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가오는 계급투쟁 - 혁명적 전술과 슬로건

 


                                                                                  * 각주를 보려면 위에 첨부한 PDF 파일 참조


앞 장들에서 설명했듯이, 3중 위기 3차 대공황, 리바이어던, 코로나19 는 지배계급에 의한 글로벌 반혁명 공세를 초래했다. 우리는 이 반혁명의 정치적 노선이 핵심 측면이라고 설명했는데, 왜냐하면 노동자계급과 피억압자가 이후 그들의 권리와 건강을 위해 싸울 능력을 이 반혁명이 심각하게 공격하고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인민대중이 자신의 생존 및 투쟁 조건을 방어하는 것을 돕는 데 가장 적합한 전술과 슬로건을 제창하는 것이 필요하다. 담벼락에 그린 낙서로 퍼지기 시작한 훌륭한 슬로건이 있다. “코로나는 바이러스다. 자본주의가 팬데믹이다.” 실로,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다. 만성적인 경제위기와 전쟁으로 인해 대량빈곤을 초래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인간의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질병에 걸리기 쉽게 하는 것은 가난과 열악한 생활조건이다. 공중보건 서비스의 삭감 및 폐쇄를 가져온 수십 년간의 긴축 정책에 책임이 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다. 한줌의 슈퍼리치·권력자 엘리트가 인민대중을 지배하며 경찰과 군에 비상권력을 부여하는 것도 자본주의 체제다. 즉 노동자·민중에게 주된 위험이자 생명의 주된 위협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지속적 존재다.

이 모든 이유로 계급투쟁 전략·전술은 노동자·피억압자가 현 조건 하에서 어떻게 주 위험과 주적 자본가 지배계급 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정립되어야 한다.

 

 

 

현 정세와 그것이 계급투쟁에 미치는 결과

 

현 정세가 글로벌 계급투쟁 조건에 몰고 올 결과에 대한 간략한 성격규정으로 시작해보자. 이미 밝혔듯이, RCIT는 현 3중 위기가 노동자·민중 투쟁의 전망에 미칠 영향이 극히 심대하다고 본다. 경제 침체는 실업을 단번에 3,4배 이상 증대시키고 있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로의 전환은 정부 권력을 확대하고 경찰국가·감시국가를 구축할 것이며, 그에 따라 민주적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 축소시킬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전 세계에 공포를 퍼뜨리는 심각한 건강 위험이다 (거의 모든 나라의 자본가계급이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공격을 덮어 가리는 엄폐물로 이 팬데믹을 이용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계급투쟁에 모순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들 요인은 한편으로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는 조건들을 복잡하게 만든다. 높은 실업과 빈곤은 자본가에 의해 노동자가 손쉽게 해고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농촌 및 도시 빈곤층은 매일매일 생존을 위해 훨씬 더 많이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대된 억압기구, 민주적 권리의 제한, 완벽한 첨단기술 감시방법 등이 조직하고 투쟁할 조건을 또한 악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또 팬데믹으로 인한 공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대중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조심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한쪽 면일 뿐이다. 다른 면은 바로 그 동일한 3중 위기가 조만간 대중을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록다운 정책은 기아와 빈곤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인민대중의 생활조건에 직접적이고 급격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 첫 번째 기아 폭동 (예들 들어 콜롬비아, 온두라스, 파나마, 짐바브웨 등)이 있었고, 더 많은 것이 불가피하게 뒤따를 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3중 위기는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의 심대한 위기의 시기를 열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지배 서클들이 억압 조치를 강화하고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비상권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현 위기의 극적인 성격을 점점 더 인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시국선언>에서 제시했듯이, 코로나19 위기가 즉각적으로 글로벌 반혁명 정세를 야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몇 주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의 정치적 이용으로 국가 비상대권의 대대적인 강화가 가능해졌고, 그와 동시에 홍콩에서 칠레에 이르는 많은 나라에서 2019년 하반기부터 부르주아 질서를 산산조각 내고 있던 모든 대중운동 및 투쟁들이 거대한 퇴조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우리가 <시국선언>에서 말했듯이, 계급투쟁의 일시적 정체로 크게 누적된 모순이 조만간 대대적인 정치적 폭발로 결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정세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는 예견할 수 없다. 단 몇 개월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공세가 폭발적인 정치적 모순을 낳을 것이라는 것이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정권들이 민주적 권리에 대한 자신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대자본가들에게 수십, 수백억 달러 씩 퍼주기를 하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와 임금삭감을 맞는 상황이 누구의 눈에도 분명히 들어올 것이다.... 또 강대국들 간의 대대적인 글로벌 긴장 고조도 불가피하다. 달리 말하면, 글로벌 반혁명 공세는 계급 간, 국가 간 가속화하는 정치·경제적 모순을 단지 일시적으로만 덮어 가릴 수 있을 뿐이다. 조만간 이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대대적인 정치적 폭발로 결과할 것이다. 남반구에서, 그리고 동·서의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모두 심대한 국내 위기의 형태로, 전쟁과 혁명적 봉기의 형태로 폭발할 것이다.”

 

