나오는 자본주의는 이미 수백억 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항공사와 호텔 체인을 국유화시킨 자본주의일 것이다. 그리고 선진경제국들의 정부 부채는 GDP의 평균 103% 수준인 현재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얼마나 더 높을지는 모르는데, 왜냐하면 GDP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금 글로벌 자본주의가 파탄나면서 점점 더 많은 수의 주류 부르주아 논자들도 더 이상 신자유주의 모델이 자본주의 체제를 운영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상당 규모의 국가자본주의적 규제·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글로벌 포트폴리오 전략가로 복무하고 있는 마셜 아우어백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서 탈피하여 국가 산업정책과 함께 국가의 보다 강력한 역할로의 전환을 주창하는 기사를 연재했다. 그는 최근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으로선, 우리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에 소재·부품 등을 공급하는 해외 업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말하는 소위 리던던시 [redundancy; 실제로 필요한 요소보다 더 많은 요소를 준비함으로써 보다 안정성을 유지하는 운영 기법]를 우리 시스템에 더 많이 구축함으로써 공급망 취약성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전시 기간이나 대규모 경제난 (대공황 같은) 때 나라가 일하는 방식 포괄적인 정부 주도 행동 (오늘날의 지배적인, 그리고 점점 더 구식이 되어가는 경제·정치 신학의 많은 부분에 역행하는) 과 유사한 방식으로 국가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일관성 있는 국가산업정책의 부활 말이다. 글로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글로벌 경제가 덜 필요하다. 민간부문/ 공공부문 균형이 후자 [공공부문]에 유리하게 변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의 다국적 기반/ 일국적 기반도 마찬가지로 후자에 유리하게 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로나19는 우리의 경제발전 모델 전체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이기보다는, 그저 글로벌 자본주의가 겪는 일련의 재난 사슬 속의 또 하나 재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아우어백은 최근 발표한 또 다른 논설에서 그러한 보호주의적, 국가자본주의적 정책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서, 현대 기술이 그러한 변화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팬데믹은 새로운 지배 모델 여러 면에서 코로나19 이전에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이 세계를 향해 작전 개시에 들어가는 디데이 같은 것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모델의 중심에 있는 선진 혼합시장경제국들은 그들의 시장에 더 밀접한 첨단 생산에 투자하는 것 대비, 국제 공급망을 유지해나가는 데 따르는 보건 위험과 증가하는 군사적 비용을 따져보고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제품 수출을 늘려갈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노동 가격 우위를 바탕으로 국제 공급망에 스스로를 얽어맴으로써 발전해온 수십 개 경제국들은 새로운 과정에서 점점 더 제외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파워를 둘러싼 경쟁은 탄소 에너지 자원에서 벗어나, 첨단기술 경제 모델을 떠받치는 데 아주 중요한 광물 및 부품 소재의 채광·제련 쪽으로 중심축을 점점 더 옮겨갈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수개월, 수년 동안 석유를 넘어선 "전략 비축물""국가 비축사업"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이들 기술 [인공지능, 비 탄소 에너지원, 나노테크놀로지 등과 같은 - 인용자]의 집합적 힘은 한 나라의 국경이나 공동 시장 밖에서 더 값싼 노동을 찾는 매력을 그리고 이들 기술이 수반하는 비용도 감소시킬 것이다. 이러한 방향을 따라 앞서 나가고 이러한 형태의 생산에 필요한 광물들에 접근할 수 있는 나라들은 그들의 기존 소비 시장에 연결되어 번창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새로운 국제 수출입 사슬로 이어질 동력을 구축할 것이다. 이러한 추세선들은 소매업과 서비스산업의 쇠퇴를 가속화할 것이다....

많은 유럽 나라들과 중국, 한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 나라들은 이러한 전환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들이다. 엄격한 국가 주도 자본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이들 나라들은 어떻게 국가의 역량과 방향이 더 한층 산업 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미국이 충분히 그것을 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만약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온존한다면, 그리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오프쇼링 [사업 해외 이전]으로 미국은 코로나19에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오프쇼링은 또한 세계화에 대한 광범위한 재검토도 야기했다. 한때 경제 민족주의자들의 이단(異端) 피난처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다시 존경받을 만한 것이 되었다. 이 팬데믹이 아니었더라도 미국 경제 모델의 토대는 실패하여 급속히 쓸모없는 것이 되고 있었다. 질문을 해보자. 세계가 탈 탄소 미래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는 금융, 보험, 부동산 같은 지대 추출 부문이나 할리우드 영화, 스마트폰 앱, 또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같은 점점 지엽적인 것이 되고 있는 부문의 우위를 털어버리고 무리의 선두 집단에 합류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코로나19는 더 치명적인 질병의 전조에 불과한 것인가?”

 

현 위기 시작 전에 이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을 대신하여 국가자본주의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자문위원이자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바 있는 크리스토퍼 조이 호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20199월에 이렇게 썼다.

 

시장 신호를 존중해 반세기 이상 번영을 견인해온 전통적인 자본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확실히 국가주의다. 그리고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민간 시장가격을 직접 관리하는 일에 뛰어든 이후로는 거기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했다. 변덕스러운 투자자들의 기분에 운명을 내맡기기보다 운명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 유혹적이다. 그냥 시진핑한테 물어보라. 아이러니하게도 현 세계무역 소동을 놓고 볼 때 서방과 중국이 그들이 신봉하는 경제정책 면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진 적은 없다.”

 

우리는 지배계급 서클들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방향전환 논의를 맑스주의자들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몇몇 부르주아 논자들을 폭넓게 인용했다. RCIT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유일한 또는 가장 반동적인 형태로 여기는 많은 좌파 그룹들과 이론가들의 중대한 오류를 항상 비판해왔다. 두 가정 모두 틀렸고 이것은 이제 더욱 명백해졌다. 이는 20세기 자본주의 전 역사에 걸쳐 명백하게 드러난 바다. 1930년대에 다양한 형태의 에타티즘 (국가주의)이 있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뿐만 아니라 북유럽 나라들에서도 시행된 국가자본주의적 규제·조절이 그것이다. 이후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서유럽은 물론, 그 밖의 나라들에서도 자본주의 경제에 국영기업 부문이 꽤 많이 있었고, 복지국가 및 국가경제계획도 시행되었다. 195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한 동아시아 나라들에서도 국가자본주의적 규제·조절이 큰 역할을 했다. 일부는 (한국이나 대만과 같은) 친미 군사독재였고, 다른 일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태를 유지했다 (일본).

