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들과 우리가 가져야 할 관점

노동자공동투쟁

빈곤기준은 그 시대의 생산성을 반영해야 한다

빈곤은 사전적으로,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논쟁이 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란 어떤 것이며 ‘충족되지 않은 상태’는 어느 정도를 뜻하느냐 라는 것이다. 흔히 절대적/상대적 빈곤선을 둘러싼 각 학자 및 전문가들의 입장의 차이는 사실상 두 가지의 주제에 관해 벌어지는 논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공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바는, ‘기본적인 욕구’란 그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 즉 해당 시기, 일정한 사회 단위에서의 과학기술 및 생산성의 발전, 문화적, 사회적 수준을 반영한 평균적인 욕구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컨대 1900년의 기준을 지금 제시한다면, 미국에서는 빈곤한 사람이 없다는 어느 미국학자의 유명한, 하지만 당연한 말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리고 빈곤의 구체적인 수준은 그 평균에 ‘상당히’ 미달한 것으로서 이 ‘상당히’는 학자들마다, 전문가마다 여러 논거를 제시하지만 대체로 자의적이다.

빈곤의 일차적 기준은 평균적 정상적인 생활이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빈곤을 정의하기 위해 기준이 되어야 하는 선은, 사실 ‘빈곤‘선이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적, 정상적인 생활‘을 의미하는 선이 되어야 한다.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수준의 선이 정의되지 않고서는, 빈곤 자체가 정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정해지고 있는 최저생계비(빈곤선)는 먼저 빈곤한 사람들을 예상하여 선을 정하는 것인데, 이렇게 된다면 이 빈곤선이 가리키는 의미는 사실상 동어반복일 따름이다. 그 빈곤선이 가리키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정책자들)이 생각하는 빈곤한 사람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빈곤층의 사람들의 수준을 일컫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빈곤을 제대로 개념 짓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수준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 그러한 수준을 표현하고자 하는 지표로 표준생계비가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매년 발표를 하고 있다. 2008년 민주노총의 경우 4인 가족 기준 4,568,584원이다. 이 기준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품의 가격 총합을 의미하므로, 임금 투쟁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최저’ 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지표는 사실 실제 투쟁에서 그다지 기준점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준이나 조사 방식도 다소 엉성해 보인다. 이러한 지표를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전국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기준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 수준 이하 중 ‘정책적’으로 어떤 선이 빈곤선이냐 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그렇지만 이 질문에는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해져왔던 빈곤선은 일반적인 빈곤개념과 그다지 무관한, 정책자들의 자의적이고, 예산범위에 따라 결정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한 사람들 중 빈곤의 ‘정책적’ 대상자들을 추려내기 위한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빈곤선이 ‘공식’적으로 결정됨에 따라서, 사람들은 이 선 주변에 있거나 밑에 있는 사람만이 빈곤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물론 공식적인 빈곤율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절대적 빈곤선(최저생계비), 상대적 빈곤선(절대적 빈곤선의 상위 120%)이라는 기준도 본질이 은폐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주의깊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과 정부는 끊임없이 ‘극빈’한 사람들만을 빈곤층으로서 다루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짠한’ 사례들, 노숙인에 대한 ‘유별난’ 강조는, 빈곤이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에 국한되는 현상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균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빈곤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책적 빈곤선이란 빈곤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정책적으로 결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빈곤의 핵심 원인은 임금이다!

