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록다운 좌파: 비판

 

                                                                                * 각주를 보려면 위에 첨부한 PDF 파일 참조

                                                                                                 

레닌은 전쟁은 종종 썩은 것을 드러내고 인습적인 것을 버리는데 유용하다고 평한 적이 있다. 현 코로나19 위기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최근 몇 주는 개량주의·중도주의 좌익에게서 썩은 것을 드러내는데 일조했다.

우리가 앞 장들에서 보여주었듯이, 전 세계의 자본가계급들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적 공격을 개시했다. 수백, 수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던져졌고, 도시 및 농촌 빈민들은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많은 소 상점들은 파산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공격에 대해 공식 노동자·민중 운동의 저항은 거의 없다. 또 개량주의자들은 경찰·감시국가의 급속한 팽창에 대해 어떠한 항의도 감행치 않는다. 그리고 또 우리가 보여주었듯이, 개량주의자들의 이 모든 투항은 코로나19 위기를 엄폐물 삼아서 일어났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의 스탈린주의·좌익개량주의 집행자들

 

많은 나라에서 노동조합과 민중 단체 지도부들은 부르주아 정부가 내린 비상 경제·사회·보건 프로그램에 동의했다. 몇몇 경우에는 개량주의 당들이 심지어 긴축 프로그램과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추진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 논설에서 보여주었듯이, 포데모스와 스페인공산당 (PCE; 스페인 스탈린주의의 역사적인 당), 그리고 그 우군인 통합좌파(IU) 등과 같은 좌파정당들은 사민주의 총리 페드로 산체스가 이끄는 연립정부의 일부로 들어가 있다. 그들은 모두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적 공격을 전면 지지해 왔다. 스페인공산당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정부가 공공행정 조치 및 기능을 조정하고 계획할 수 있게 해줄 국가경계태세 선포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1994년 이후 공산당이 정부 연정의 중요한 일부로 있는 남아공도 마찬가지 경우다. 군이 순찰하는 전국 규모의 록다운 (봉쇄령)이 인민에게 내려지면서 대량 궁핍과 기아 사태가 초래됐다. 남아공공산당(SACP)은 이 록다운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들은 고립된 한 두 예가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사민주의자들은 록다운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스탈린주의 당이 보수당 주도 정부에게 민주적 기본권을 너무 오래 동안 침해하지는 말아달라고 감히 호소할 뿐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많은 조치들이 합리적이지만, 우리는 또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제약과 개인의 시민적 권리 및 자유와 노동권에 대한 대규모 간섭은 제한된 기간 동안만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직 록다운과 민주적 권리 금지가 내려지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즉 엄폐물 삼아서 말이다. 브라질에서는 브라질공산당(PCB)이 집회와 대중적 활동에 대한 금지를 뜻할 뿐인 가능한 한 최대 규모의 사회적 고립을 찬양, 요구하는 것으로 성명서를 시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조치 중 하나로서, 나라의 경제활동을 상당히 감소시키는 사회적 격리가 가능한 한 최대 규모로 채택되고 있다.”

심지어 록다운이 아주 눈에 드러나게 인민대중에게 급격한 결과를 불러온 나라들에서도 스탈린주의자들은 록다운 종식을 요구하길 삼갔고, 투쟁을 호소, 요구하는 것도 일절 삼갔다. 인도공산당(맑스주의자) 정치국은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록다운의 잔혹한 결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3주간의 록다운 경험은 우리 인민의 상당 부분에게 기아와 주거 부족 사태가 대규모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또 모디 정부가 록다운 기간 동안 어떠한 대량검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록다운 기간은 팬데믹 확산을 차단하고 억제하기 위해 감염자 집단을 식별하기 위한 대규모 검사를 실시하는 데 활용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검사는 매우 낮은 수준에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에 머물러 있다.” 놀랍군! 마치 이것이 언제 모디 정부의 의도였던 것처럼! 록다운의 전체 목적은 인민을 원자화하고 약화시키는 것이지, 건강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명백한, 파괴적이고 쓸모없는 록다운의 역할과는 상관없이, 인도공산당(M)은 우익 모디 정부에게 더 잘 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다! “총리가 사회공동체의 양극화를 격화시키려는 일부 시도를 비난하지 않은 것은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이러한 파괴적인 시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완전한 단합으로만 이번 코로나19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정부는 420일 상황을 검토한 후 일정한 완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총리가 말했다. 이주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도록 수송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도공산당I(M) 정치국은 중앙정부에 이 문제들을 즉각 처리하고 필요한 지침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국가비상사태를 타도하는 것에 대해서나, 대중이 반격할 필요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다!

 

 

보나파르트주의 국가비상사태의 트로츠키주의치어리더들

 