이러한 종류의 국가자본주의적 규제는 1980년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 상당 부분 축소되었지만, 1989-91년 이후 자본주의가 부활한 옛 스탈린주의 국가들에서 재기 무대를 가졌다. 중국 (및 베트남)과 같은 나라들에서 특히 그랬고, 러시아와 일부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에서도 정도는 좀 덜하지만 그랬다. 실제로 이들 국가 중 가장 강력하고 성공적인 국가인 중국은 오랜 패권국 미국에 도전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강대국이 되었다.

더욱이 과거에 우리는, 극심한 정치적 위기의 시기에는 지배계급이 국가자본주의적 규제로 방향 전환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도 보아왔다. 예를 들어, 1914-18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필요성으로 인해 나라의 모든 경제적 자원을 집중시키고 규제하는 것이 절실해졌던 것이 그런 경우다. 이를 전쟁 사회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노동자운동의 개량주의적 다수파는 이러한 사태발전을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라고 환영하며, ‘국 제국주의에 대한 사회배외주의적 조국 방어의 구실로 삼았다.

 

 

모델로서의 중국?

 

각종 개량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중국 모델과는 대조적으로 자본가들을 위한 부의 축적에 가장 잘 봉사하기 때문에 서방 부르주아지가 선호하는 모델이어 왔다고 주장했다. RCIT가 거듭 지적한 바와 같이, 이것은 진실이 아니며, 모든 입수 가능한 사실들과 중국 측뿐만 아니라 서방 측 공식 소식통에서 나온 사실들과도 모순된다. 여기서는 몇 가지 사실을 가지고 이 테제를 증명하는 데 국한하고 넘어갈 것이다. 독자들은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발표한 다양한 문서에서 더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스탈린주의-자본가 정권은 비상하게 급속한 자본축적 과정을 가능케 했다. 그 결과, 사회적 불평등과 자본주의 기업 및 슈퍼리치 억만장자의 수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예를 들어, 2018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인구의 부자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1980년에서 2016년 사이에 7%에서 14%로 두 배가 되었다. 보고서는 중국을 전 세계 상황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단지 이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이 유럽 37%, 중국 41%, 러시아 46%, 미국-캐나다 47%,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 브라질 · 인도 약 55%에 각각 달했다. 우리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인 중동에서는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61%를 차지하고 있다.”

이 결과는 중국에 사회주의가 존재한다는 스탈린주의 신화를 허물 뿐만 아니라, 30년 전까지도 중국과 러시아에 자본주의가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점을 염두 한다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 이 두 나라에서의 불평등은 기본적으로 유럽의 오랜 자본주의국들보다 더 높고 북미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이러한 추세를 확인하는 것이 또 있는데, 지난 몇 년 사이에 중국이 가장 많은 (중국 자료에 따르면), 또는 두 번째로 많은 (서방 자료에 따르면) 수의 억만장자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본사가 있는 <후룬 리포트> 2019년 호는 중국이 억만장자 658명으로 4년째 세계 1위를 달리면서 584명인 미국보다 74명 앞서 있다고 밝혔다.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인 자본주의 독점체들을 살펴볼 때도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발행한 글로벌 순위표 <포춘 글로벌 500> 2019년 호에 따르면 중국은 이제 오랜 패권국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4 참조).

 

 

4. 글로벌 500대 기업 상위 10개국, 2019

나라                                   기업 수                       점유율 (%)

중국 (대만 포함할 경우)       119 (129)                    23.8% (25.8%)


미국                                   121                           24.2%


일본                                    52                                  10.4%


프랑스                                31                                    6.2%

 

독일                                    29                                    5.8%

 

영국                                    17                                    3.4%

 

한국                                    16                                    3.2%

 

스위스                                14                                    2.8%

 

캐나다                               13                                     2.6%

 

네덜란드                            12                                     2.4%

 

 

세계 2000대 기업에 대한 순위표인 이른바 <포브스 글로벌 2000>도 같은 그림을 보여준다. 5에서 우리는 지난 20년 사이에 중국의 기업들이 다른 독점체들 대비 급부상한 것을 볼 수 있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보면, 미국이 여전히 최강국이지만 그 비중은 776개 기업(38.8%)에서 565개 기업(28.2%)으로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중국의 점유율은 급격히 증가하여 이제 중국이 강대국 중 넘버 투가 되었다.

 

 

5. 국가별 세계 2000대 기업, 2003년 및 2017(Forbes Global 2000 List)

                  2003                                      2017

       기업 수   점유율                기업 수    점유율

 

미국    776      38.8%                           565         28.2%

 

중국     13          0.6%                          263         13.1%

 

일본    331      16.5%                            229         11.4%

 

영국    132       6.6%                             91           4.5%

 

한국     55       2.7%                             64           3.2%

 

프랑스  67      3.3%                               59           2.9%

 

캐나다  50      2.5%                              58           2.9%

 

인도      20      1.0%                               58           2.9%

 

독일      64      3.2%                              51           2.5%

 

 

요컨대, 중국 국가자본주의 모델은 사회주의와 전혀 관계없고, 반대로 신흥 제국주의 독점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강력히 봉사하는 모델이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굴기와, 특히 현 코로나19 위기 동안 중국이 과시한 실력은 서유럽을 포함한 여타 자본가 정부들에게 중국 국가자본주의를 하나의 모델로 점점 더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 제국주의 정부들이 중국 모델을 모방하기를 원한다거나 모방할 수 있다거나 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두 지역의 역사적 배경도, 계급세력 관계도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점은 신자유주의 모델도 마찬가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결코 같은 유형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존재한 적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확실해 보이는 것은, 더욱 더 많은 수의 부르주아 정부들이 깊은 위기가 가하는 압박과 중국 모델이 준 인상 하에 상당히 더 많은 국가자본주의 정책 및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의 요소들을 실시하는 쪽으로 점점 더 기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사태발전이 맑스주의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실제로 레닌은 이미 한 세기 전에 그 최종 단계 제국주의 시대 에서 자본주의의 자태 변환은 독점자본주의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화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세기의 진행 과정이 국가와 독점체의 구체적 관계는 세계적·일국적 발전에 따라 변화할 수 있고 실제로도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자본가 국가와 독점체의 긴밀한 협력과 융합은 이 시스템의 핵심 특징으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가 깊은 위기와 쇠퇴/부후화 상태에 있는 현재와 같은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배외주의적 국가 보나파르트주의로의 결정적인 전환