즉 현 반혁명 정세는 긴 암흑기를 열지 않으며, 열 수도 없다. 지배계급의 공세는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가져올 어떠한 동력도 공급하지 못한다. 정반대로, 이러한 비상조치들은 거대한 모순을 일시적으로 덮어 가리고 엄청난 폭발을 잠시 지연시키는 것 이상을 할 수가 없다. 요컨대 현재의 반동 공세는 향후의 정치적 폭발을 준비한다. 즉 중대한 혁명적 위기를 성숙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정치적 폭발은 자본주의 현 단계가 쇠퇴·부후화 단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이 역사적인 시기 2008년 대침체로 시작된 에 자본주의의 쇠락이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순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후 변화, 생태 재앙 등 문명의 위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참상, 고통이 확산되고 한쪽의 자본가와 다른 한쪽의 노동자·빈민 간의 적대가 더욱더 첨예해지고 가시화되고 있다. 또 남반구에서의 제국주의 침략과 전쟁이 증가하고 있다. 강대국들 간의 패권쟁투 특히 미·중 간 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10년간 계급투쟁의 극적인 증가 1945년 이래로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증가 를 가져왔다. RCIT가 이 역사적인 시기를 혁명적시기로 성격규정 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세계무대에서의 기본적인 균형 결여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20091월에 이 시기에 대한 그와 같은 평가에 도달했고, 그 이후로 많은 문서에서 우리의 분석을 더욱 더 정밀하게 다듬어나갔다.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일부 영리한 부르주아 관측자들도 현 3중 위기의 진행 속에서 다가오는 시기의 폭발적 성격을 알아차려 가고 있다. 여기 몇몇 예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주요 경제학자들은 일단 록다운이 끝나면 있게 될 사회적 소요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가 불충분하거나, 부당하게 부유층에 유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새로운 사회적 소요의 물결이 일부 나라들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고 IMF가 수요일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엄격한 록다운이 계속 실시되는 한 대중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위기가 통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불만이 솟구칠 수 있다고 비토르 가스파 IMF 재정 담당 국장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인도의 상업 수도 뭄바이에서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13억 주민에 대한 록다운 기간을 연장하자 수천 명의 실직 이주노동자들이 화요일 기차역에서 시위를 벌이며 시골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IMF 수석경제학자 기타 고피나스는 이전의 위기와 재난은 연대를 키워냈는데,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고피나스는 "위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사람들을 돕기에 불충분한 것으로 보인다면 사회적 소요로 끝날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 독점 부르주아지의 대변 매체 의 안드레아스 클루트도 같은 경고를 발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의료 비상사태가 일단락되면 개별 나라들이나 세계가 이전처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순진할 것이다. 분노와 쓰라림은 새로운 배출구를 찾을 것이다. 일찍이 나타난 조짐들이 있다. 수백만 명의 브라질인들이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창문에서 냄비와 팬을 쾅쾅 두드린 일이나, 레바논의 재소자들이 과밀 교도소에서 폭동을 일으킨 것이 그런 예다. 때가 되면, 이러한 격정은 그들이 적으로 규정하는 구체제를 일소하기로 작정한 새로운 포퓰리즘 운동이나 급진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2020년의 대 팬데믹은 포퓰리즘을 거부하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이다. 그것은 불평등을 포함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더 열심히 그리고 더 과감하게, 그러나 여전히 실용적으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단지 코로나바이러스에서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 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비상벨이다.”

 

그리고 미 제국주의의 오랜 대변인 헨리 키신저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꿀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표한 기사에서 지배 엘리트들의 깊은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국가들은 그들의 기관이 재앙을 예견하고, 재앙이 가져온 타격을 막아내고, 안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협력하고 번창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단락되면, 많은 나라의 기관들이 실패한 것으로 판정될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객관적으로 공정한지는 중요치 않다. 현실은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주로 일국적 기초 위에서 위기에 대처하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사회 해체 효과는 국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 건강에 대한 공격은 바라건대 일시적이겠지만, 그것이 촉발한 정치적·경제적 격변은 수 세대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획기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 지도자들 앞에 놓인 역사적인 도전 과제는 미래를 건설하면서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실패는 세계에 불을 지르는 것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통틀어 유행병은 보통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위기의 반영이다. 따라서 유행병은 정치 불안정과 민중 소요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결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지적했듯이, “흑사병이 일련의 농민봉기로 결과한 14세기 유럽의 경우가 이미 그러했다. 이 농민봉기들은 최종적으로 혁명적 대중봉기와 서유럽에서의 봉건제 쇠락으로 결과했다. 19세기에도 많은 유행병이 있었는데 모두 유럽에서의 혁명적 위기와 상관관계가 있었다.

글로벌 반혁명 공격이 계급투쟁에 미치는 직접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물론 이러한 위기 초기 단계에서는 단지 몇몇 가설을 세울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한편으로는 아직도 대중이 일정한 충격 단계에 있는 것 같다. 만약 거의 모든 자본가 정부와 그들의 언론 그리고 노동자·민중 운동의 비겁한 지도부들 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치명성에 대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록다운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려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더해 대대적인 기습공격, 즉 국가비상사태 실시와 집회·시위 금지가 덧붙여진다. 이와 같이 혼란과 두려움이 만연한다. 다른 한편으론, 이 같은 극한적인 조건이 기아와 함께 증오도 낳는다. 이미 후베이, 나이지리아, 온두라스, 파나마,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지에서 일어난 폭동들이 그것이다. 이 폭동들이 원초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집단시위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투쟁들이 미래의 전령이라고 생각한다. 혁명가들이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시위를 전면 지지해야 하며, 조직하고 의식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제시한 분석은 맑스주의자들이 현 정세에서 제출해야 할 전술과 슬로건에 어떠한 결과를 미치는가? 한편으로 경제적 공격, 정치적 공격, 보건 공격, 이 세 공격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할 때 대응의 성격은 불가피하게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문서에서 밝혔듯이, 우선적인 것은 해고·임금삭감 반대, 사회보장 방어, 생존을 위한 식량 확보, 무상 의료 접근권, 집회·시위의 권리, 국가비상사태 법 철폐 등이다. 혁명가들이 이러한 요구를 전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보건 행동강령>을 보라. 또 우리의 <시국선언> 말미에 있는 요구안도 보라. 두 문서 모두 본서의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그래서 정세의 성격상 혁명가들은 일련의 방어적 슬로건을 제기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은 고도로 폭발적인 방식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앞 장에서 말했듯이, 이는 혁명가들이 부르주아 정부에 탄원하는 청원 식 요구 제기가 아니라 대중투쟁을 호소, 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 조건 하에서 이러한 투쟁은 고도로 혁명적인 투쟁 형태인데, 왜냐하면 모든 형태의 대중시위를 금지하는 국가비상사태 법을 어겨서 깨뜨리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방어적인 경제적·민주적 요구 투쟁은, 그 투쟁이 현재의 권위주의적 통치 형태에 도전한다면 고도로 폭발적인 잠재력을 담게 된다. 이는 그러한 슬로건 청원 사항이 아니라 투쟁 요구로 정식화된 이 대중이 실제로 그것을 위해 투쟁한다면 상대적으로 급속히 혁명적 권력 투쟁으로 결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혁명적 리더십의 위기가 즉 진정한 혁명적 세력의 취약함으로 인해 배반적인 개량주의 관료들이 노동자·민중운동을 지배하고 있는 조건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더 긴 계급투쟁 시기로 들어가고 있다. 다수의 준혁명적, 혁명적, 반혁명적 정세들로 결과할 격렬한 계급투쟁의 보다 장기화된 국면 말이다. 혁명적 민주주의 투쟁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할 것이다. 레닌은 이미 사회주의 혁명이 한 차례의 행위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한 시대 전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주의 혁명은 한 차례의 행위가 아니다. 하나의 전선에서 치러지는 한 번의 전투가 아니라, 첨예한 계급충돌의 한 시대 전체, 모든 전선에서, 즉 경제와 정치의 모든 문제에서 치러지는 긴 일련의 전투들, 오직 부르주아지의 수탈로만 끝날 수 있는 전투들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주의혁명으로부터 유리시킬 수 있다거나, 또는 사회주의혁명을 못 보도록 감추고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다. 반대로,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않는 승리한 사회주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는 민주주의를 위한 전면적이고 일관된 혁명적 투쟁 없이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준비할 수 없다.”