많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조직들도 이러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앨런 우즈가 이끄는 국제맑스주의경향(IMT)트로츠키주의옷을 걸친 사회보나파르트주의의 한 예다.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IMT의 중앙 성명은 중국 스탈린주의-자본가 정권의 엄격한 계엄령 식 록다운 정책을 예로 들어 찬양하고 있다. 성명은 심지어 이탈리아 콘테 정부의 록다운 정책이 충분히 엄격하지 않다는 중국의 비판을 지지하기까지 한다! 주민위원회와 직장위원회에 의해 비상 대응이 조직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역 및 전국 수준으로 연결되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가장 빠른 수단으로 완전하게 효과적인 록다운을 조직해야 한다.... 오늘 중국은 의심할 바 없이 자본주의 나라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중앙 계획 및 국가통제 산업의 요소들을 일정 정도 아직 유지하고 있는 특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다. 현 펜데믹과 싸우는 데 있어 중국에 엄청난 이점을 아주 주목할 만한 성과와 함께 부여한 것이 바로 이들 요소다. 이러한 사실은 통상 중국에 동조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평한 내용이다. 중국이 우한 발병 사태에서 발휘한 강점은 약 5천만 명 인구의 거대한 지역을 록다운 하면서 나라의 여타 지역들의 자원을 록다운 된 지역의 사람들을 원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다른 지역 출신 간호사와 의사들을 보낼 수 있고, 나라 전체로부터 자원을 끌어내 보낼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매우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이탈리아는 나머지 유럽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 실제로 독일 같은 나라들은 매우 단기적인 견지에서, 자국 일국적 견지에서 사고하며 마스크 같은 용품들의 수출을 막았다. 국제적으로 조율된 작전이 있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이탈리아에 있는 중국 의사들이 주문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탈리아 상황을 관찰한 뒤, 우한에서 바이러스를 퇴치한 경험으로부터, 거리에 여전히 사람들의 이동이 너무 많다는 의견을 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한 이후 줄곧 말해왔던 것을 확인시켜준다. 모든 비필수적 생산은 중단되어야 한다. 나머지 유럽이 바이러스의 초기 확산을 퇴치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적 자원을 보냈다면, 이탈리아는 전면 록다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록다운 기간은 더 짧아지고 더 효과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결과로 유럽연합의 각 회원국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 다른 속도로 행동했다.

 

IMT 웹사이트의 편집자는 또 다른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는 중국에서 이동 제한이 완화되고 있지만, 일단 새로운 발병이 시작되면 제한이 다시 시행될 것 같다. 덴마크와 이탈리아가 록다운 중이다. 다른 많은 나라들도 똑같이 해야 할 것이다. 정부들은 "무언가 하고 있는" 듯이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부들이 취한 조치들 중 어떤 것들은 역학적으로 일리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사적 소유와 자본주의의 무정부성과 민족국가의 존재 등으로 그 장점이 훼손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IMT는 록다운이 기아를 초래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아 없는 록다운을 원한다!’IMT의 결론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요구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동안 충분한 식량과 적절한 주거와 그 밖의 필수품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록다운으로 가중되는 기아 반대! 록다운 시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식량 및 가계 필수품 공급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얼마나 자기 모순적이고 망상적인 요구인가! 침대에 코브라 뱀을 받아들이지만 날 내버려두라고 코브라 뱀에게 요구하는 격이다! 나이지리아의 RCIT 동지들이 설명했듯이, 대중투쟁 없이는, 즉 록다운과 집회·시위 금지를 어겨서 깨지 않고는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공급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IMT 사회보나파르트주의의 극히 기회주의적인 본질은 그 구체적인 실행을 보면 매우 명백해진다. 오스트리아에서 세바스찬 쿠르츠 총리의 보수당 주도 연립정부가 31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 중심 요소는 가장 필요한 활동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집을 떠나는 것을 금지하는 보건부 장관의 법령이다. 같은 법령으로 집회와 시위도 일절 금지된다. (나중에 정부는 이 집회·시위 금지를 6월까지 연장했다.) 정부는 또 군대와 공익근무자 (병역 대체복무자)의 배치도 지시했다. 당연히, RCIT 오스트리아 지부는 즉각 이 국가비상사태와 민주적 권리 억압을 강력히 규탄하는 공개성명을 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IMT는 매우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정부 법령에 열성으로 반응했다. 지도부 공식 성명에서 IMT는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물리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라는 보건 당국의 지시에 따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내용과 실천에서 이 대책을 지지한다.... 예측 가능한 보건 비상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지금 사람들이 공익근무자로 징집되고 있다. 우리는 징집 대상 연령 집단들에게 징집에 빨리 따르고, 재난과 싸우기 위한 자원 봉사와 공익 복무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IMT가 이 성명을 발표하던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사망자 수는 3명을 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사망자 수는 매년 독감으로 죽는 사람들 숫자에 비할 때 여전히 그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기서 제쳐둔다. IMT1992-95년 보스니아 전쟁 동안 20만 명 이상 (그 대부분이 보스니아 인이다)이 살해당한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재앙운운하는 시니컬한 제국주의적 오만도 제쳐둔다. 이 사망자들은 발칸 출신일 ”, “문명화된서유럽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IMT에게는 확실히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이 중도주의자들이 당시 집단학살범 세르비아 배외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보스니아 인민을 방어하길 거부 우리 운동 및 모든 진정한 혁명적 국제주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했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어쨌든, 보수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조치들 (집회·시위 금지를 포함하는)을 전심전력으로 지지해 달라는 IMT 오스트리아의 공개 요구는 비굴한 사회보나파르트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사례다. 청년들에게 군 복무와 비슷한, 자본가 국가를 위한 저임금 근무인 공익근무에 자원하라는 요구 또한 마찬가지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하자 사민주의자들은 청년들에게 이 어려운 때에정부에 애국적으로 봉사할 것을 요구했다. 코로나19 위기가 시작하자 같은 정신으로 IMT는 청년들에게 이 어려운 때에정부에 애국적으로 봉사하라고 요구했다.