 

셋째,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태발전과 관련하여, 우리는 배외주의적 국가 보나파르트주의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범주는 두 가지 상호 연관된 특징들을 담아내고 있다. 하나는 국가 억압기구의 증강과 자본가 국가 최고기관들의 집행력을 강화하는 쪽으로의 전환이고,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민족주의 및 특히 배외주의로의 방향 전환이다.

후자부터 말하자면, 가속화하는 강대국들 간 패권쟁투는 불가피하게 이미 배외주의가 팽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3차 대공황을 배경으로 더욱 창궐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두고 서로에 대한 비난을 증폭시키는 상황을 보고 있다. 트럼프와 백악관은 반복해서 중국 바이러스운운하고 있고, 베이징은 유행병을 우한에 가져온 것은 미군일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그러나 배외주의의 부상은 미국과 중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새롭게 부각되는 국경 문제와 각 지배계급이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국내에서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더욱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오는 시기가 위기로 점철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억압기구 강화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들이 글로벌 록아웃을 비롯한 그 밖의 여러 제한사항 준수를 통제하기 위해 거리에 많은 경찰들을 풀고 있다. 많은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정부가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용한다. 나아가 유럽과 북미의 제국주의 정부들도 그러한 국내 작전을 위해 군대를 배치하고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그 밖의 유럽 나라들에서는 수만 명의 군인들이 민간인들로부터 임무 인계를 받았다. 46일 열린 EU 국방장관 회의에서는 이미 군 작전 조율이 논의되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증대되는 군국주의화에 대한 우리의 경고는 결코 과장된 불안 유포가 아니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부르주아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위험평가 문서에서 코로나19 위기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극적인 결과에 대해 경계령을 발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사망률이 높아지고 경제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광범위한 폭력적 무질서가 격화되어 상당 병력의 미군 배치가 요구된다.” 이는 현 위기의 결과로 내란의 가능성이 이미 지배 서클들에서 현실적 옵션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러한 사태발전은 주민 감시의 대폭적인 증가와 결합되어 있다. 많은 정부들이 현재 원거리 통신망을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다. 중국은 주민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돕는 인공지능과 같은 현대 기술 발전의 선진적 모델이다. 서방 정부들은 중국 따라잡기에 애쓰고 있다. 이런 국내 감시조치를 위해 드론과 소형 이동로봇을 거리에 배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보다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우리가 <시국선언>에서 밝혔듯이, 일거에 '빅브라더'가 와버렸다. 공공연하게 말이다. 자본가 국가가 이를 감추려는 어떠한 시도도 할 필요 없이 말이다. 이 거대한 감시 기술이 곧 전 세계적으로 뉴 노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의회를 비롯한 그 밖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들을 희생시키면서 자본가 국가 최고기관들의 집행력을 강화시키는 과정도 본다. 정치적 위기 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진면목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부르주아 국가는 그것의 민주적형태에서조차도 자본가계급 독재의 구현이라는 점을 맑스주의자들은 항상 강조하였다. 1919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1차 대회에 제출된 테제에서 레닌이 천명한 다음과 같은 내용은 여전히 유효타당하다. 부르주아 문명,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계급적 본질을 설명함에 있어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맑스와 엥겔스가 최대의 과학적 정밀함을 가지고 정식화시킨 사상을 표현했다. 즉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도 부르주아지에 의한 노동자계급 탄압을 위한, 한줌의 자본가들에 의한 근로인민 탄압을 위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상 말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그 같은 본질에 대해서는 부르주아 진영의 영리한 논자들도 의식해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유명한 우익 보수 정치 이론가인 칼 슈미트는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라고 적절하게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정치체제의 전화가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루 같은 인물들을 기능장애로 만든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런 사람들은 전략적 사고 능력이 결여된 반동 어릿광대와 모험주의자가 한 인물 속에 결합된 자들이다. 그들은 이념적 총자본가로서의 국가 (맑스)를 대표하고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오히려 국가기구의 많은 부분을 상대로 끊임없는 파괴적인 전쟁을 벌인다. 그러한 인물들이 우리 앞에 있는 시기처럼 도전적이고 격동적인 시기에 자본가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전면 봉쇄 조치를 취한 현 국가비상사태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가 <<뉴욕 매거진>>에 썼듯이 일시적인 그러나 무기한의, 전시 같은 국가 벙커화()” 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지속될 수도 없는 극단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록아웃을 가져온 현 국가비상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불분명하다. 바하우딘 포이지와 같은 일부 지정학 분석가들은 이러한 조치를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할 것을 제안한다. 바이러스가 주민 사이에 퍼지는 것이 완전히 멈추거나 백신이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의무적인 봉쇄 조치를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라도 철회하는 것은 현명치 못할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국가비상사태와 주민에 대한 통제 조치의 중요한 요소들은 장기간 동안 유지될 것이 분명하다. 팬데믹을 억제하고 예방한다는 명분을 엄폐물 삼아서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지배계급들이 주민 감시를 무기한 계속해야 할 필요성에 주민을 준비시키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이 더욱 더 가능한 것은, 자본주의의 쇠퇴/부후화가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문명의 포괄적인 위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대규모 생태파괴가 인류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그래서다. 급진적인 정치적·경제적 변화가 없다면 지구상의 인간 생명의 종말이 시작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이 동물의 생물권 파괴가 확대된 데서 비롯한 간접 결과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징표가 있다는 것을 명기해둔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이번과 같은 팬데믹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팬데믹들의 발병이 해당 주민에게는 예상을 뛰어넘는 질병 건수의 증가로 나타나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인간 감염 질병들의 특징은 그것들이 매번 신종질병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최근 진화를 겪은 질병들은 처음으로 인간에게 들어온 것이거나,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새로 부상한 감염 질병의 수와 마찬가지로 발병 건수도 전체 원인질환의 수에서나, 풍부함에서나 모두 인간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주 동안, 연구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미치는 생태적 결과를 고려할 때 팬데믹들이 인류에게 커져가는 위험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생태학자들은 코로나19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즉 인간에 의한 잠식과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 및 생물다양성 손실이 커지면서 초래된 대규모 팬데믹들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실로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를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다음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들이 지구상의 생명체를 훨씬 더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연구 결과, 에볼라, 사스, 조류독감,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19와 같은 동물전염성 질병을 비롯한 그 밖의 전염 질병들의 발병이 증가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균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건너가고 있고, 많은 병원균들이 새로운 곳으로 빠르게 퍼질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인간에게 감염되는 신종 질병 또는 새롭게 부상한 질병의 4분의 3이 동물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지배계급은 팬데믹의 위협을 억압기구 확대, 주민 감시, 국가비상사태의 무기한 연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사용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지금 배외주의적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체제 블룸버그 논평가의 말로 옮기면, “전능한 국가 의 형성을 보고 있다. 이러한 사태발전은 제국주의는 민주주의의 부정이다라는 레닌의 테제를 확인시켜 준다. 우리가 이미 과거에 지적했듯이,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역할 증대 제국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특징 는 자본주의의 첨예한 위기와 쇠퇴/부후화 시기에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한 시기에 우리는 군주제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가장 자유로운 공화제 나라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억압 조치의 강도를 높이는 것과 연동된 국가장치의 비상한 강화 및 관료·군사 기구의 전례 없는 성장을 본다. 그 결과는 강력한 기계장치의 탄생이다. 볼셰비키 당의 주요 이론가 니콜라이 부하린은 이 국가장치를 뉴 리바이어던이라고, “토머스 홉스의 판타지는 거기에 대면 어린애 장난감처럼 보이는그러한 뉴 리바이어던이라고 성격규정 했다. <시국선언>에서 우리가 내린 결론을 다시 한 번 보자. 이러한 제국주의 리바이어던이 지금 지배계급에 의해 팬데믹과 싸운다는 구실 하에 전속력으로 구축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의 상대적으로 폭넓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시대는 곧 끝날 것이다.”

