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
폭발하는 유럽노동자들의 투쟁
— 배우고 완성하자
노동자공동투쟁
극우 『조선일보』(09. 4. 21.)가 쓰고 있다. “그리스에선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폭동과 시위가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그리스 경제는 ...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 하지만 그리스 경제가 계속 선방할지는 미지수다. 그리스의 경우 관광업이 GDP의 18%(2007년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산업인데, 글로벌 경제위기와 정치 불안으로 올여름 성수기 관광업 매출이 격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극우 나팔수다운 과장과 왜곡, 그리고 노동자·민중에 대한 계산된 공격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연말 이후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대규모로 격렬하게 벌어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동과 시위가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며, 그리스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것도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기침체에 유로화 강세가 겹치면서 그리스 관광산업이 ‘20년 만에 최악의 침체’에 직면”, “지난 2월 실업률은 9.4%로 ... 급등했으며, 실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지난 연말의 “대규모 폭동”도 “높은 청년실업률 등으로 누적됐던 사회적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던”(『한국경제』 09. 4. 18.) 것이라는 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제위기로 인한 노동자·민중의 생존 위기가 그들의 폭동과 시위라는 ‘정치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이러한 과장과 왜곡 그리고 공격은 우연이 아니라 현 정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공포를 반영하고 있다. 저들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폭동과 시위”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노동자·민중의 대규모 격렬한 투쟁은 그리스에서만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대공황의 심화라는 조건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확산되면 되었지 쉽사리 진정될 성격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투쟁은 세계 도처에서, 특히 유럽 각국에서 수십만·수백만 명의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양상도 갈수록 격렬해져, 진압경찰에게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넘어 런던에서는 ‘도둑놈들’이라는 피켓을 든 시위대들이 은행에 난입하여 사무집기를 파괴하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경기침체 국면 속에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어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발해 경영자를 감금하는 ‘보스내핑’(bossnapping)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노동자들이 이번에는 공장과 인근 관청의 사무실을 습격해 기물을 파괴하는 폭력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모두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아” “생존을 위협받는 노동자들의 자구책”(『연합뉴스』 09. 4. 23.)인 것이다.
내외 독점자본의 대표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억압, 노골적인 반노동자·반민중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마냥 머뭇거리고만 있는 이 땅의 대기업·공공 노동자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러나 계속 머뭇거린다면, 노동자들의 운명은 87년 대투쟁 이전과 같은, 혹은 그 이상으로 가혹한 나락일 뿐이다.
물론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과 요구에도 아직 한계는 뚜렷하다. 노동자 대중의 빈곤과 고통, 그리고 주기적 과잉생산 공황이 필연적인 임금노예제 그 자체, 자본주의 그 자체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주로 임금과 고용의 보장을 요구하는 경제투쟁에 머물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한계는, 독점자본의 장기간의 이데올로기 지배 하에서, 그리고 특히 소련 붕괴 후 지속되고 있는 정치적 후퇴, 사상적 혼란의 표현이자, 더 근본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인 정치 참모부 즉 혁명적 전위정당이 부재한 탓이다. 즉, 투쟁이 ‘시민단체’라고 하는 소시민적 민주주의 단체들이나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 대중조직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주로 지도되고 있는 결함 탓이다.
저들 노동자들의 전투적 투쟁을 배우고 결함을 보완하여 그 한계를 돌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