불행하게도 IMT는 록아웃 정책을 지지하는 유일한 자칭 트로츠키주의 조직이 아니다. 독일에서도 윈프리드 울프 같은 유명한 만델주의 제4 인터내셔널 지식인들이 록다운 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보수당 주도 정부가 두 주나 늦게록다운을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민주적 권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역시도 받아들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이들은 부르주아 정부에게 반민주적 공격을 너무 과도하게 하지 말라고 호소할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헌법적 권리의 제약은 그 경계가 분명해야 하며 일시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지배계급은 그런 비판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투항주의 정책의 또 다른 예로 5 인터내셔널 동맹이 있다. (영국의 노동자권력이 그 가장 두드러진 지부로서, 5년 전부터 노동당에 입당주의를 시작하면서 조직명을 적기 (Red Flag)”로 개칭했다). 5인터 동맹은 부르주아 정부가 록다운을 더 일찍, 더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무엇이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지 계산하느라 대응을 지연시킨 정부는 이제 점점 더 권위주의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록다운을 실시했다. 이 록다운은 몇 주 전에 했어야 했고, 또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원자화하는 정책이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5인터 동맹은 그 정책을 중단기적 해결책으로 지지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접촉을 제한하고 사람들의 이동과 서로간의 접촉에 제약을 두는 조치들이 공공의 안전에 필요한 한 그 조치들을 지지하고 요구하지만, 그 조치들이 어떻게 사용되고 얼마나 지속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권리는 결코 양도하지 않는다.” 5인터 동맹은 록다운 정책을 더 장기간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전염병의 제한적 통제로 수개월 동안 생산이 상당 부분 폐쇄되겠지만, 그리고 나면 노동인력은 거의 줄어들지 않은 채로 생산의 재개가 가능해질 것이다.” 명백히 이들 전()혁명가들은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1929년 식의 공황과 경찰·감시 국가의 전격 구축 한 가운데서 투쟁 능력을 상실할 경우 입게 될 치명적인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그러한 결과를 제안하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설사 그것이 무지의 소치라고 하더라도 그 같은 멍청함은 정치적 범죄행위에 가깝다!

 

 

자본가 국가의 본질에 대한 수정주의적 인식

 

자본가 국가에 대한 IMT 등의 범죄적 환상은 우연이 아니다. 이 환상은 자본가 국가의 계급적 본질과 그에 따른 혁명가들의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다. 앞의 3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맑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국가가 특별 무력 조직, 일부 계급의 억압을 위한 폭력 조직”(레닌)이라는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은 평화적인 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가 국가기계의 파괴를 목표로 하는 폭력·무장 봉기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음과 같이 레닌이 선언했듯이 말이다.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의한 부르주아 국가의 대체는 폭력 혁명 없이는 불가능하다.”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부르주아 국가기계의 강제적인 파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도주의 조직들은 테드 그란트, 피터 타페, 앨런 우즈의 전통 전반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맑스주의적 접근법을 거부해 왔다. 이러한 접근법이 부르주아 국가 일반에 대한, 그리고 특수하게는 개량주의 관료에 대한 중도주의자들의 평화주의적·기회주의적 영합에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앨런 우즈는 IMT의 국가 이론을 제시하는 한 논설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노동조합과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수중에 있는 거대한 힘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사회의 평화적 전환은 전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우즈에 따르면, 자본가 국가의 부르주아 제도들이 사회주의 변혁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평화적 전환은 더더욱 가능하다. 그러므로 IMT의 꿈의 세계에서는 심지어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포르투갈 혁명이 평화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회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데에 조금의 의문도 없다.”

이러한 소부르주아 평화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무장해제 된) IMT가 자본가 국가를 진보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자본가 국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 코로나19 위기의 경우에서처럼)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에 유리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IMT는 자본가 국가의 보건 정치가 그것의 일반적인 반동 정치의 계속이라는 것을 무시한다. 레닌은 이런 상황에서, 전례 없이 널리 퍼져 있는 맑스주의의 왜곡을 감안할 때,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맑스가 국가라는 주제에 대해 실제로 가르친 것을 다시 정립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IMT의 거대한 이론적·실천적 혼란을 볼 때, 이 과제는 그 중요성을 잃지 않았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혁명적 정치에서는 아니다!

 

다른 중도주의자들은 그 정도로까지 나아가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록다운과 민주적 권리 금지에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지난해 피터 타페의 CWI(노동자 인터내셔널 위원회)에서 갈라진 ISA(국제사회주의 대안)은 장문의 국제 지도부 성명을 통해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의 록다운은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격리 방역이 필요한 지역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위원회가 다른 사람들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이 "대접" 받는 상황을 막기 위해 식량 등 필수 품목의 분배를 공개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ISA의 전 동료들[CWI]도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몇몇 긴 성명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CWI는 임금 방어, 건강 보호 등의 측면에서 가능한 모든 요구를 제기하고 있지만, 록아웃 그 자체에는 도전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그 모든 요구들을 위해 싸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 그 자체에도 도전하지 않는다.

록다운 시 CWI는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즉각 보호하고, 필요한 식량과 의약품을 유지하며, 사회의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요구한다.”이 위기 동안 노조 지도자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록다운을 견디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요구하는 공세에 나서야 한다.” CWI()지부격인 잉글랜드·웨일스 지부가 낸 위기 타개를 위한 노동자 헌장은 록다운 문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CWI가 인민대중에게 록다운이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CWI는 그 국제지도부가 낸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억압 또한 록다운의 한 측면인데, 록다운 조치 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물질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무력과 벌금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인류의 3분의 1에게 타격을 주고 있고 노동자계급과 피억압자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민주적 공간을 급격히 축소시키고 있는 록다운 정책의 종식을 요구하길 거부한다!

프랑스의 POID(독립민주노동자당)를 주요 구성요소로 하는 랑베르주의자들한테서도 비슷한 시나리오를 볼 수 있다. 많은 요구와 자본가에 대한 많은 비난... 하지만 국가비상사태와 록다운 정책에 대항하는 대중투쟁에 대한 요구는 없다!

이러한 중도주의 정책은 1차 세계대전 중에 각종 러시아 사회배외주의자 그룹들이 제국주의 전쟁에 보낸 반쯤 은폐된 지지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플레하노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공공연히 당당하게 제국주의 조국 방어를 요구했지만, 다른 사회배외주의자들은 보다 조심스럽게 또는 보다 교묘하게 조국 방어를 지지했다. <<나샤 자리야>> 신문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한 영향력 있는 멘셰비키 개량주의자 조류는 노동자들에게 전쟁에 대한 반대 행동을 취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레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자유주의 노동자 정치가들은 본질에서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다른 환경에서, 그리고 조금 완화된 형태로지만 행동하고 있다. 자유주의 노동자 정치가들은 다양한 범주에 걸쳐 있다. 먼저 인민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쟁에 대한 반대 행동을 취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는 <<나샤 자리야>>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중도주의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록다운을 칭찬하지는 않지만, 록다운 종식을 요구하지도, 대중에게 록다운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분명하게 요구하지도 않는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은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유익한 조언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적 정치에는 낯선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한 행동의 전제조건인 혁명적 정치에는 말이다!