독점 부르주아지는 의회제 내에 이미 존재해온 기존 제도들을 활용하여 보나파르트주의 지배 형태를 확립할 수 있다. 대통령, 군대, 경찰, 사법부 등의 역할, 각종 국가비상사태 법령들, 이 모든 메커니즘이 현 정치 시스템을 변환시켜 배외주의적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장치를 구축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임무를 단순화시켜준다. 1930년대 프랑스에 대한 트로츠키의 관찰은 그 적실성을 잃지 않고 있다. “모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나파르트주의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무엇이 뉴 노멀이 될 것인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전면 봉쇄가 종료된 이후의 부르주아 사회의 구체 상을 미리 그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지배 서클들이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무엇을 바꿔내려고 계획하고 있는지 저들의 콘셉트에 대한 개괄적 윤곽을 그려보는 것은 가능하고 유용하다. 다음에서 우리는 기존 서방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지배계급들이 현재 계획하고 준비하는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몇몇 인용문을 제시하겠다.

영향력 있는 미국 외교협회 (CFR; 리처드 하스가 2003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의 전 회원인 그레그 C. 브루노는 아랍에미리트와 같은 반동 군주제를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좇아야 할 모범으로 칭송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제기하는 위협에 대응하려면 전면적인 디지털 감시에서부터 보건의료 노동자의 징용에 이르기까지 이례적이고 심지어 위헌적이기까지 한 해결책이 필요할 수 있다....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자유주의적 가치들을 버리지 않은 채 권위주의적 전술을 빌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아랍에미리트, 오만, 싱가포르와 같은 곳에서 이것의 한 버전을 보고 있다. 이들은 서구식의 자유분방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높은 수준의 지적·문화적 개방성과 안전, 개인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AP통신의 한 보도는 중국에서 이미 가동되고 있는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자본가 정부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감시 기법의 성격에 대해 매우 유익한 통찰을 제공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이후 중국에서의 삶은 스마트폰 화면의 녹색 코드가 지배한다. 녹색은 폰 사용자가 무증상임을 말해주는 "건강 코드", 지하철을 타거나 호텔에 체크인 할 때 필요하다. 또는 지난 12월에 팬데믹이 시작된 인구 1100만의 중심 도시 우한에 그냥 들어가는 데도 필요하다. 이 시스템은 중국 대중이 스마트폰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집권 공산당이 "빅데이터"를 수용해 사회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넓힘으로써 가능해졌다. 의류 제조업체의 매니저인 우솅홍은 수요일 우한 지하철역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자신의 건강 코드 앱을 작동시킨 포스터의 바코드를 스캔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녹색 코드와 신분증 넘버 일부가 화면에 나타났다. 마스크와 고글을 쓴 경비대가 통과하라고 손짓을 했다. 만약 코드가 붉은색이라면, 그것은 경비대에게 우가 감염된 것으로, 또는 발열이나 다른 증상이 있는 것으로 확진을 받아 진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노란색 코드는 우가 감염자와 접촉했는데 2주간 의무 격리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자가 격리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을 뜻함 를 마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 코드의 집중 사용은 노동자들이 공장, 사무실, 매장으로 다시 유입될 때 감염이 급증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중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당국의 노력의 일환이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화요일 사이언스 지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다른 정부들도 중국식 "디지털 접촉 추적"을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너무 빠르게 퍼지고 있어 전통적 방법으로 감염을 추적할 수 없지만, "이 과정이 보다 빠르고, 보다 효율적이며 규모 있게 진행된다면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썼다. 일단 지하철에 탑승한 우솅홍과 다른 통근자들은 당국이 나중에 자신들을 찾아야 할 경우에 대비해 자신이 탄 전동차의 번호를 기록한 코드를 스캔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한 안내원은 "목적지까지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코드를 스캔해주세요"라고 적힌 배너를 들고 있었다. 좌석에는 승객들이 서로 충분히 거리를 두고 앉도록 점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한에 있는 쇼핑몰과 사무실 건물과 그 밖의 공공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통상적 절차를 거친다. 방문자들은 자신의 건강 코드를 보여주고,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경비대가 열을 확인한 다음 입장이 허가된다. 건강 코드는 중국 시민들이 공공장소, 온라인, 직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추적하는,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는 첨단 감시 매트릭스에 추가된다. 수백만 대의 비디오카메라가 주요 도시들에서 작은 마을들에까지 거리를 뒤덮고 있다. 검열관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상의 활동을 감시한다. 국영 통신사들은 휴대전화 고객들이 어디에 가는지 추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신용체계로 알려진 방대한 컴퓨터 시스템은 공식 룰에 대한 복종을 강제하기 위한 것이다. 중범죄에서 쓰레기 투기까지 법 위반으로 벌점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 표 구입이나, 대출 또는 정부 일자리를 얻는 것이나 출국하는 것이 막힐 수 있다....