 

 

 

주 슬로건: 국가비상사태를 민중봉기로 전화하라

 

어느 전술이든 혁명가들에게 전술의 출발점은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며 단합을 촉구하는 부르주아 선전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름 아닌 그러한 국민 통합을 엄폐물 삼아 자본가들이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실업으로 내몰며 사회보장을 삭감하고 있다. 지배계급이 국가비상사태를 때리고 억압기구를 증강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반동적 국민 단합을 명분으로 내걸고서 한다. 노동자·민중 조직들을 지배하는 개량주의 관료의 국민 통합지지는 계급휴전에 준한다. ,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달리 말하면, “국민 통합이데올로기는 우리 계급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무장 해제를 가져온다. 대중투쟁 없이는 노동자·민중은 정치적·경제적 공격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국민 통합을 엄폐물 삼은 지배계급의 공격에 대항하여 투쟁한 많은 경험이 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볼셰비키는 거대한 애국주의 물결에 직면했다. 전면전에서 정부를 약화시키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요구에 부딪혔다. 잘 알려진 대로, 맑스주의자들은 그 어떤 투항도 거부하였고, 오히려 지배계급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패배시키기 위해 그러한 상황들을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19148월 개전 직후 볼셰비키는 <중앙위원회 선언>을 통해 내란 전화를 중심 슬로건으로 제기했다. “단 하나의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슬로건은 현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910-11년 러시아에서 콜레라 유행병과 기근이 창궐하던 때 볼셰비키는 같은 정신으로, 맑스주의적 선전은 혁명 없이는 기근에 대항하는 진정한 투쟁은 상상할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을 보라).

혁명가들은 현 시기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노선을 총괄하는, 그와 비슷한 슬로건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배외주의적 보나파르트주의 국가기계를 현 단계 해방투쟁 앞에 놓인 핵심 장애물로 지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모순이 급격히 첨예화하고 당면 요구 투쟁이 쉽사리 정권과의 격렬한 충돌로 결과할 수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시기는 폭발적 잠재력으로 가득 차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모든 이유로 우리는 다가오는 시기의의 전략 노선에 대한 총괄요약으로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비상사태를 민중봉기로 전화하라”. 위에서 언급했듯이, 혁명가들은 당면 행동에 필요한 슬로건을 도출하기 위해 각각의 나라에서의 대중의 의식을 구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할 일은 국가비상사태 정권에 맞서 싸우고, 봉기로 정권을 끌어내려야 할 필요를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뉴 리바이어던에 대항하는 투쟁을 정치적이고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그러한 슬로건은 우리의 <시국선언>이나 <보건 행동강령>에 제시된 구체적인 요구들을 비롯한 그 밖의 <<이행강령>> 상의 적절한 요구들과 결합되어야 한다.

정부를 신뢰하지 말 것, 정부가 공격을 엄폐하기 위해 퍼뜨리는 여론 조작을 믿지 말 것을 강조하는 것이 특히 긴급하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제기해야 한다. “노동자와 피억압자여,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국가를 믿지 말자! 오직 자신만을 믿자!” 이러한 슬로건은 지배계급과 협력하여가 아니라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팬데믹과 싸울 필요성을 표현한다. 이것은 아래로부터의 이니셔티브 안()들과 결합되어야 한다. 보건 조건을 개선하는 안, 민중 보건 이니셔티브를 조직하는 안, 탄압에 맞서 정당방위대를 조직하는 안, 경제적 공격에 대항하여, 가능할 경우는 노동조합 안에서, 필요할 경우는 밖에서 싸우는 안 등등.

위에서 말했듯이 혁명가들은 자연발생적인 대중시위들을 지지하고 이 시위들에 방향과 조직을 부여해야 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직장과 지역, 주민, 학교에 행동위원회를 만드는 것이다.

제국주의 나라들에서는 혁명가들이 남반구에 살고 있는 피억압 인민들을 위한 대규모 원조 프로그램에 대한 선동을 긴급히 조직해야 한다. 세계경제의 붕괴와 그에 따른 기아와 전염병 같은 모든 끔찍한 결과들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는 것이 바로 이들 피억압 인민이다. 따라서 노동자·민중 조직들이, 특히 제국주의 나라의 이들 조직들이 남반구 인민들을 위한 대규모 국제 원조와 함께 모든 부채의 즉각적인 무효화를 위해 나서야 한다. 여기서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이 남반구의 우리 인민의 부와 건강과 생명을 빼앗아갔다! 제국주의자들이 빚을 갚아야 할 때다.”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혁명가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라이벌 강대국을 겨냥한 모든 형태의 배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RCIT가 반복해서 제시했듯이, 맑스주의자들은 그러한 경우에 혁명적 패전주의 정책을 내걸며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식민지 나라들에서 혁명가들은 피억압 인민의 방위와 제국주의 적들의 패전을 내걸 것이다.

