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노동자들의 옥쇄파업투쟁이 한 달 가량 진행되고 있다
선거를 계기로 금속노조의 사상과 투쟁을 혁신하자!
노동자공동투쟁
쌍용차 투쟁의 패배 이후에 금속노조의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과연 금속노조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에 찌든 지도부를 교체하고 진정한 계급적 단결과 전투력을 강화하는 강철 같은 새로운 지도력을 세워낼 것인가? 그러나 대단히 안타깝게도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문일 정도로 금속노조의 현실은 대단히 암울하다. 이번 선거가 기업지부의 선거불참 시 지역지부 총회 성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지역지부 선거가 연기되고 본조만의 선거로 기형적으로 치러져서 그런 것인가?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부르주아 선거가 후보가 누가 되든, 정치세력이 누가 되든 단순히 독점자본을 대리하는 인물과 정당의 교체로 끝나는 것처럼 이번 금속선거도 부르주아 선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선거에 대해 금속 조합원들이 무관심한 것도 누가 당선되든지 상관없이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회의감과 무기력, 패배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금속노조 선거는 부르주아 선거가 보여주는 기만적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두 후보 진영이 다 같이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현장실천연대와 현장노동자회 어느 진영이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금속노조의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금속노조 선거는 과정과 내용에 있어서 그 동안 금속노조 선거가 보여준 퇴행적인 흐름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이번 금속선거에서 현장실천연대는 금속노조 내부의 주요 정파에 대해 단일 지도부 건설을 제안했다. 이렇게 하여 5개 정파인 현장실천연대, 전국회의, 현장노동자회, 공감(새흐름), 금속활동가모임이 모여서 수차례 통합 지도부 구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전국회의는 5기 집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보를 내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새흐름도 마찬가지로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통합 지도부 구성을 위한 이른바 5자 연석회의는 후보 선출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서 단일 지도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이로써 현장실천연대와 현장노동자회 두 진영이 이번 금속노조 선거에 후보를 내게 된 것이다. 5자 연석회의에서의 통합 지도부 구성의 무산은 결국 누구를 후보로 낼 것인가의 문제에서 자파 중심으로 본조 위원장을 내세우려는 정파적 욕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저 마다의 정파적 욕심으로 통합 지도부 구성이 무산됐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좌파, 우파를 망라하는 5개 정파는 총노동의 재편에서 핵심이 되는 금속노조 선거를 밀실에서 음모적으로 결정하려 했다. 5개 정파에 대해 아무도 금속노조 내부의 계급 대표성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5개 정파에 대해 통합 지도부 구성을 위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5개 정파가 대중적인 검증과 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5개 정파 연석회의의 실체와 음모적으로 5개 정파가 모여서 금속노조 선거에 대해서 논의했다는 사실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모르고 있다.
사실상 5개 정파라고 하지만 저들의 정치사상적 기반 자체는 조합주의 운동이나 현장조직 운동 수준의 연합체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준의 5개 정파 연석회의에서 통합 지도부를 밀실에서 구성한다고 해서 진정한 계급적 단결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저들 정파들은 지난 4기 금속노조 선거에서 중앙파, 국민파, 노동자의힘 3개 정파가 산별노조 완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통합 선거를 했던 것을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과연 4기 통합 집행부는 통합적 지도력을 발휘하여 산별노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는가? 저들은 무엇을 위한, 무엇을 중심으로 하는 단결을 추구했는가가? 저들의 산별 완성을 위한 통합 지도부 구성은 당시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던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파탄내지 못하는 야합에 불과했다. 산술적으로 정파가 연합해서 단일 후보를 낸다고 해서 금속노조의 계급적 단결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의 계급적 단결은 밀실에서의 정파연합으로 탄생한 단일 집행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총노동의 전위부대가 되어야 한다!
금속노조의 총체적인 문제는 쌍용차 투쟁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금속노조 상층은 이번 쌍용차 투쟁에서 보았듯 자본과 정권에 대항하는 전투대오를 이끄는 15만 금속노조의 지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본과 정권과 노동자 사이에서 거간꾼 노릇을 하는 철저한 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에 찌든 집행부였다. 금속노조 상층 지도부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처절하고 고립된 투쟁에 대해서 총파업을 조직하기 보다는 도리어 회피하고, 2천억에 달하는 임금, 복지를 반납하는 ‘쌍용차 모델’에서 보았듯 노동자의 일방적인 양보와 굴욕을 종용하고 나섰다.
이들은 총파업을 선언해봤자 15만이 참여하는 총파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쟁 보다는 교섭에 집중하여 자본과의 양보를 끌어내는 것이 피해를 덜 본다는 실용주의적 이유에서 총파업을 회피하고 결과적으로 총파업을 파괴하였다. 그런데도 이들은 총파업의 무산에 대해서 자기반성을 하기는커녕 쌍용차의 패배가 미리 자본과 정권이 받아들일 만큼 양보를 하지 않아서, 때늦은 양보를 했기 때문이라면서 합리적 노동운동을 선동하고 나서고 있다.