이 코드는 인터넷 대기업 텐센트의 인기 위챗 메시징 서비스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전자결제 서비스를 통해 발급된다. 베이징청년일보에 따르면, 9억 명의 사람들이 위챗의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알리페이의 총 사용자 수는 보고된 것이 없다.... 규정에 따르면, 붉은색 건강코드로 여행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회신용체계 상의 감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북동부 헤이룽장성 정부는 성명을 통해 "사기, 은닉 등의 행동""그들의 미래 삶과 일에 큰 타격이 될" 처벌을 수반한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P. 골드만도 중국 감시기술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이 역시 서방 제약회사들에게 유망한 시장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은 재래식 공중보건 조치를 사상 최대의 정보기술 적용과 결합시켜 유행병을 막았다. 이러한 정보기술 적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예상 보균자 위치 추적, 감염 가능성 있는 노드 식별, 14억 인구 상당수의 생명 징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기, 개인의 검역을 규제하기 위한 스마트폰 앱 사용 등. 화웨이는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포함한 중국의 다른 거대 정보기술업체들과 경쟁하면서 정보기술의 의료 응용 분야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 올라서는 데 수년을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중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기회를 제공했고, 그 결과는 놀라운 유럽의 모든 주요 제약회사들이 의료 분야에서의 이 공인된 차세대 대박 사업의 일부가 되고 싶어 안달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의료 분야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및 그 밖의 정보기술 자원에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대항하여 많은 디지털 자원을 결집해낼 수 있었다. 여기에는 디지털 화된 건강기록 구글이 하려다 미국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포기했던 부터 생명 징후를 판독하고 심전도를 촬영하는 스마트폰 부착장치, 이 생명 징후를 실시간으로 클라우드로 전송하는 스마트폰 앱, 대규모 DNA 시퀀싱, 5G 모바일 네트워크 기반 가상현실 헤드셋을 이용한 원격 수술, 진단과 약물 개발에 대한 인공지능 응용까지 망라되어 있다.

중국 데이터 과학자들은 이미 이용 가능한 방대한 양의 건강 정보를 스마트폰의 위치 데이터 및 광범위한 법의학 코로나19 검사 결과와 결합시켜 14억 주민 개개인 수준으로까지 위험을 식별했다. 이런 종류의 작업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종종 부정확하지만, 의료 당국이 인구 중 매우 큰 표본의 체온, 심박수, 혈액 산소 수준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으면 훨씬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자유주의 역사가 유발 하라리는 감시 기술의 놀라운 진보와 그 잠재적 위협을 매우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당신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고 링크를 클릭했을 때, 정부는 당신의 손가락이 무엇을 클릭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관심의 초점은 이동한다. 이제 정부는 당신 손가락의 체온과 손가락 피부 아래의 혈압을 알고 싶어 한다.

감시기술과 관련하여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어떻게 감시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며,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모른다는 것에 있다. 감시기술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공상과학소설처럼 보였던 일이 오늘은 낡은 뉴스다.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모든 시민들에게 매일 24시간 체온과 심박수를 감시하는 생체 인식 팔찌를 착용할 것을 요구하는 정부가 있다고 치자.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다시 정부의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처리된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당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당신에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고 있다. 감염 확산을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고, 아예 확산 자체를 차단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틀림없이 며칠 안에 전염병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단점은 이것이 무시무시한 새로운 감시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CNN 대신 폭스 뉴스를 클릭한다면 이것은 당신에게 나의 정치적 성향이나 성격까지 알려주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내가 어떤 동영상을 볼 때 나의 체온과 혈압 그리고 심박수가 어떠한지 감시할 수 있다면, 내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 언제 화가 나는 지까지 당신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노와 기쁨, 지루함과 사랑은 감기나 열처럼 생물학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침을 식별하는 기술은 웃음도 식별할 수 있다. 만약 정부와 기업이 우리의 생체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예측할 수도 있고, 조작까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팔고 싶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팔 수 있다. 그것이 상품이든 정치인이든. 생체정보를 이용한 감시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틱카의 데이터 해킹 전술을 석기시대의 것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모든 시민이 24시간 생체인식 팔찌를 착용해야 하는 2030년의 북한을 상상해 보라. 위대한 수령의 연설을 듣는데 팔찌가 당신의 분노 감정을 식별하면, 당신은 그걸로 끝장이다.

