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지부 민주파당선의 의미와 과제

노동자공동투쟁

“기아차 노조 ‘선거혁명’은 없었다” (11월 4일,『조선일보』)

지난 11월 3일 실시된 기아차노조 결선 투표 결과를 두고 조선일보가 평가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월 27일에는 “[기자수첩] ‘붉은 머리띠’ 벗은 기아차 노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는 지부장 선거 합동 유세에서 “노조위원장에 출마한 후보 5명 가운데 ‘붉은 머리띠’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서 “노동자의 대동단결을 의미하던 머리띠가 사라진 것은 노동현장의 표심(票心) 변화를 반영한다고 노동계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붉은 머리띠는 표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후보들이 알게 됐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현장 조합원들이 ‘투쟁’이 아닌 ‘실리’를 원하고 있으며, 기아차지부장 후보들도 이러한 현장의 정서를 반영하여 머리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일보 기사에는 현대차지부장 선거에서 ‘실리’를 표방한 이경훈 후보가 당선된 데 이어 금속노조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기아차지부에서도 실리파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열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대로 이번 기아차지부 선거에서 자본이 바라는 ‘선거혁명’은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바라는 ‘선거혁명’은 단지 기아차지부에서 실리파후보의 당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실리파후보’의 당선으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자체의 무력화를 꾀하는 큰 판에서의 ‘선거혁명’이었다.

그러나 기아차지부에서 민주파인 김성락 후보가 당선되면서 일단 민주노총 탈퇴 및 실리파 후보의 당선 등 민주노총의 조직 기반을 흔들어대던 흐름에는 제동이 걸렸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번 기아차지부의 선거 결과를 두고 7년 만에 좌파 집행부가 탄생했다면서 자축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기아차지부에서 민주파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아직 자축하기에는 이르다. 그것은 이번 선거의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김성락 후보는 51.2%의 지지를 얻으면서 47.5%의 지지를 받았던 전민투 소속의 박홍귀 후보를 겨우 1,069표 차이로 이긴 것이다. 박홍귀 후보가 1차 투표에서 22.6%의 지지를 받았던 것을 상기한다면, 박홍귀 후보가 2차 투표에서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자본의 바람대로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파의 당선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친자본파의 약진에 주목해야 한다.

노골화된 금속노조 탈퇴 공약들

현대차지부장 당선자인 이경훈 후보는 ‘실리’를 강조했지만 노골적으로 금속노조, 민주노총 탈퇴를 내걸지는 않았다. 이는 대공장 노동자들이 보수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민주노총 탈퇴를 선택할 만큼 자본에 장악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기아차지부장 선거에서는 노골적으로 ‘금속노조 탈퇴’가 공약으로 제시되었다. 물론 현대차지부장 선거 때에도 1차전에서는 민주노총 탈퇴 공약을 내건 후보가 있었다. 그러나 기아차지부장 선거처럼 결선진출이 유력한 주요 후보들은 민주노총 탈퇴를 노골적으로 내걸지 않았다.

기아차지부장 선거에 나선 가태희 후보는 “국민에게 손가락질 받는 기아노조에서 사랑받는 기아노조로”를 선거모토로 삼으면서, 제1공약으로 금속노조 탈퇴를 걸었다. 가태희 후보는 “KT노조, 지하철노조, 쌍용차노조 등이 민주노총 탈퇴한 것처럼 검증된 실패집단에 기아노조의 미래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또 결선에 진출했던 박홍귀 후보도 금속노조에서 최대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지부 전환과 관련해서 조합원 총회를 통해 완전 폐기시키겠다고 하면서 이를 금속노조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의무금 납부 거부와 금속노조 탈퇴를 총회에 붙이겠다고 했다. 사실상 금속노조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파로 분류되는 후보들도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전면에 내걸지는 않았다. 그만큼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현장의 정서가 싸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까운 거리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처절한 고립된 투쟁을 지켜봤던 기아차노동자들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 더욱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산별노조로 전환된 이후 연대투쟁이나 단사 투쟁에서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77일 파업투쟁을 전개했어도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게 외면당했고 기아차의 경우에도 올해 임금협상조차 마무리하지 못했다. 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의 금속노조에 대한 불신은 기아차지부 선거에 앞서 치러진 금속노조 임원 선거에서의 낮은 투표율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이에 기아차지부는 지난 9월 28일 “조합원 동지들의 금속노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투표권 포기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부족함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채워나가도록 힘을 실어주시길 간절히 호소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홍보물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금속노조 6기 지도부는) 그동안의 과정들에 있어서 철저히 반성하고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하루빨리 마련하여 조합원 동지들의 마음을 금속노조 깃발아래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현장정서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아차지부장 선거에서 어용세력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금속노조 탈퇴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아차지부장 선거는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선거가 아니라,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엄중한 평가의 자리였다. 노골적으로 금속노조 탈퇴를 내세운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다는 것은 이후에 언제라도 기아차지부 현장에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탈퇴 흐름이 조합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다시금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투쟁하는 조직으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

자본의 고통전가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

한편, 자본의 바람을 뒤집고 민주파 김성락 후보가 당선된 데에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공황에 미국 빅3 자동차 자본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휘청거리자 현대, 기아차 자본은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미국 시장들에 진출해 있는 현대, 기아차자본의 점유율이 높아진 것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권은 각종 세제 감면 등을 통해서 거대 독점자본들의 이윤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 결과 기아차는 2분기 연속 사상 최대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기아차는 2009년 9월까지 79만 대를 판매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인 74만대보다 6.8% 상승했다. 또 매출액은 11.9% 상승한 12조 6882억 원을 기록하고, 당기순이익은 8464억 원을 기록하면서 20배 이상 증가했다.

이렇게 고공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차지부는 올해 임금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올해 핵심쟁점이었던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시행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기아차자본은 생산량 유지를 고집하면서 사실상 주간연속2교대제를 통한 실질노동시간 감소와 월급제 시행을 통한 생계비 보존을 거부했다. 결국 휴가 전 타결이 되지 못하고 협상이 장기화되자 사측 교섭위원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기아차자본은 쌍용차노동자들의 강요된 패배와 현대차선거에서 실리적 흐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교섭해태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이에 이번에 당선된 김성락 후보는 연내 임금협상 마무리, 내년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과 월급제 쟁취라는 공약을 걸고 자본과의 정면승부를 약속했다.

사상최대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공황이라는 정세 속에서 현장노동자들에게 고통전가를 강요하는 자본의 행태에 노동자들은 실리보다는 민주파에게 표를 던졌다. 이는 더 이상 자본의 일방적인 고통전가를 감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파 집행부는 이러한 현장노동자들의 바람을 안고 자본과의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또한 다른 현장조직에 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가장 열심히 연대한 민주파답게 당선 이후에도 비정규직 투쟁을 자신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받아 안고 투쟁해야 한다. 이전 전노회 집행부처럼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당선되기 이전과 당선 이후 확연히 달라져서는 안 된다. 만약 김성락집행부가 투쟁을 통한 자본의 고통전가 분쇄와 생존권 쟁취,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현장노동자들의 요구와 바람을 외면한다면 다음에는 민주파에 대한 실망으로 어용이 등장하는 현대차지부 선거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아차 민주노조를 강화하는 것은 동시에 노동자들의 신뢰를 상실하고 협조주의에 물들고 있는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계급적으로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기아차노동자들이 투쟁의 선봉에 서서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와 민주노조 파괴 책동을 분쇄하고 자본과 정권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전선을 복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