이 모든 수정주의자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특징은 현 자본주의 경제·정치적 위기와 자본주의 보건 위기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세 위기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고 이 세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은 하나의 동일한 반혁명 노선의 표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 세 영역을 하나의 동일한 총체의 일부로 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레닌은 헤겔에 관한 노트에서 현실의 계기들의 총합, 그 총체를 인식하는 것이 변증법적 인식의 본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불행히도 수정주의자들은 현 세계정세의 총체적 본질에 대한 이 같은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현 시기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지 않고는, 필요한 강령적 결론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시기 개량주의·중도주의 정치의 몇 가지 쟁점을 다루기 전에 먼저 코로나19 위기에서 맑스주의자와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 간의 주요 차이점을 도표 형태로 요약해 본다.

명백히 이것은 주요 특징의 일반적 경향을 망라한 도식이다. 모든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들이 반드시 그러한 정책의 모든 측면을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맑스주의자와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 간의

차이에 따른 실천적 결과>

 

 

맑스주의자: 록다운 정책과 집회·시위 등 민주적 제 권리 억압의 종식을 요구한다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 이러한 종식 요구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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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자: 인민대중이 자연발생적으로 떨쳐 일어설 때 맑스주의자들은 이것을 지지하며 그러한 투쟁에 방향과 조직을 부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 인민대중이 자연발생적으로 떨쳐 일어설 때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들은 이것을 공공연하게 반대하거나, 아니면 단지 대중의 우려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에 국한할 것이며 그러한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거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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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감행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투쟁을 요구한다. 유일하게 지지하는 투쟁은 직장에서의 투쟁인데, 왜냐하면 이들 사업장도 폐쇄시켜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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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자: 제국주의 나라들에서도 반()합법을 준비하고 조직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보나파르트주의자: 국가 탄압의 위험을 무시하며 반합법 정치활동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에 대한 노동자 통제”?

 

일부 사이비 트로츠키주의 세력들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적 공격을 지지한다는 불유쾌한 사실을 피해가기 위한 방편으로 노동자 통제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그들이 주창하는 노동자 통제는 록다운에 대한 노동자 통제이며, 모든 집회·시위 금지에 대한 노동자 통제다.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조직 사회주의 부활그룹 일련의 올바른 비판에 근거하여 좌익 만델주의 그룹 사회주의 행동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뒤 지난 해 결성한 그룹 이 그 한 예다. 이 그룹은 코로나19 사태에 관한 성명에서 적극적으로 록다운을 요구하지는 않고, “모든 이동 제한에 대한 공적 토론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 실행!”을 슬로건으로 제기한다.

위에서 언급한 제5인터내셔널 동맹도 록다운 정책에 대한 지지를 노동자 통제슬로건과 연결시키려고 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이 록다운을 통제해야 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비필수 작업을 중단시킬, 그리고 계속 문을 열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업장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관철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당장 노동자계급의 행동과 조직이 분명히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슬로건이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에 대한 사실상의 지지를 은폐하려는 부실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온전한 노동자 통제사상은 생산수단을 틀어쥐고 있는 자본가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에 있다.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몰수하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계획경제로 넘기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서의 도전 말이다. 맑스주의자들은 노동자 통제 슬로건을 부르주아 탄압 기구와 섞는다는 생각을 언제나 강하게 거부해 왔다. 만약 제5인터내셔널 동맹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혁명적인 과거를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면, 우리가 경찰에 대한 민주적 노동자 통제를 요구하는 CWI의 초 기회주의 슬로건을 항상 강하게 비난했다는 것을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혁명가들은 부르주아 탄압 기구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그것을 분쇄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맑스주의자들은 이민이나 제국주의 전쟁, 또는 동성애자 권리의 제한에 대해 노동자 통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나라들에서의 이민 통제에 대항하여,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동성애자의 모든 민주적 권리를 위해 언제나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싸운다. 마찬가지로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을 집안에 가두고 노동자들이 모여서 시위할 권리를 금지하는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조치들을 통제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1945년 이래로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민주적 권리에 대한 이 가장 심대한 공격을 분쇄하고자 한다!

이 슬로건은 현재의 혼란된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피억압자가 독점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언론, 그리고 노동자·민중운동 관료 지도부들의 신성동맹이 몰아치는 흉포한 공세를 맞고 있는 지금 특히 위험하고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런 혼란과 공포가 만연한 조건 아래서는 노동조합 또는 전체 노동자계급에서의 다수가 집회와 시위 등 민주적 권리에 대한 억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노동자·피억압자 전위가 조직하고 시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싸울 권리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민 다수가 거대한 부르주아 언론 캠페인에 노출되어 당장은 이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노동자 통제의 실제 의의는 중도주의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그것이 제공한다는 데 있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과 민주적 권리 억압을 규탄하지 못하는 중도주의자들의 그러한 기회주의를 정당화해 줄 이론적 허점을 말이다. 록다운과 민주적 권리 억압에 대한 노동자 통제슬로건은 아파 죽는 배치기 다이빙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지적 줄타기다.