나아가 국민통합및 계급휴전 정책, 긴축 프로그램, 록다운 정책, 민주적 권리 억압 등등을 지지하는 관료들에 맞서 혁명가들이 노동자·민중 운동 내부에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자·민중 운동 내 지배계급 반혁명 공세의 지지자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 없이 반혁명 공세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음은 이러한 방향을 요약 총괄한 슬로건이다. “사회보나파르트주의와 싸우자! 록다운 좌익과 단절하자!”

이것이 혁명가들이 올바른 투쟁방향을 위해 노동자·민중 조직들 내에서 싸우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혁명가들은 진보적인의회 대표들에게 록다운, 국가비상사태, 집회·시위 금지, 자본가들을 위한 재정 지원 프로그램 등을 가능케 하는 모든 반동적인 법에 반대투표 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어떠한 참여나 지지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라! 마찬가지로 혁명가들은 모든 노동자·민중 조직들에게 그 어떤 계급휴전 정책도 거부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이 모든 정치적·경제적 공격을 규탄하는 성명을 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대중시위를 준비하고 조직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명가들은 글로벌 반혁명 공세뿐만 아니라 일체의 강대국 배외주의 (대국 쇼비니즘)에 맞서 싸우기 위한 국제적 총괄조정과 국제적 이니셔티브를 요구해야 한다.

많은 경우, 이 초동 국면에서의 계급투쟁은 기본적인 당면 요구로 국한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건강 보호를 위해 직장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거나, 도시 빈곤층이 록다운을 깨고 식품을 얻기 위해 슈퍼마켓을 약탈한다.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 우리는 주민 자위위원회를 만들려는 첫 이니셔티브를 보았다.

당연히 혁명가들은 이러한 투쟁들을 지지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이들 투쟁에 조직과 방향을 가져오기 위해 개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이 지배계급의 정치 반혁명 의제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그리고 모든 당면 요구들을 국가비상사태 정권을 패퇴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슬로건과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함을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명가들은 정치활동을 급격한 조건 변화에 맞춰야 한다. 많은 나라에서 지금까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조건하에서 비교적 제약 없이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어떤 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제약과 다른 형태의 탄압이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혁명적 활동에 대한 법적 조건이 악화, 퇴보하고 있는 것을 본다. 가까운 장래에 좀 더 큰 규모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는 팬데믹을 구실로 아예 법적으로 금지시킬 것으로 보인다. 감시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며, 이 팬데믹의 진실을 두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처벌 될 수 있을 때까지 감시가 지속될 지도 모른다.

이는 맑스주의자들이 반합법 또는 비합법 조건 하에서 정치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나라들 (예를 들어 이집트)의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과거에 혁명가들의 경험 (예를 들어 차르 러시아에서의 볼셰비키)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근과 역병: 레닌과 볼셰비키로부터의 몇 가지 교훈

 

기근과 전염병 같은 재난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접근법은 매우 분명했다. 맑스주의자들은 그러한 재난이 흔히 자연적원인 (예를 들어 흉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상황에서 희생자를 돕는 것이 사회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정부 정책에 종속됨으로써 희생자를 돕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맑스주의자들은 차르 정권의 조치들에 대해 그 어떤 지지도 거부했다. 정반대로, 레닌은 그러한 상황에서 맑스주의자들은 현존 사회질서 내에서는 어떠한 해결책에도 도달할 수 없으며 전진하는 유일한 길은 혁명적 정권 타도뿐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그렇다고 볼셰비키가 수동적, 숙명론적인 접근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볼셰비키는 그러한 기근과 콜레라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노동자와 빈농의 아래로부터의 이니셔티브를 지지했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이러한 지지가 자선적 원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대중 속에서의 정치 선동·선전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기근과 역병의 시기에 대중투쟁 호소/요구를 자제한다는 것은 레닌과 볼셰비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대로 볼셰비키는 이러한 재난은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농민들이 차르 정권 타도를 위해 싸워야 할 추가적인 이유라고 강조했다. 볼셰비키는 투쟁을 늦추기는커녕 주어진 상황에서의 시위와 파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예로 1910-11년 러시아를 파탄 낸 기근과 콜레라 대참사를 들 수 있다. 콜레라는 19106월에 시작되어 궤멸적인 타격을 가했다. 전체적으로 23만여 건, 11만여 명의 사망자가 이 대유행 기간 동안 발생했다. 사망률이 무려 45퍼센트에 달했다. 2천만 명이 기근으로 고통 받았다.

레닌은 여러 기사에서 맑스주의자들이 혁명적 전제정 타도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권에 대한 대중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11년 말에 발표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농민들의 토지 갈구에 대한 충족 없는, 짓누르는 세금 압력으로부터 구조 없는, 그들의 문화 수준의 향상 없는, 그들의 법적 지위의 결정적인 변화 없는, 지주 소유지 몰수 없는, 즉 혁명 없는 진정한 기근과의 투쟁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흉작은 기존 정치체제 전체를, 63일 군주제를 기다리고 있는 파멸을 새롭게 상기시키는 신호탄이다.”

 

석 달 뒤 발표된 또 다른 기사에서 같은 생각이 다시 제기되었다. 그러나 새 농업 정책의 혜택에 대한, 촌락 공동체를 떠난 농가들의 번영에 대한 차르 정부의 그 많은 허풍스런 연설이 있고 난 오늘 러시아의 기근은 농민들에게 큰 가르침을 줄 것이 확실하다. 기근은 수백만 명의 삶을 파괴할 것이지만, 또한 필연적으로 차르 군주제와 지주에 대한 혁명적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못 보도록 막아온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노예적인 차르에 대한 신앙의 마지막 잔재도 파괴할 것이다. 농민들은 대토지 소유를 폐지해야만 그들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저 지주들의 방벽 차르 군주제 타도만이 인간다운 삶을, 기아와 절망적인 가난으로부터의 구조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은 모든 계급의식적인 노동자와 모든 계급의식적인 농민의 의무다. 이것이 기근과 관련된 우리의 주 임무다. 노동자들 속에서 굶주리는 농민들을 위한 모금을 조직 가능한 데서는 어디서든 하고 그러한 모금을 사회민주주의 두마 의원들을 통해 농민들에게 전달하는 것, 이것 또한 당연히 필요한 임무 중의 하나다.”