이번 쌍용차 투쟁의 패배는 금속노조 상층에 포진해 있는 관료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철저하게 관료주의와 협조주의에 빠진 이들 상층 관료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자본과 정권에 맞서는 투쟁기구로 금속노조를 재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층에 포진해 있는 관료들의 교체는 재편의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뿐이지 이들 상층 관료들만 제거한다면 금속노조가 투쟁기구로 재편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금속노조와 운동진영 전체의 후진적 상태가 금속노조 상층 관료들이 관료적 지위를 유지하고, 설사 집행부가 교체된다고 해도 새로운 관료들을 등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에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 안건이 압도적으로 부결된 것을 봤듯이 금속노조 내부에는 본조뿐만 아니라 지부, 지회, 대의원 단위까지 관료주의와 협조주의적 흐름들이 지배하고 있다. 금속노조 내에서도 총파업에 앞장서야 하는 현대차, GM대우가 총파업을 사실상 파괴했으며 기아차는 임단협 일정에 맞춰 소극적으로 임한 것을 보라! 물론 쌍용차 투쟁에 대한 금속노조의 총파업 무산은 단순히 금속노조 내부의 지도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장이 자본에 장악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층의 관료적 지도부는 이러한 현장의 현실적 어려움들을 더욱 더 크게 했던 것이다.
금속노조의 현재 문제는 2001년 2월 8일 금속노조가 출범되기 이전부터, 06년 15만 산별노조가 출범해서 지금까지 누적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금속노조 건설 이전부터 투쟁 없는 산별 건설, 조직형식상의 산별 건설이라는 관료적 산별건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통합 산별 대의원대회 이후에도 가짜 확약서 문제와 대자본을 중앙교섭에 참여시키지 못하는 형식적인 중앙교섭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정갑득 집행부는 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도 관료적인 직권조인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이러한 금속노조의 총체적인 문제가 축적되어서 올해 쌍용차 투쟁을 철저한 고립으로 몰아갔고 결국 총파업 지리멸렬한 무산으로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금속노조 선거는 금속노조 지도부의 관료적 작태와 금속노조의 문제에 대한 본질적 진단은 사라지고 정파간 야합과 패권적 지도력 장악 시도가 판치고 있을 뿐이다. 지금 금속노조의 근본적 문제는 단순히 상층에서의 야합을 통한 통합 지도부 건설이나 상층 지도부의 교체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금속노조의 통합은 정파간 야합을 통한 단일 지도부 구성이 아니라 지역과 업종, 기업의 벽을 넘어 단일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과 정권에 맞서는 단일한 투쟁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 내부에는 총고용 보장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정작 현장 내에서는 비정규직과의 단결을 회피하고, 심지어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를 합의해주는 반노동자적 흐름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반노동자적 흐름을 혁파하고 현장 내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연대하는 것으로부터 금속노조의 진정한 계급적 단결과 통합적 지도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올해 금속노조는 중앙교섭에서 “총고용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합의를 끌어냈지만 이 합의는 현장의 첨예한 요구인 실질적인 고용안정을 담보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대자본을 중앙교섭에 끌어내지 못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는데 왜 대자본은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가? 대자본은 중앙교섭에 참여하면 이중, 삼중교섭을 하여 사회적 마찰과 교섭비용이 증가하고 중앙교섭이 정치투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여기에 발맞춰 대자본을 중앙교섭에 끌어들이기 위해 대자본의 눈치를 보며 투쟁수위를 낮추고 정치투쟁을 회피하고 있다. 대자본을 중앙교섭에 끌어들이기 위한 금속노조의 노력이 오히려 대자본의 중앙교섭 참여를 거부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교섭기구 완성을 위한 수단으로 중앙교섭을 배치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한미FTA 반대와 비정규직법 개악 반대를 내걸고 정치투쟁을 전개하는 중앙교섭이 되도록 투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집시법 개악, 안기부법 개악 반대 등 민주주의 요구와 용산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강제철거 반대 같은 민중 생존권의 요구도 적극적으로 중앙교섭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내에서 조합주의적 요구와 전망에 갇혀서 노조를 단지 협상기구로만 사고하는 관료들의 사고와 실천으로는 죽었다 깨도 이것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자본과의 교섭기구, 협조기구로 전락한 금속노조를 투쟁기구로 발본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현장으로부터의 투쟁이 조직되어야 한다. 이 투쟁과정에서 대중적으로 검증받고 대중들한테 투쟁의 전망을 세워줄 수 있는 굳건한 혁명적 지도력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지도력의 내용은 집행부의 얼굴을 교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사상과 전망으로 무장한 전투적 지도력을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만들어가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이 전투적 지도력으로 금속노조를 교섭기구, 협상기구가 아니라 총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전투대오, 계급투쟁의 기구로 만들어내야 한다. 금속노조는 총자본에 맞서 싸우는 총노동의 전위부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