 

 

사회보나파르트주의: 경제주의와 멘셰비즘의 자식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과 민주적 권리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지 못하는 이러한 기회주의는 경제주의 즉 정치적 요구보다 경제적 요구를 우선시하는 정책 의 고전적 특징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첫째, 록다운 좌파는 경제적 요구정치적 요구와 분리시킨다. 록다운 좌파는 지금 경제 및 보건 조치들 긴축 반대, 공공의료 등 을 요구하면서, 오늘 민주적 권리 방어는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요구는 잠시 뒤로, 팬데믹이 마무리되고 난 뒤로 미룬다. 이것이 언제일지, 또 다른 팬데믹이 안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은 이들 세력이 경제적 요구, 보건 요구를 정치적 요구보다 훨씬 더 중요한, 훨씬 더 시급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의 반영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우리가 위에서 보여주었듯이, 민주적 권리에 대한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적 억압을 깨지 않고는 단 하나의 경제적 요구 또는 보건 요구도 달성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동시에 민주적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고는, 긴축에 대항하는, 또는 팬데믹에 대항하는 요구 프로그램을 위해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이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는 기회주의는 사회보나파르트주의적 경제주의에서 비롯한다.

이와 관련, 정치적 요구와 정치권력을 위한 투쟁의 결정적인 역할에 대한 노동자계급 교육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고전적인 경제주의적 오류가 또한 여기에 있다. 혁명적 민주주의 없이는 혁명적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자본가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팬데믹 때뿐만 아니라 일반으로도 것 없이는 혁명적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레닌은 경제주의는 노동자들을 자유주의자들에게 종속시키기 위해 애쓰는 부르주아적, 기회주의적 조류라고 성격규정 한 바 있다. 오늘 특히 그렇다. 동시에 정치적, 민주적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 없이, 단지 경제적 요구, 보건 요구만을 강조하는 것은 배외주의적 보나파르트주의 국가기계의 손아귀에서 노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달리 말하면, ·서 대부분의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자본주의적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적부르주아지 양쪽에 봉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좌파가 현 정세에서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과 민주적 권리 억압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역사적인 글로벌 반혁명 공세의 순간에 물살을 거슬러 헤엄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무기력 상태를 반영한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고 시류를 탈때는 독재와 배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시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것이 일시적으로 인기 없다하더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진정한 혁명가들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레닌은 1차 세계대전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전쟁은, 한 사람의 인생이나 민족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위기가 그렇듯이 어떤 사람들은 억누르고 망가뜨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단련시키고 계몽한다.” 이른바 좌파의 대부분이 현재의 역사적인 시험을 견뎌내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명백하다!

혁명당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의 바로 그 토대를 상기하는 것이 이 대목에서 중요하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책자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혁명당에 대한 기본 사상은 혁명적 강령의 기초 위에서 노동자계급의 가장 각성한 분자들을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혁명당이 계급 전체의 당이 아니라 오직 전위의 당인 것은 그 때문이다. 강령상의 명확성, 철의 규율 등도 여기서 나온다. 계급 전체와 전위의 이러한 분리는 부르주아 매체의 영향 아래 더 쉽게 들어가 버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보다 뒤떨어진 부문의 압력을 전위가 견뎌낼 수 있게 한다.

레닌과 트로츠키 시절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19202차 대회에서 채택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공산당의 역할에 관한 테제>에서 맑스주의의 교훈을 요약 총괄했다.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일부분으로, 가장 앞서 나간, 가장 계급적으로 각성되어 있는, 따라서 가장 혁명적인 부분이다. 자연선택의 과정에 의해 공산당은 최량의, 가장 계급적으로 각성되어 있는, 가장 헌신적이고 멀리 내다보는 노동자로 구성된다. 공산당은 전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이익 이외에 다른 이익을 가지지 않는다.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길 전체를 그 총체성 속에서 명확히 볼 수 있고, 이 길의 굽이마다 개별 집단이나 직종의 이익이 아닌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계급 전체와는 구분된다.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앞서 나가는 부분이 프롤레타리아트와 반프롤레타리아 대중 전체를 올바른 길을 따라 안내해가기 위해 사용하는 조직적·정치적 지렛대다.”

 

코민테른은 당과 계급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지 않도록 경고했다. 그리하여 전위를, 노동자계급 내부의 부르주아·소부르주아 영향력에 맞서 싸우고, 뒤떨어진 노동자의 의식에 영합하지 않는 별개의 당으로 꾸려낼 필요를 강조했다.

 

당 개념과 계급 개념 간에는 극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독일과 영국과 그 밖의 나라들의 기독교 노동조합과 자유주의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노동자계급의 일부분이다. 여전히 샤이데만과 곰퍼스와 그 비슷한 경향을 따르고 있는 많은 노동자 집단은 의심할 여지없이 노동자계급의 일부분이다.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아주 많은 반동적 분자들을 포함하는 경우조차도 족히 있을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이런 뒤떨어진 부분들에 장단 맞추지 않고 노동자계급 전체를 공산주의 전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공산당의 임무다. 당과 계급 이 두 개념을 혼동하고 뒤섞는 것은 최대의 오류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 전쟁 중 노동자계급 특정 부분의 정서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익 프롤레타리아 당에게 전쟁과의 전쟁을 선포할 것을 요구하는 을 옹호함으로써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러한 정서와 편견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이 발발하자, 모든 나라의 사회배반자 당들은 ''국 부르주아를 지지하면서 자신들이 언제나 그리고 일관되게 노동자계급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상태에서 노동자 다수자의 정서를 거스르고 또 무릅쓰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당의 임무여야 한다는 것을 망각했다. 같은 식으로 20세기 초 당시의 러시아 멘셰비키 (이른바 경제주의자들)는 전체 노동자계급이 아직 정치투쟁에 대한 이해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차리즘에 대한 공공연한 정치투쟁을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독일 독립사회민주당 우파는 당이 있는 것은 대중을 인도하고 대중에게 나아갈 길을 안내하라고 있는 것임을 이해하길 거부한 채,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하게 행동할 때 언제나 "대중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리바이어던 좌파가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과 민주적 권리 억압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고전적인 단계론 처음에 멘셰비즘이, 그 다음에 스탈린주의가 내걸었던 에 영합하고 있는 사실을 또한 드러내준다. 먼저 경제적 요구와 보건 요구를, 그리고 나중에서야 민주주의 요구, 반 보나파르트주의 요구를 내건다는 사상을 록다운 좌파가 띄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의 승리는 독점 부르주아지의 강화를, 그에 따라 보건 부문에서 긴축·삭감이라는 반혁명적 프로그램의 승리를 의미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록다운 좌파의 접근방식은 1980년대 스탈린주의 당들 사이에 유행했던 이론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NATO 핵무장 프로그램에 대항하여 모스크바 측의 평화 캠페인을 띄우기 위해, 한편으로는 계급 문제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자가 노동자계급에 관계된 문제라면, 후자는 전 인민에 관계된, 즉 부르주아지 부분들에게도 관계된 문제다. 그리하여 스탈린주의자들은 평화 애호 부르주아지와 인민전선 동맹을 꾸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늘 개량주의·중도주의 좌파의 많은 부분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은 모두에게 몰아친 위험이며, 따라서 그러한 팬데믹과 싸우는 데는 지배계급의 합리적인부분들 (시진핑, 메르켈, 마크롱, 산체스 등등)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법이 이들 좌파가 제한된 시간 동안록다운 정책과 민주적 권리 억압을 받아들이는 (또는 주창하는) 이론적 근거다. 부르주아지 부분들 중 영리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이 경제적·정치적 반혁명을 밀어가기 위해 코로나19 팬데믹을 영악하게 이용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으론 자칭 사회주의자와의 동맹의 기초가 되긴 어렵다. 적어도 영리한 사회주의자들에겐 안 된다!