 

그리고 19121,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당시 볼셰비키는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 6(프라하) 대회의 결의는 맑스주의적 접근법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했다. “기근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임무라는 제목의 이 결의안은 레닌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재난에 대한 정부의 대응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야당들의 미약한 대응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결의는 3가지 중심 결론을 끌어냈는데, 여기서 전문을 인용해본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여 대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a) 모든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참여하여 광범한 주민 대중 사이에서, 특히 농민들 사이에서 선전·선동을 확대하는 가운데 기근과 차르 정권의 정책 전반 사이의 연관을 설명하고, 선동 목적상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트루도비키의 두마 연설뿐만 아니라 마르코프 2세 같은 차르의 벗들의 두마 연설도 촌락에 배포하며,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요구 차르 군주제 타도, 민주공화제 수립, 지주 소유지 몰수 를 대중화시킨다.

 

(b) 기근 희생자들을 최대한 원조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바람을 지지하며,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기부금을 오직 두마의 사회민주주의 의원단이나 노동자 언론, 또는 노동자 문화·교육 등의 단체에게만 보내도록 조언하고, 노동자들이 기근 희생자 원조를 위한 단체나 위원회에 가입과 동시에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의 특별 중핵을 구성한다.

 

(c) 기근으로 인해 촉발된 민주주의 대중의 분노를 시위와 대중집회, 그리고 그 밖의 차리즘에 대항하는 대중투쟁 형태들로 표출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1910-11년 러시아의 기근 및 콜레라의 구체적 조건과 코로나19 팬데믹 간의 차이를 십분 인식하고 있지만, 볼셰비키의 접근방법은 오늘날 혁명가들에게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191710월 권력 장악 후 소련에서 볼셰비키의 경험도 또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여기서 상세히 다루는 것은 본서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므로, 이 주제에 관한 유익한 저작들을 추천하고, 간단한 요약으로 넘어가보자). 10월 혁명 후 레닌과 트로츠키 당시의 혁명정부는 비상한 도전에 직면했다. 4년간의 제국주의 전쟁과 이어서 또 3년간의 내전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나라의 경제 자원 대부분을 파괴했다. 그 결과 러시아의공중보건은 급격히 후퇴했고 각종 역병으로 피폐화했다. 1921/22년에는 끔찍한 기근을 겪었다. 1918년에서 1922년 사이에 유행한 발진티푸스는 250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1921년에서 1923년 사이에 콜레라 발병으로 약 13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여기에 이른바 스페인 독감까지 가세했다. 당연히, 이 유행병들은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역병이었다. 발진티푸스의 사망률은 8~10%로 농촌 지역에서는 더 높았다. 공공병원에서 발진티푸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사망률이 50%나 될 정도로 높았다.

그러나 계획경제와 함께 노동자·농민 국가 건설의 일부로서 공공보건에 대한 완강한 노력을 통해 소비에트 정부는 이 재앙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로, 그리고 언급한 이 모든 재난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정부는 기대수명을 32(1913)에서 44(1926)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소련 보건 정책의 초점은 이러한 질병들이 확산될 기반을 허물기 위해 인민대중의 사회·위생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1921년 보건법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소련공산당은 질병의 발전을 막기 위해 설계된 포괄적인 일련의 보건·위생 조치에 공중보건 정책의 기초를 둘 것이다.” “1920년에 말라리아가 발병하자 모스크바의 열대 의학 연구소는 말라리아 확산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통과시키며, 환자와 질병에 노출된 사람들의 의무 등록제를 실시하고 치료와 임상 및 실험실 작업을 제공하는 말라리아 관측소들을 설치했다. 말라리아 치료제 키니네가 면세유통 되었다.... 19194월에는 한 걸음 나아가 천연두에 대한 의무 예방접종이 실시되었고, 지구, 촌락, 공장, 병영에서의 보건 교육 캠페인이 수많은 포스터 캠페인과 함께 펼쳐졌다. 19203월까지 공중보건 인민위원부는 학령기 아동들, 특히 결핵을 앓고 있는 아동들의 건강에 주의를 쏟았다. 미생물학·역학 남동 러시아 지방연구소가 1919년 사라토프에서 개원했다. 전염병 발병 기간 동안 피해 지역을 돕기 위해 이 연구소 역학 팀이 파견되었다. 1925년까지 10개 도시를 관할하는 의료 관측소와 페스트 방역 연구실 및 병원 네트워크는 위생·방역 팀들이 이끄는 위생 프로그램들을 조직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직장 및 노동자 숙소 청소, 주거 소각, 부검 실시, 장례 조직, 격리 구역 시행, 설치류 및 벼룩 퇴치, 건강 교육 캠페인 등이 진행되었다.”

 

소련 정부의 보건 정책은 당시 전파된 다음과 같은 공식 슬로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염병에 맞선 투쟁부터 더 건강한 노동·생활조건을 위한 투쟁까지”.