자본주의는 가장 발달한 상품경제사회이므로, 우리가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는 상품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화폐가 필요하다. 대다수 노동자 대중은 이 화폐를 얻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임금으로 살아간다. 만약 임금이 여러 사정상 감소하거나,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실업상태가 되어버린다면 노동자의 삶은 빈곤해질 수밖에 없고, IMF 이후의 여러 상황들은 이것을 극적으로 증명한다. 임금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생계비인데, 국가별 물가수준/사회적․문화적 요인에 따라 크게 규정되며, 일정한 한도 내에서 구체적인 정도는 경기변동과 이에 따르는 계급 역관계에 의해 규정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평균선 이하로 임금이 지급된다면, 온전히 생활하기가 힘든 상태, 즉 빈곤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빈곤이란 노동력 재생산이 궁핍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그 1차적 원인은 노동력 재생산비의 부족, 즉 임금의 부족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노동력 판매 자체가 불가능해지거나 그 조건이 매우 불안정하다면, 당연히 그/그녀는 빈곤한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

빈곤의 새로운 변화?

최근 소위 ‘신빈곤’개념이나 ‘사회적 배제’ 논의가 사회복지학계나 사회학계에서 유행을 타고 있다. ‘신빈곤’은 ‘구빈곤’과 ‘다르게’ 상대적 빈곤이 심화되며, 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하며, 부채가 많고 빈곤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배제’는 빈곤한 사람은 단지 노동에서만 배제된 것이 아니라, 주거․보건의료․정보통신․교육 등 다차원적인 배제를 겪고 있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신빈곤’이나 ‘사회적 배제’는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하게 되면, 즉 돈이 없으면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운 지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자칫 빈곤의 진정한 원인을 호도할 수 있다. 원래 ‘빈곤’은 상대적 개념이며, 예전에도 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빈곤의 대물림 또한 존재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빈곤한 사람들은 예전에도 모든 면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배제의 측면이 생산력이 발달하여 평균적 욕구가 높아졌으며, 노동 현장 뿐 아니라 일상생활 측면, 즉 노동력 재생산 영역에서도 사회화가 발달함에 따라, 더욱 다차원적이 되었다. 따라서 돈이 없으면 더욱 그 박탈되는 정도가 심해지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지극히 표면적인 사항들의 나열일 뿐이다. 그 원인은 대다수 대중의 벌이가 되는 노동조건에 달려 있으나, 그저 빈곤의 현상 형태를 늘어놓고 단순 개념화 하고 각 요소의 궁핍을 빈곤의 원인으로 곧장 치환시켜 버린다면, 이것은 빈곤의 진정한 원인을 감추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빈곤의 다양한 해결방법

학자들과 정책가들은 다양한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 중 대부분은 사실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실패해 온 것이기도 하다.

먼저, 소부르주아적 경향들이다. 이들은 머릿속에 공상적인 가정들을 무수히 늘어놓으며, 과거의 진정한 빈민의 가치를 계승하고자 한다. 고립된 빈민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하며,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마을’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며, 농경제 사회에 대해 동경한다. 그리고 중요하게도 생산력의 발전 자체를 ‘도덕적으로’ 무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향들은 자본주의적 폐해가 너무 지나쳐서 많은 사람들이 진절머리를 내기 때문에 최근 더욱 유행을 타고 있다. 이들은 ‘마을’을 중심으로 스스로 사업을 벌이거나 때로는 산으로 들어간다. 또 빈민들만의 금융업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노동화폐라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사실 19세기부터 끊임없이 실패해온 것들이다. 이들은 현 자본주의 사회가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그 문제의 저변에는 소위 도덕성 혹은 가난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행동에서 과감하지는 못한 데, 대부분 정부나 민간 재단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사업비로 충당하고 있다. 좀 더 과감한 부류는 자비를 털어서 사회복지 서비스(주로 지역사회 복지라 부른다)를 제공해주면서 이것을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은 부르주아적 경향들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 주요하게는 노자관계에 대해 구조적 변화를 주지 않고도 빈곤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스스로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복지학자들이 대부분인데, 사실 빈곤에 대한 연구는 이들이 거의 도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극빈층과 관련된 모든 국가적 사업이나 운동 진영의 활동에 끊임없이 개입해 왔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그리워하고 있다. 노동유연화를 통해 사정이 악화되었지만 적어도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적어도 복지는 늘어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 정권이 인기가 없는 것이 대중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벌써 잊고 있다. 일부는 항변하기도 한다. 경제 수치들도 나아졌고, 복지지출도 늘었는데 그것을 대중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나 경제적 수치의 향상은 사실 노동자들의 생계수단 박탈의 다른 표현일 뿐이고, 일부 늘어난 복지 예산은 사실 노동 시장의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사후적 성격인 것이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그 수준은 이미 망신창이가 된 노동자 가계에 양동이의 물 한방울 만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때의 늘어난 복지란 노동자 대중의 세금 중 극히 일부로서,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에 대한 형편없는 대가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복지가 보다 ‘효과적’(적은 비용, 불만의 해소)으로 작동을 시키기 위해 사회복지학자들(과 NGO)가 동원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학자 중 이러한 경향에 포함된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 정책은 신자유주의이지만, 그래도 복지만큼은 적어도 사민주의적 경향을 가진 것이 아니냐는 식의, ‘좌파 신자유주의’에 어울릴만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권이 작심한 듯 복지 예산을 삭감을 감행하는 것에 이들은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문제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의식에는 큰 한계가 있다.