 

 

록다운 조건에 대항하는 자연발생적인 대중행동: 좌파의 리트머스 시험지

 

현 정세에서 모든 사회주의자들에게 결정적인 리트머스 시험지는 현 식량폭동과 반()경찰 항의행동에 대해 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 인 것 같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와 청년과 빈민들이 억압적인 록다운 조건에 대해 항의하는 자연발생적인 대중행동들이 나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식량폭동이 있었다. 중국의 후베이에서 경찰과의 충돌이 있었고, 북오세티아에서 러시아 정부가 내린 록다운에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행동이 있었다. 파리와 브뤼셀에서 경찰에 대한 청소년들의 폭동이 있었다. 더 많은 대중시위가 분명히 올 것이다. 이 모든 항의행동들은 록다운 조건을 깨는 반기를 든 것이며 이 리바이어던 체제에 대한 인민대중의 증오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 집단행동들은 자본주의 위기와 록다운 정책이라는 준 계엄령 조건이 빚은 기아와 억압 상태로 인한 원시적이고 자연발생적인 대중행동이다.

객관적으로 이 대중행동들은 글로벌 록다운 체제에 반대하는 대중시위다. RCIT와 모든 진정한 혁명가들은 이러한 자연발생적 대중행동들을 열렬히 지지한다. 당연히 이 대중행동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더 많은 조직화와 더 많은 정치적 방향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이 항의행동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자칭 좌파 조직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은 이 대중행동들을 지지할 것인가? 만약 지지한다면, 이들 대중시위가 이러한 억압적인 조건에 근본적인 반기를 드는 것이므로 그러한 대중시위 지지가 록다운 정책을 지지 또는 용인하는 자신들의 정책과 완전히 모순된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들이 록다운 정책에 대한 일관된 지지자 또는 최소한 무비판자 로 남는다면, 그들은 그러한 대중시위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관된 것이긴 한데, 일관된 반혁명적 입장이다!

각종 자칭 맑스주의자들이 이러한 항의행동을 후진적이라고 비난할 공산이 크다. 그들은 대중들의 우려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음으로써 팬데믹을 억제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록다운 좌파는 대중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등등을 위해 가능한 모든 요구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록다운 정책에 대한 지지에 일관성이 있다면 그들은 그러한 폭동과 항의행동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대중을 후진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지난 연간의 경험은 대부분의 개량주의·중도주의 조직들이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대중시위를 지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예로 2011년 영국에서 일어난 8월 봉기 (“토트넘 폭동”)를 들 수 있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서, 경찰이 여섯 아이의 아버지인 마크 더간에게 총을 쏜 뒤 노동자계급의 하층과 민족·인종 피억압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런던 경찰청에 따르면 86일부터 10일까지 3만여 명의 노동계급 청년과 흑인과 이주자들이 거리에서 경찰과 싸우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 사태로 보수당/자유민주당 정부는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16천 명의 경찰을 거리에 동원하고 심지어는 자국 주민에 대한 군대 사용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내몰렸다. 모든 한계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8월 봉기는 분명 1984/85년의 광부 파업 이후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계급투쟁 중 하나였다. RCIT는 이 봉기를 환영하고 지지했지만, 대부분의 개량주의자·중도주의자들 영국공산당/모닝스타, CWI, IMT, 5인터 동맹 등등과 같은 은 이를 지지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봉기 청년들을 비난했다. 슬라보예 지젝 같은 사이비 맑스주의 학자들은 청년들을 심지어 폭도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파리 교외의 방리유 청년 봉기에 대한 프랑스 개량주의·중도주의자들의 접근방식도 나을 것이 없었다.

이 모든 자칭 좌파들은 개량주의 관료와 자유주의 학계의 중간계급 환경에 너무도 깊이 통합되어 가난한 피억압 대중의 투쟁을 이해하고 지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대중은 먼저 진보적”, “사회주의적세계관을 습득해야 하고, 그 다음에 의미 있는 투쟁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부르주아 주지주의적 관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대중이 투쟁 속에서 배우며, 종종 원시적이거나 뒤떨어진 사상을 가지고 투쟁에 합류하여 투쟁 과정에서 배운다는 것을 망각한다 (또는 망각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러한 투쟁 중에, 그리고 그러한 투쟁을 지지함으로써 사회주의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혁명적 조직의 임무라는 것을 망각한다!