그러나 당시 나라를 초토화시켰던 전염성 높은 치명적 역병들에도 불구하고, 소련 정부가 주민 록다운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도 동일하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소련 정부는 대규모 집회도 금지하지 않았고, “사회적 거리두기캠페인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개인주의적이고 후진적인 조치는 볼셰비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러한 조치에 의지하기를 거부했던 것은 발진티푸스 (특히 반점열)와 같은 질병의 전염성을 몰라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소련 보건당국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1920년대 초 러시아에서 활동한 독일 의학교수 뮐렌스 박사는 1923년 자신의 경험을 담은 팸플릿을 발간했다. 그의 보고서는 볼셰비키가 대규모 집회가 질병 확산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모스크바에서 우리는 모든 대규모 기념행사 후에, 이미 감염된 노동자들의 집회 후에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로서 볼셰비키는 그러한 전염병과 싸우는 주된 도구는 쉽게 전염될 수 있는 조건을 질병이 발견할 수 없도록 사람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동시에 소련 정부는 노동자·민중이 집단행동으로 단결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개인주의적으로 분리되지 않을 경우에만 어떤 사회적 개선도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것들은 오늘 우리가 배울 중요한 교훈들이다. 오늘 이른바 좌파가 대중행동 금지와 함께 대량봉쇄(록다운)사회적 거리두기같은 반동적 개념을 지지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1920년대 초의 볼셰비키는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전염병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러한 질병과 싸우기 위한 사회적·의료적 자원은 오늘보다 훨씬 더 원시적이었다. 그럼에도 볼셰비키는 오늘 대부분의 부르주아 정부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주민에 대한 대량억압 조치들에 결코 의존하지 않았다.

당시 공산주의운동 전체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19181월부터 192012월까지 전 세계에 창궐했던 이른바 스페인 독감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 중 하나였다. 그것은 당시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5억 명을 감염시켰다. 17백만 명에서 5천만 명, 나아가 1억 명까지 사망자 추정치가 다양하다. 그러나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대응은 사람들에게 집에 머물라고 촉구하거나, 대중행동과 계급투쟁을 중단시키거나, 대량봉쇄와 같은 억압적인 국가 조치들을 요구하거나, 확실히 이런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계급투쟁과 집단적 대중활동을 강화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회 즉 가난과 비참을 극복하고, 그와 함께 그러한 치명적인 팬데믹 확산의 조건을 극복할 사회 를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고자 자본가계급의 타도를 위해 싸웠다. 초기 코민테른의 전통에 서 있다고 자처하는 그룹들이 오늘 완전히 반대되는 접근법을 취한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인) “스페인 독감때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적 권리 억압에 전면 반대하고 대중투쟁을 요구했는데, 오늘 코로나19 때 그러한 좌파 그룹들이 민주적 권리에 대한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적 억압을 지지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이다! 오늘 RCIT와 모든 진정한 혁명가들은 레닌과 트로츠키 당시 공산주의운동의 전통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록다운의 반동적 반대자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의 좌파 지지자들은 록다운 정책에 반대하는 반동 세력들을 들어서 우리의 주장을 반박하길 좋아한다. 그들은 우리가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루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데마고기를 펴며 비난한다. 이것은 외교적으로 성격규정 한다면 환각성 우매함이라고 할 수 있는 논리다.

혁명가들을 제국주의 강대국 등 사악한 권력의 대리인또는 첩자로 비방하는 것은 반 맑스주의 데마고그들의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볼셰비키는 독일 제국주의의 첩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볼셰비키가 러시아 제국주의의 패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비난은 1917년 여름 케렌스키 정부의 좌파정당들, 즉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가당에 의해서도 제기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스탈린주의자들과 사민주의자들도 1930년대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히틀러의 첩자이자 파시즘의 객관적 공범이라고 비난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독일에 맞서 연합국(··) 제국주의를 방어하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이런 비난은 잘 알려진 반동적 비방 방법이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부르주아 정부의 이러저러한 프로젝트가 혁명가들뿐만 아니라 반동 세력들에 의해서도 반대를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부르주아·소부르주아 계급 내에는 언제나 차이들 (때로는 작은, 때로는 큰)이 존재한다. 1914-16년에 차르 지배 도당 내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중유럽 열강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에 반대하는 친()독일 서클들이 있었다. 러시아 사회제국주의자들에게 이와 같은 반대는 그 주체가 어느 세력이든 다 똑같은 "친독파"의 반대였다. 즉 볼셰비키도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반대했고, 페테르부르크의 친독 귀족들도 그랬다. 비슷하게, 1939-40년에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계급 내에도 히틀러와의 전쟁을 반대하는 친 나치 서클들이 있었다. 보다 최근에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르펜 (아버지 르펜)의 극우파 당은 1991년 이라크 침공 제국주의 전쟁에 프랑스가 참가하는 것에 반대했다. 당연히, 우리 또한 이 전쟁에 반대했지만, 르펜 때문에 반대하는 데 지장 받진 않았다. 물론 우리로서는 국제주의적·반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반대였지만 말이다. 미 제국주의가 데마고기를 펴며 중국에서 민족 억압을 받는 위구르인들의 권리를 지지할 때, 우리가 무슬림 형제자매들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국제주의적인 지지를 줄여야 할까?! 또는 러시아와 중국이 이란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침략을 비난하면, 이것이 트럼프의 제재와 무력 과시에 대한 우리의 반대를 줄여주는가?! 때때로, 야당으로 있는 우익 세력은 데마고기적 친 인민언사로 정부의 이 또는 저 긴축 안에 반대한다. 이것에 혁명가들이 오도되어 그러한 긴축 공격에 대한 반대를 중단할까? 물론 아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 위기의 경우 사정은 아주 명백하다. RCIT가 이 국면의 시작 때부터 문서들에서 설명했듯이, 혁명가들은 모든 긴축 삭감 반대, 공공의료 서비스 확충, 무료 대량검사 등을 내건다. 이런 요구를 걸고 싸우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일 뿐인 록다운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권리를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 록다운의 우익 반대자들이 긴축과 자본주의 위기에 맞서 대중 동원을 요구하지도, 공공의료 확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로가 처음에 록다운에 반대했고 트럼프, 보우소나로의 경우에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다른 여러 사안들에서 보았듯이,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로는 전략적 사고자라기보다는 어릿광대다. 그들의 정부는 매우 불안정하고 그들의 고려 사항은 어떻게든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것에 오직 꽂혀 있어 지배계급의 다른 중요한 사안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해외 미군의 힘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국방부 예산으로 멕시코 장벽을 세우는 것을 선호한다. 정치적으로 말해서, 이 광대들은 이념적 총자본가대표로 역할 할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다.