물론 그러한 생체감시 기술을 비상 상황에서 임시 조치로 사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비상사태가 종료되면 바로 중단하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임시 조치는 대개 비상 상황이 종료되어도 지속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특히 지평선 너머에는 언제나 새로운 비상 상황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의 고국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전쟁 당시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언론 검열과 토지 몰수에서부터 푸딩 제조 특별 규정까지 다양한 임시 조치를 정당화했다. 독립전쟁이 승리하고 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결코 비상사태 종료를 선포하지 않았고, 1948년의 "임시" 조치 중 많은 것들이 폐지되지 않은 채 계속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진자가 제로로 감소하여도, 데이터 수집에 굶주려있는 정부들은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생체감시가 필요하다고, 또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변종 에볼라가 진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또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이유를 만들어내서 생체감시 시스템 유지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의 개인정보를 둘러싸고 큰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전투의 변환점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건강과 개인정보 중 양자택일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건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나라하게도 독점자본가들의 노골적인 대변 매체 블룸버그 통신도 이런 사태전개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권위주의 나라에서 인권 활동가가 어떻게 감시를 피할 수 있는지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사우스캐롤라이나 클렘슨 대학의 컴퓨터공학 교수 리처드 브룩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테러 방지 스파이웨어 전문 기술 회사는 코로나19로 알려진 보이지 않는 적의 확산을 늦추기 위해 12개국과 협력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안면인식 소프트웨어와 위치 추적기를 배치했다. 그리고 정보기관과 연계가 있는 미국의 빅 데이터 회사는 자신들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정부에 문의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비상권력은 빠르게 정상적인 운영 절차가 된다.... 전염을 막기 위해 사회적 접촉을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만약 존재한다면, 반대파의 확산을 추적하는 데 그 능력이 사용될 것이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감시기술과 강력한 치안유지가 통합되어 있는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환자의 신원 공개에 대한 비판이 일자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8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후용 신 미디어 비평가이자 베이징 대 교수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공중보건 감시 전술 중 상당수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했으며 본질적으로 불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생체인식 데이터 수집에 대해 시민들이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합의했지만, 올해 하반기까지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찰이 여전히 반정부 시위대를 단속하고 있는 홍콩에서도 정부의 과잉대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27일 당국이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을 시행한 후, 경찰은 식당 주인들이 테이블을 1.5미터 간격으로 유지하고 한 테이블당 4명만 허용하도록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빈과일보는 저명한 반체제 인사 아들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경찰이 손님들의 이름과 신분증을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이러한 강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팬데믹이 사람들로 하여금 감시 권위주의 사회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을 항상 우리는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는 시민운동가 갈릴레오 쳉은 트위터를 통해 경찰이 친 민주파 식당을 조준하여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을 사용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이제 우리는 계엄령 식 법 시행의 제1단계에 들어섰다."”

 

지배계급이 앞으로 몇 달, 몇 년 동안 어느 조치들을 배치할 것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아가 이것은 반동적 공격에 맞선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중의 저항에도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국가기구를 배외주의적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쪽으로 전화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은 분명히 눈에 보인다.

 

 

예방 반혁명

 

지배계급이 어떻게 대량봉쇄 결정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우리의 간략한 연대기에서 이미 말했듯이, 그것은 예방적 반혁명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배계급은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대중투쟁이 진행되는 중에 이러한 공격의 파고를 높였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이 민중항쟁들이 완연한 혁명으로 전화하기 전에 그러한 공격을 감행했다.

우리는 이미 앞 장에서 지배계급이 일차적으로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속에서 국가비상사태와 국가 보나파르티즘을 집어 들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부르주아 정치가와 관측자들이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높아진 불안정과 소요, 분쟁의 위험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이번 바이러스로 촉발된 비상한 격변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가 보아온 상대적 평화에 실질적인 위험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 질병은 "세상 모두에게 위협이자... 최근 과거 동안 아마도 유례가 없는 불황을 가져올 경제적 충격"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두 가지 사실의 결합과, 이 결합이 높아진 불안정과 높아진 소요, 높아진 분쟁에 미칠 위험 때문에 우리는 이 상황이 2차 세계대전 이래 우리가 직면한 가장 도전적인 위기라고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지배계급 관점에서의 이러한 고려는 특히 안드레아스 클루트의 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클루트는 현재 블룸버그 편집위원으로 독점 부르주아지 내 대표적 논자이며, 그 전에는 독일의 유수 자본가 신문 한델스블라트 글로벌의 편집장이자 이코노미스트의 논설위원이었다. 이 주의 깊은 부르주아 관측자는 지배 서클들이 코로나19 위기 이전 기간 계급투쟁의 극적인 상승과 이 위기의 폭발적 결과를 십분 인식하고 있었다는 우리의 분석을 확인시켜 준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가장 그릇된 상투적 논리는 그것이 우리 모두를 똑같이 취급한다는 주장이다. 의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특히, 코로나19는 그것이 다다르는 곳마다 기존의 불평등 상태를 더 악화시킨다. 머지않아, 이것은 봉기와 혁명을 포함하는 사회 대란을 야기할 것이다.

코로나19가 그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소요가 증가하고 있었다. 한 집계에 따르면 2017년 이후 프랑스와 같은 부유한 나라의 질레 조누(노란 조끼) 폭동부터 수단, 볼리비아 등 가난한 나라의 독재자에 대한 시위까지 약 100건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이러한 봉기 중 약 20건이 지도자를 실각시킨 반면, 몇몇 봉기는 잔인한 탄압으로 진압되었고 그 밖의 많은 봉기들이 폭발 직전 상태로 돌아가 다음 번 터질 때까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코로나19의 직접적인 결과는 민주 정부와 권위주의 정부 모두 강제로 주민들을 록다운 시킴으로써, 즉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거나 단체로 모이는 것을 막음으로써 소요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격리된 가정의 문 뒤에서, 길어져 가는 무료급식소 앞 대기줄에서, 교도소와 빈민가와 난민수용소에서 이미 발병 전부터 사람들이 배고프고 아프고 한숨 쉬던 곳에서 비극과 트라우마가 쌓여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압력은 분출될 것이다.”