레닌은 후진적민족들의 해방투쟁에 대한 접근 태도를 논의하는 대목에서 혁명가들은 그러한 투쟁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식민지와 유럽의 소 민족들에 의한 봉기 없이도, 모든 편견을 갖고 있는 소부르주아지 일부에 의한 혁명적 분출 없이도, 지주와 교회와 군주제에 의한 억압 및 민족적 억압에 반대하는 정치적으로 각성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운동 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은 사회혁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 쪽의 군대가 어느 한 장소에 정렬하여 "우리는 사회주의에 찬성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 쪽의 군대가 다른 한 장소에 정렬하여 "우리는 제국주의에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사회혁명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현학적인 견해를 가진 자들만이 아일랜드 반란을 폭동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자는 누구든 살아서는 결코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이 없이 혁명에 립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그것은 주민 가운데 모든 불만 계급들과 집단들과 분자들이 참가한 일련의 전투들로 이루어졌다. 이들 가운데에는 가장 조야한 편견에 물들어 있는, 가장 모호하고 가장 환상적인 투쟁 목적을 가진 대중들이 있었다. 일본의 자금을 받은 소집단들이 있었고, 투기꾼과 한탕주의자 등등이 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대중운동은 차리즘의 기반을 타격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길을 닦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이 그 대중운동을 이끈 것이다.

유럽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억압받고 불만을 가진 모든 분자들의 대중투쟁이 터져 나오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 불가피하게 소부르주아지와 후진적 노동자 부분들이 그것에 참가할 것이며 그러한 참가가 없이는 대중투쟁은 불가능하며, 그것 없이는 어떠한 혁명도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불가피하게 그들은 자신들의 편견과 반동적 환상, 자신들의 약점과 오류를 운동 속으로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들은 자본을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계급적으로 각성한 혁명 전위인 선진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잡다한 색조와 갖가지 불협화음이 뒤섞여서 외견상 파편화 되어있는 대중투쟁의 이러한 객관적 진실을 표현하면서, 이 대중투쟁을 하나로 묶어세워서 지도하고, 권력을 잡고, 은행을 접수하고, (서로 다른 이유에서 일지라도!) 모두가 증오하는 트러스트를 몰수하고, 그 밖의 독재적 조처들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조처들은 하나의 총체로서 부르주아지의 타도와 사회주의의 승리를 결코 대중투쟁에서 소부르주아적 잔재를 즉각 털어내지는 못하겠지만 구성할 것이다.”

 

소부르주아적 좌파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민중을 억압하는 한 노동자·민중이 사회주의 의식을 습득하는 것은 제한된 정도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위에 바탕을 두고 대중에 뿌리내린 혁명당의 지도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투쟁에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레닌은 왜 개량주의·중도주의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지 설명했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 그들의 현 시기 최고 대표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인민이 자본주의 하에서 높은 수준의 계급의식과 확고한 결기와 자각, 폭넓은 정치적 시야 노동인민이 오랜 투쟁 경험 없이도 그저 투표하는 걸로, 또는 모든 사태 시에 미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줄 자질들 를 습득할 수 있다고, 따라서 노동인민이 특정 계급, 또는 특정 당을 따를 것이라고 상상하는 착각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현학자들과 카우츠키, 롱게, 맥도날드 형의 감상적인 사회주의자들이 발명해낸 감상 소설이다. 자본주의가 한편으로는 대중을 억눌리고 짓밟히고 겁에 질린 생존 상태로, 분열 (농촌!)과 무지의 상태로 몰아넣고,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농민 대중을 속여 그들의 마음을 무력화시키는 거대한 허위와 기만의 기구를 부르주아지의 손에 들려주는 등,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역사적인 변화가 좌파의 상당 부문들 사이에서의 광범위한 사기 저하로 결과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많은 좌파가 반혁명 공세와 팬데믹 위험을 핑계로 적극적인 정치 활동에서 철수하여 소셜미디어 상의 논평에 스스로를 제한할 것이다. 이들은 보건상의 위험을 들어 스스로를 변명할 것이며, 심지어는 그러한 사기 저하로 인한 후퇴를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자 공중보건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칭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위에서 인용한 제5인터 동맹 그룹의 회의 취소에 대한 설명을 상기하라). 다음 인용문은 이러한 좌파들 사이에서 공개 표명을 기꺼이 삼가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음을 비춰준다.

 

그 사이에 좌파적 반대운동의 주 전술이 불가능해져버렸다. 공개 표명 말이다. 그저 정부가 위기 때 보편적 기본소득이나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고려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가 왔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 우리가 수십 년의 긴축에서 한 가지를 배웠어야 한다면, 신자유주의자들이 심각한 위기를 절대로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인스주의·신맑스주의 정책이 어려운 시기에 고려될 수 있겠지만, 그 효과를 굳혀줄 실질적인 정치적 배경막이 없다면 역사 기록에서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좌파가 이 계기를 잡지 못한 채 상황이 정상 상태로 되돌아가면 그러한 계기는 평소와 다름없는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롭게 떠다니는 SNS 활동을 뛰어넘는 반대운동을 편안히 집에서 어떻게 조직하는가? 좌파는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재건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무기고 중에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었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코로나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도록 올바른 해석을 내리는 것이다.”

 

분명하게도, 계급투쟁은 취미 혁명가들로 가장한 전문가 겁쟁이들에게는 적절한 자리가 아니다!