둘째, 그리고 첫 번째 포인트와 연관된 것으로서,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루 같은 류의 우파 세력들은 보통 독점 부르주아지 내의 단지 소수 파벌을 대표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여타 파벌들보다 더 소부르주아 세력들과 중소 자본가들의 지지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소경영주들과 중소 자본가들, 그리고 소규모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농촌 지역의 노동자들은 경제 셧다운으로 강력히,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그들 소득의 물질적 기초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루와 같은 정치가들이 특히 이러한 층들의 지지에 의존하므로 다른 정치가들보다 록다운을 지지하길 더 꺼리는 이유다.

맑스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과 피억압자의 이익을 방어하는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소부르주아 층들을 독점자본가들에게 등을 돌리게 하고, 그리하여 노동자계급과의 통일을 위한 기초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한 우리는 그들 층의 경제적 이익도 방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공황 시에 그러한 소부르주아 층들을 지원하는 원조 프로그램 (대자본가들에 대한 더 높은 과세로 재원을 조달하는)을 지지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루와 같은 우익 반동 세력들의 정책과는 정반대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우익 반동 정부가 록다운에 반대하는 경향을 가질 거라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로가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주저하거나 주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우익 정부들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루 못지않게 반동적인 은 록다운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 모디, 이스라엘 네타냐후, 헝가리 오르반을 보라.

 

 

 

향후 대중투쟁에서 아군과 적군

 

위의 분석에서 제시했듯이, 현 사태는 역사적인 분수령으로, 이전 몇 년 사이에 이미 진행되어 온 과정을 가속화하고 심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젊은 활동가 층의 출현을 가져온 계급투쟁의 상승을 보아왔다. 이들 투사들은 한편으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초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고 경험도 부족하다. 다른 한편으론 과거의 보수적인 정치적 겉치레로부터 자유롭다.

게다가 자본주의 위기가 가중되고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패권쟁투도 고조됨에 따라 공식 노동자·민중 운동 내 모순이 심화되었다. 그리스의 시리자 (급진좌파연합)와 같은 개량주의 당들이 집권하여 인민대중에게 수년간 잔혹한 긴축과 민영화를 강요하는 정부를 이끌어 왔다. 베네수엘라의 통합사회당 (PSUV) 같은 볼리바르주의 당들은 중·러 제국주의에 나라를 종속시키는 몰이꾼으로 기능하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과 함께 장 뤼크 멜랑숑도 2013년 말리에 대한 프랑스의 군사개입을 지지했다. 한편으론 공식 노동자·민중 운동에서 주도적인 개량주의·민중주의 당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론 지난 10년대 (2011-2020)의 혁명적 봉기 속에서 활동한 새로운 세대의 투사들이 있다. 이 양자 간에 거리가 눈에 띄게 벌어져 가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들 개량주의 당들이 아랍 세계에서의 해방투쟁을 야비하게 비난한 것을 상기해보면 될 것이다. 아랍 혁명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많은 경우 반혁명에 대한 철면피한 지지 (예를 들어 스탈린주의자들과 볼리바르주의자들이 시리아 아사드와 20137월 이집트 시시 장군의 군사쿠데타를 지지한 것 등등)로 이어졌다. 많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이 같은 입장을 공유하거나 그러한 충돌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 많은 스탈린주의자들과 볼리바르주의자들, 그리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제국주의 라이벌 미국에 대항하여 러시아 또는 중국 제국주의를 공공연하게든, 위장한 방식으로든 편들고 있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을 지지하길 거부한 각종 좌파들도 있다.

이 모든 사태발전이 작금의 글로벌 반혁명 공세에 의해 질적으로 더 높은 수준 (또는 더 낮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 놓여졌다. 공식 노동자·민중 운동의 거의 모든 지도부들과 이른바 좌파의 상당 부분들이 록다운 정책과 현 시기 집회·시위 금지를 지지한다. 요컨대 이들 세력은 최근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반혁명 부르주아지를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뉴 리바이어던 시기의 사태발전이 노동자·민중운동 내 양극화를 더 크게 악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건강한 분자들 이들 세력 중 소수파일 가능성이 높은 은 다수파와 단절하고 왼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파는 계속해서 우경화하여 급속히 반혁명 진영으로 향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래로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노동자운동 내 개량주의자들을 사회배외주의자또는 사회제국주의자로 성격규정 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현 위기의 주요 요소가 전 세계적으로 국가 보나파르트주의로의 반혁명적 전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러한 조치를 지지하는 개량주의·중도주의 세력들을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로 성격규정 해야 한다. 이러한 록다운 좌익 (또는 리바이어던 좌익)이 바리케이드의 다른 편, 반혁명 편에 합류한 것이다.

RCIT와 모든 진정한 혁명가들은 노동조합 내, 그리고 일반으로는 노동자·민중운동 내 사회보나파르트주의 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우리는 현 세계정세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분석과 결론을 공유하고 록다운 좌익과 단절할 의사가 있는 좌경화하는 사회주의 세력과의 어떠한 관계 회복도 환영한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진전시킬 수 있는 그 어떤 구체적 프로젝트에도 참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목표는 토론과 긴밀한 협력의 과정을 여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힘을 합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주의혁명 세계당 건설을 향한 투쟁을 전진시키는 단 하나의 길이다.

우리가 이러한 좌측으로 이동하는 세력에 대해 말할 때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한테로 국한시켜 말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 이 대목에서 중요하다. 레닌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혁명적 운동의 잠재적 동반자는 제2 인터내셔널 내 맑스주의 세력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도 찾을 수 있음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그는 생디칼리스트들 사이에서 잠재적 동맹군을 찾았다. 이후 초기 코민테른 시절에도 혁명가들은 토론을 열어 아나키스트들과 중국·인도·조선의 민족주의자들 및 미국의 흑인 민족주의자들 (예를 들어 아프리카 혈통 형제단”)을 전취하려고 몇몇 경우에 성공했다 노력했다.

마찬가지로 오늘 혁명가들은 트로츠키주의환경 외부의, 심지어는 맑스주의환경 외부의 진보 세력들에게 개방적이어야 하며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정치의 현 결론이 마오주의, 범아프리카주의, 각종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운동 등에 아무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놀랄 일이다.