 

또 다른 부르주아 경제학자도 자본주의 체제의 현 위험에 대한 비슷한 인식을 표현했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경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이동으로 인해 이제 170여 개국으로 확산되었다. 뒤따른 패닉이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사회질서 붕괴의 시작을 서방 국가들의 약점들이 모두의 눈에 분명해지면서 가져왔다. 주민들이 잘못된 정보와 패닉 상태에 빠지기 쉽고 부족 상태에 직면할 수 있는 나라들의 정부한테는 국가 안정에 대한 위협이 매우 현실적이다. 바이러스가 본성상 차별적이라서 주로 많이 아픈 사람들과 고령자들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온 세상을 들썩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시스템이 취약하기 짝이 없고 너무 쉽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발표한 기사에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의 대규모 시위의 발전에 대한 통계적 개요를 제시한 부르주아 싱크탱크의 새로운 연구에 주목을 요한 바 있다. 그들 부르주아 싱크탱크는 대중시위가 세계의 모든 주요 인구 밀집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10년간 추세선의 일부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아랍 혁명이 지난 10년간 글로벌 대중시위 물결의 방아쇠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것이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현상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아랍의 봄 사태는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광범위에 걸쳐 증가하던 글로벌 추세의 특히 첨예한 표현이었다.” 이 연구의 저자들은 또 지난 10년을 그 이전 지난 반세기 동안의 사태발전과 비교하며, 최근 역사에서 우리가 이전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봉기 물결을 경험했다고 결론 내린다. “최근 시위의 규모와 빈도는 1960년대 말,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와 같은 대중시위 시대들의 역사적 예들을 무색케 한다.”

우리는 맑스주의자들이 이 모순적 발전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우리는 현대사에서 (적어도 1945년 이후) 가장 큰 폭의 대중투쟁 상승 물결을 경험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지배계급들은 깊은 걱정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혁명적 리더십의 결여 속에서 이 대중항쟁들은 대중이 권력을 잡아보고자 하는 실제 무장봉기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대중은 무장봉기 없이 전진하는 길이 있을 것 같은 각종 환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이 글로벌 대중투쟁 물결에 관한 논문에서 우리는 인민대중이 뒤떨어진 의식을 가지고 전투에 들어가고 있, 여전히 많은 순진한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최근 민중항쟁 물결의 대규모적 성격과 전 세계적 확산으로 볼 때, 우리는 지배계급의 국가 보나파르트주의로의 전환이 훨씬 더 공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 형태를 꺼내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방어적이고 예방적인 성격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 유추의 한계를 십분 인식하는 가운데, 우리는 현 상황에 유효 적실성이 있어 보이는 레닌의 두 가지 사상을 참고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190763일 스톨리핀 쿠데타 직후 볼셰비키 당의 리더는 당시 러시아의 정세를 다음과 같이 성격규정 했다. “러시아의 현 정세는 간신히 봉기를 억누른 정세다.” 어느 정도 이것은 우리에게도 글로벌 계급투쟁 현주소에 대한 유용한 묘사로 보인다.

그리고 현 세계정치정세를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유추를 참고해보자. 19177월 러시아에서 케렌스키 정부는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병사들의 자연발생적인 봉기에 대응하여 보나파르트주의 쿠데타를 감행했다. 이 성공적인 반혁명으로 부르주아 보나파르트주의 체제가 성립됐다. 레닌은 이 새로운 지배체제에 다음과 같은 성격규정을 부여했다. “보나파르트주의는 민주 변화와 민주 혁명의 조건 속에서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 본질에서 성장해 나오는 통치 형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볼 때 이러한 성격규정과 현 정세와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또 현 사태발전의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현 정세의 비상함은 현 정세가 자본가 국가의 비상한 대규모 정치 개입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러한 개입이 현 정세를 야기한 원인은 아니지만 는 데 있다. 이것이 기획 조정 속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국가에 의한 그러한 개입은 처음에 두 지배적 제국주의 강대국 중 하나에 의해, 이어서 서유럽 정부들에 의해 실행되었고, 그 다음에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이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것은 중국에서 시작하여 몇 주 안에 전 세계를 사로잡는 글로벌 연쇄반응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제쳐두고 본다면 현 사태발전은 확실히 가장 글로벌화 된 세계정치정세다. 즉 서로 다른 대륙에서의 사태발전이 현대사의 여타 어느 정세보다도 더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정세인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공황이 코로나19 위기를 원인으로 해서 야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의해 심화되고 확대 고조된 것은 확실히 맞다. 그러한 이유로 지배계급들은 이 경제위기를 그것의 진정한 원인 자본 과잉축적과 이윤 저하 에 의해 설명하려 하지 않고,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이 경제위기는 과거 공황들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이 이유로 대중적 증오는 공황에 책임이 있는 자들로서 (익명의 시장의 힘대신) 보다 쉽게 부르주아 정부를 향해 조준될 것이다.

 

 

우리는 반혁명 공세의 현실성을 과대평가하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아르헨티나 조직의 동지들이 RCIT의 정세평가에 반대하여 제기한 비판을 다루고자 한다. PST 쇄신 그룹은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세계 반혁명 공세" 하에 있으며, 그것이 세계와 우리나라에서 계급 역관계를 바꿔놓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일부 좌파 조류들이 군대가 거리에 개입하고 대량봉쇄 조치가 실시되고 있다며 주장하고 있듯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분석이 완전히 틀렸다. 지난해 전체가 홍콩에서 에콰도르, 칠레, 푸에르토리코를 거쳐 카탈루냐로, 이라크와 이란에서 아이티로 이어지는 혁명적 물결로 두드러졌다. 이 혁명들은 자본가 정부와 그들의 계획을 맹렬히 타격하며 전진했다. 팬데믹의 영향은 자본주의와의 싸움을 조정하고 조직할 수 있는 국제 리더십을 가지지 못한 대중에게 한순간의 혼란을 낳았다. 그러나 자본가 정부들이 한 일은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것처럼 혼란의 첫 순간에 편 책략들이 다다. 여기 우리나라에서나 세계에서나 대중이 패배한 것은 없다. 그 반대다.”