요컨대 이 모든 정치적·이론적 실패는 좌파의 상당 부분이 진보적 요구를 위해 미적지근한, 개량주의적인 방식으로 싸우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을 넘어, 팬데믹과 싸운다는 명분을 방패삼아 아예 반혁명을 지지하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결과했다. 노동자운동·좌파의 이들 부분의 실패는 제2 인터내셔널 다수파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길 거부했던 1914년의 그 실패 못지않게 심각한 실패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6. 맺음말

 

이 책은 역사적인 위기의 한 가운데서 나왔다. 그만큼 이 책은 비상한 상황 하에서 썼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히면서 마무리를 짓겠다. 이 책이 6개월이나 12개월 지나서 나왔다면, 확실히 더 많은 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몇몇 경향에 대해 더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며, 이 또는 저 사태발전에 대한 더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론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목적은 이 격동의 사건들 속에서 전 세계의 투사들을 도와 혁명적 노선을 발전시키고, 그리하여 계급투쟁에 개입할 준비를 더 잘 갖추는 데 있다.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림이 더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소부르주아 학술주의적 접근방식일 것이다.

우리가 사태의 정확한 진로를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지만, 현 정세의 객관적,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이 또는 저 정부 지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아주 분명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글로벌 반혁명 공세 선제 반혁명 .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의 투쟁 조건을 급격히 악화시킬 거대한 경제적·반민주적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록다운과 집회·시위의 권리 억압이 그리도 위험한 이유다.

코로나19는 이러한 권리를 억누르는 완벽한 구실이다. 지배계급이 공포와 패닉을 퍼뜨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지배계급은 이 구실을 지금뿐만 아니라 몇 달, 몇 년 동안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시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지배계급은 반드시 그것의 귀환에 대해 경고할 것이다. 또는 다른 바이러스에 의한 또 다른 팬데믹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고를 반복한다. 부르주아지는 노동자계급과 인민대중을 혼란시키고 마비시키기 위해 수년간 이러한 팬데믹의 위험을 이용할 것이다.

팬데믹 때문에록다운과 민주적 제 권리 억압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도 위험한 이유다. 부르주아지는 수년간 공황과 권위주의 통치를 위해 우리의 손을 묶고 싶어 한다. RCIT가 록다운과 집회·시위의 권리 억압을 지지하는 모든 좌파들을 날카롭게 비난하는 이유다. 이들 세력은 객관적으로 반혁명에 봉사한다. 이들은 현대판 사회배외주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배외주의의 현대적 버전인 것이다.

우리가 대 사건들을 향해 행군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은 모든 것이 코로나19 위기에 의해 뒤로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은 사라지지 않았고 사라질 수도 없다. 지배계급이 반혁명 공세를 펴는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 체제의 파멸적인 위기 앞에서 필사적인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가 지금 더 세게 칠수록, 노동자·민중으로부터의 대응은 더 강하고 더 클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시기는 계급 간, 국가 간 모순의 질적 격화를 불러올 것이다. 새 시기는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던 경향들을 대대적으로 가중시킬 것이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들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 및 생산력의 쇠퇴·부후화,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특히 미·중 간 의 패권쟁투, 계급투쟁과 노동자·피억압자의 혁명적 봉기 등이다. 우리는 여러 해에 걸쳐 이러한 사태발전을 인식하고 분석하여 맑스주의적 관점을 공급해왔다. 3중 위기 1929년과 같은 새로운 공황, 국가 보나파르트주의 리바이어던의 대두, 코로나19 팬데믹 는 또 하나의 중대한 사태발전이다.

트로츠키는 4인터내셔널의 힘은 그 강령이 대 사건들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발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실이다. 전 세계의 혁명가들은 맑스주의의 기치를 드는 조직들을 그들의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RCIT는 새로운 사태발전을 인식하고 혁명적 대답을 제공할 수 있음을 다년간에 걸쳐 증명해 왔다. 우리는 2008년에 열린 현 역사 시기의 혁명적 성격을 인식했다. 당시 많은 조직들이 비관주의에 압도되어 후퇴를 거듭했다. 우리는 2010년 이래로 아랍 혁명의 정당성을 방어했다. 많은 조직들이 아랍 혁명을 지지하길 그만 두거나, 아예 아사드 대통령과 시시 장군 같은 반혁명 도살자들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중국·러시아의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부상을 인식했다. 대부분이 그러한 입장을 부인하거나 심지어 비웃었을 때 말이다. 우리는 미국, EU, 일본, 중국, 러시아 간의 그 어떤 강대국 갈등에도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을 적용할 필요를 일찍부터 강조했다. 그리고 현 코로나19 위기에서 우리는 거의 홀로 글로벌 록다운 정책에 맞서 일관된 혁명적 입장을 취해 왔다. 우리는 RCIT의 방법, RCIT의 강령과 정세전망이 대 사건들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새 시기는 노동자·민중 운동 및 좌파내 위기와 모순의 질적 악화를 또한 불가피하게 불러일으킬 것이다. 새 시기는 제 조직의 정치적·조직적 위기를 촉발시킬 것이다. 새 시기는 기회주의자들을 훨씬 더 우측으로, 부르주아지에게 견인되는 중간계급 사회제국주의적 자유주의 진영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러나 새 시기는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다시 생각하고 좌측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또한 열어젖힐 것이며, 이것은 혁명적 세력들의 재편성으로 결과할 수 있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RCIT는 원시적이지만 전투적인 대중을 지향하며, 그러한 혁명적 관점을 공유하는 맑스주의자들과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한다.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초 레닌은 맑스주의자들의 임무를 몇 마디 말로 적절하게 요약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내란을 설교하고 준비하라. 목사가 되는 대신 비합법 선전가 대열에 합류하라!!” 마찬가지로 오늘 혁명가들은 어려운 조건하에서 더 긴 기간의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세계가 오랫동안 보게 될 가장 큰 정치적 폭발을 낳을 것이다!

그와 같은 시기에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가장 긴급한 임무는 새로운 사회주의혁명 세계당 건설을 위해 힘을 결합하고 노력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RCIT는 모든 혁명가들에게 이 임무에 우리와 함께 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의 최근 공개장 맺음말을 외쳐본다. “지금 행동하라. 지금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