나아가 혁명가들은 강령적 관점을 공유하지 않는, 그리고 융합이 가능하지 않은 세력과 협력하는 데도 개방적이어야 한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적 억압과 제국주의 전쟁과 긴축 공격 등의 면에서 공통의 지반이 있다면 공동 활동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그러한 협력은 엄격한 통일전선 전술, 즉 정치적 기치를 섞지 않은 공동 실천활동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혁명가들은 중간계급과 자유주의 지식인과 노동귀족에 주파수를 맞추는 행태를 일절 거부해야 한다. 소위 좌파의 대부분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지향이다. RCIT는 언제나 좌파의 이러한 노동귀족적 지향을 비판해 왔다. 실제로 좌파가 현재 사회보나파르트주의로 추락해버린 것은 이 소부르주아적 환경에 좌파가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되어버린 결과다. 혁명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자계급의 중·하층과 피억압자를 향해야 한다. 바로 이들 층이 현 자본주의 3중 위기에 가장 혹독히 타격 받고 있다. 반혁명 공격에 먼저 반기를 드는 것도 이 층들일 것이다. 모든 스탈린주의적·개량주의적 편견에 가장 영향을 적게 받는 것도 이 층들이다. 요약하면, 새로운 사회주의혁명 세계당 건설에서 혁명가들의 슬로건은 이른바 좌파와 단절하고 노동자계급·피억압 대중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지향은 우리가 다른 글들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레닌과 트로츠키의 접근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단 세 개의 인용문을 제시하겠다. 1916년에 레닌은 기회주의자와 맑스주의자 간의 근본적인 지향 차이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따라서 우리가 여전히 사회주의자이기를 원한다면, 더 낮고 더 깊게 현실의 대중 속으로 내려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이것이 기회주의와의 투쟁의 모든 의미이며 모든 내용이다. 기회주의자들과 사회배외주의자들이 실제로는 대중의 이익을 배반하고 팔아먹고 있다는 사실, 그들이 노동자 가운데 소수층의 일시적 특권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 그들이 부르주아 사상과 영향의 전달자라는 사실, 그들이 실제로는 부르주아지의 동맹자이며 하수인이라는 사실,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우리는 대중에게 그들의 진정한 정치적 이익을 분간하는 것을 가르치고, 제국주의 전쟁과 제국주의 휴전의 모든 길고 고통에 찬 정세 변전을 거쳐 사회주의를 위해,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가르친다.”

또 트로츠키도 볼셰비즘의 전략적 지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볼셰비즘의 강점과 의의는 노동자계급의 상층이 아니라, 피억압·피착취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진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제4인터내셔널의 유명한 창립 강령인 이행강령에서도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회주의 조직들은 바로 그 본성상 주로 노동자계급의 최상층에 주의를 집중하고, 따라서 청년과 여성 노동자를 모두 무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쇠퇴·부후화는 임금노동자로서, 그리고 주부로서의 여성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다. 4인터내셔널 지부들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착취 받는 층들 속에서,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 속에서 지지 기반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헌신과 이타성과 희생할 용의의 마르지 않는 저장소를 발견할 것이다.”

 

몇 년 전, RCIT는 세계정세에 관한 주요 문서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을 요약 제시했다. 우리는 거기서의 결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오늘 적실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중도주의·좌익개량주의 계열 대다수가 비관주의, 회의주의, "좌파 통합"이 부재하다고 투덜거리기, "레닌주의적 초중앙집중주의""전위당" 개념의 신경질적인 폐기 선언, 청산주의 칭찬 등에 의해 점점 더 오염되어 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들 세력이 노동관료와 소부르주아 지식인에게 지향을 두고 있고 그들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가들은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 강령과 전략을 찾고 있는 노동자계급·피억압자의 새로운 전투적 층에 지향을 맞춘다. 우리의 낙관주의와 확고함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혁명적 방향으로 발전하길 원하는 자들은 중도주의·좌익개량주의 늪을 향한 지향과 단절하고 건강한 전투적 프롤레타리아 환경에 뿌리를 내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혁명가들이 개량주의 당들이나 중도주의 그룹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통일전선 전술은 노동자 전위에게서 이들 수정주의자들의 영향을 벗겨내야 하는 힘든 투쟁이 항상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유효성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RCIT는 노동자·피억압자 대열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투사들과 새로운 주도력에 지향을 맞춘다. 이러한 층으로부터만 새로 촉망 받는 세력과 새로운 역동성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좌익개량주의·중도주의 대열의 보다 건강한 분자들에 영향을 미쳐 그들이 수정주의자들의 썩은 방법과 단절하는 것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혁명가들은 자본주의가 거대한 불안정과 급격한 전환의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 노동자운동도 또한 이러한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없다. 이 시기의 성격과 그에 따른 과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세력들은 점점 더 타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거듭 우경화를 강요받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기의 첨예한 적대적 본질에 대한 이해에 근접해오고 있는 세력들, 투쟁하는 대중 특히 노동자계급·피억압자의 하층 후진적 의식을 거만하게 비웃는 것 없이 이들 대중과 함께 하려는 의지가 있는 세력들, 그러면서 동시에 혁명적 강령을 위해 비타협적으로 싸우고자 결의하고 개량주의·중도주의 배반자들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세력들, 이러한 세력들은 스스로를 바꿔낼 수 있으며, 새로운 사회주의혁명 세계당 건설 투쟁에서 건강하고 완전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적 유추의 한계를 의식하면서 우리는 어느 정도 현 시기가 1914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의 연간과 유사함을 지니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이 시기에 노동자운동은 첨예한 위기와 분열과 전변을 거쳤다. 이 시기에 제2 인터내셔널 중도주의 다수파의 부패 이미 1914년 이전에 존재했지만 그 당시에는 눈에 덜 명백했던 가 숨김없이 완전히 드러났다. 레닌과 그의 지지자들의 지향과 전술은 오늘 볼셰비키-공산주의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교훈을 준다.”




이후 <5장 록다운 좌익: 비판> 및 <결론>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