 

우리는 이 동지들이 사회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좌익과는 대조적으로 부르주아 정부의 반동적 공세에 대한 일체의 기회주의적 투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강력히 환영한다. RCIT처럼, 이 동지들도 글로벌 록다운과 군사화 등 이들 자본주의 정책을 비난한다. 이와 같이 이 동지들과 우리는 중요한 공통 지반을 공유하고 있고, 따라서 더욱더 이 동지들의 비판을 진지하게 취급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동지들의 비판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RCIT<시국선언>에서 이 문제에 대해 천명한 내용을 요약해 보자. “우리가 위에서 말했듯이, 글로벌 코로나19 위기는 세계정세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이미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2019년에 시작한 계급투쟁과 인민항쟁들이 대폭 가라앉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이러한 투쟁들이 끝났다든 뜻은 아니다. 칠레, 이라크, 알제리, 프랑스, 홍콩의 노동자와 청년들의 여러 대담한 시위들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러시아-이란-아사드 점령군에 대항하여 이들리브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 인민의 영웅적인 해방투쟁은 또 다른 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자본가국가 리바이어던이 그 힘을 증강함에 따라 이들 항의시위도 크게 축소되고 있는 것이 전반적인 상황이다. 이것은 준혁명적 정세가 지금으로선 마감하고 글로벌 반혁명 정세가 열렸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의견으로는 이러한 기본 사실들을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칠레, 이라크, 프랑스, 홍콩 등에서 대중시위는 대폭 줄었다가 적어도 현재는 대부분 소멸했다. 이것은 그 자체로 투쟁의 중대한 후퇴로서, 이 나라들 모두에서 매주 정기적인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수개월의 기간 뒤에 심각한 퇴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혁명가들이 이 예방 반혁명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은 오류라고 본다. ILO의 가장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인구의 약 81%27억 명의 노동자들이 현재 전면적 또는 부분적 봉쇄 조치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들은 중상위소득 국가 노동인구의 87%와 고소득 국가 노동인구의 70%에 해당한다.

현 정세는, 동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도 여러 차례 말했듯이, 전 세계의 부르주아 정부와 그들의 언론매체가 퍼뜨리고 있는 공포와 마비 효과로 인한 대중의 혼란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반혁명을 특징짓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국가기구의 비상한 동원 국가비상사태, 거리의 경찰과 군대, 정권에 예외적인 권력 부여 등 도 반혁명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요컨대, 우리가 위에서, 그리고 다른 문서들에서 강조했듯이, 배외주의적인 국가 보나파르트주의로의 대대적이고 전례 없는 전 세계적 전환, 명백히 이것은 코로나19 위기를 틈탄 지배계급의 반혁명 공세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중대한 반혁명적 힘의 동원·결집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질서의 심각한 위기를 반영한다. 제국주의 서구 나라들의 지배계급이 상대적으로 확대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지형을 떠나 국가 보나파르트주의로 넘어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않은 채) 것 말고는 대안이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부후화 1929년 이후 최악의 공황과 가속화하는 강대국 간 패권쟁투와 글로벌 계급투쟁 물결 등으로 표현된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발전을 인정하는 것은 비관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것은 계급 역관계와 노동자 전위의 임무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의 일부다. 그것은 혁명가들이 활동의 상당 부분을 비합법 조건 하에서 수행해야만 하는 시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혁명가들은 그러한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 노동자 전위를 정치적으로 준비시켜야 한다. 여기에는 민주적 요구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민중봉기를 준비할 필요를 설명하는 것 등등이 포함될 것이다.

비관적으로 우리가 그 어떤 계급투쟁 가능성도 없는 반혁명 '장기 암흑기'를 예견하는 것이라고 동지들은 우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도, 의도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RCIT는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시국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물론 다른 유형의 반혁명적 정세도 존재한다.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민중 조직들을 박살내고 투사·활동가 층 전체를 파괴하는 반혁명 정세가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19076월 스톨리핀 반동 이후의 러시아, 1933년 독일, 1973년 칠레, 201373일 군사쿠데타 이후의 이집트가 그런 경우다. 이들 반혁명 공격의 결과로 노동자계급의 전략적인, 심지어는 역사적인 패배가 초래된 경우들이다. 현 정세는 그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반혁명 공세는 팬데믹에 대한 대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 노동자·민중 운동의 상당 부문들을 혼동에 빠뜨리고 있는 그러한 공세다. 그것은 글로벌 대중투쟁 물결의 일시적 퇴조와 함께 억압적 국가기구의 대대적인 강화로 특징지어지는 공세다. 따라서 계급투쟁의 일시적 정체로 크게 누적된 모순이 조만간 대대적인 정치적 폭발로 결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정세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는 예견할 수 없다. 단 몇 개월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배계급의 반혁명 공세가 폭발적인 정치적 모순을 낳을 것이라는 것이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정권들이 민주적 제 권리에 대한 자신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대자본가들에게 수십, 수백억 달러 씩 퍼주기를 하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와 임금삭감을 맞는 상황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히 들어올 것이다. 이탈리아에서의 몇몇 파업, 또는 봉쇄 격리된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 박수치고 노래 부르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들은 제한적인 것이지만 전도를 보여주는 사태발전의 예들이다. 또 강대국들 간의 대대적인 글로벌 긴장 고조도 불가피하다. 달리 말하면, 글로벌 반혁명 공세는 계급 간, 국가 간 가속화하는 정치·경제적 모순을 단지 일시적으로만 덮어 가릴 수 있을 뿐이다. 조만간 이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대대적인 정치적 폭발로 결과할 것이다. 남반구에서,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모두 심대한 국내 위기의 형태로, 전쟁과 혁명적 봉기의 형태로 폭발할 것이다.”

 

우리는 이 평가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말했듯이 계급투쟁의 역사는 다양한 유형의 반혁명적 정세를 알고 있다. 케렌스키가 1917년 페트로그라드에서 7월의 날들의 패배 이후 부르주아 보나파르트주의 정권을 수립했을 때도 반혁명적 정세가 존재했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이 정세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10월에는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요약하면, 현 반혁명 공세가 지배질서에 대한 대중적 증오를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 있을 뿐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민중항쟁 물결 팬데믹 이전의 순진한 희망을 특징으로 했다. 그러나 현 사태 경제파탄과 팬데믹과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의 결합 는 불가피하게 대중을 급진화 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환상이 깨지고 절박함이 커질 것이다. 자본가계급 자신들도 이것을 알아채고 뉴 노멀”, 즉 뉴 리바이어던을 수립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 자본주의 괴물에 대항하여 대중투쟁에 정세전망을 제공하고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혁명가들의 임무다.




* 이후 3장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