만병통치약 기본소득

부르주아적 경향으로 최근 부각되는 것은 기본소득론자들이다. 이들은 모든 국민에게 ‘적절한 수준’의 수당을 무조건 주자는 주장을, 그것도 먹혀들만한 주장인 듯하게 하고 있다. 구체적 수준까지 제시되었는데 1인당 연 300만원에서 900만원까지(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강남훈 교수)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모든(혹은 대다수) 사회복지와 관련된 급부를 단일화하겠다는 프리드만 식의 극단적 자유주의 제도개혁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입다물고 국가가 돈내놔’라고 국가에 덤탱이를 씌우려는 것인지 그 의향은 논자들마다 다른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민중의 소리에서 연재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글들은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구조적 전제인 노자관계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표방하고 있지 않다. 현 노자관계를 그대로 인정한 채 시행 여부를 타진할 경우, 이 제도는 사실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공공부조, 4대보험을 통합할 것이냐, 아니냐 등의 사회복지재정의 ‘기술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게 된다. 또한 기본소득을 추진하다 보면 구조적 변화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구조적인 변화와 기본소득을 어떻게 연계할 것이냐는 점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단지 세금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은 혹시 부자들의 지갑을 더 많이 걷는 방식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추측’하고 있다는 점 등의 공상적 여운을 남겨둘 뿐이다.

이들은 조세제도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 유지에 기본적인 수단이라는 것, 복지제도란 그러한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 궁극적으로 노자관계에서 ‘파생’되거나 문제시되는 ‘증상’에 대한 처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결코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기본적인 노자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이 생각하는 데로 아무런 대가 없이 받을 수 있는 복지의 양이 무궁무진하게 커질 것이라는 것은 한낱 공상에 불과하다.

반빈곤 투쟁은 어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한 투쟁은 사회 복지 영역에서의 확대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극빈층에 투여되는 사회복지 비용은 사실 덜 빈곤한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지가 세금으로 지출한 돈 중 극히 일부가 투여되는 것인데 국가는 이 조차도 매우 쓸모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길거리에서 객사하는 사건 들이 자주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불안해지기 때문에 일정 수순에서 조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 정도는 수급자 1명이 받는 40만원이라는 액수가 표현해주고 있다. 극빈층에 대한 투쟁은 주로 시민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된 경향인데, 이들은 사회복지 정책을 고립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증대시키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회복지가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낫겠지만, 노-자관계에 대한 고민 없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오히려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생각과 이어질 수 있다.

현재 힘들어지고 있는 것은 자명한 대로 노동조건의 악화에서 비롯된다. 사실 이 부문의 향상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과 곧바로 직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빈곤을 단순히 사회복지 영역 대상자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노동자계급의 문제로서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일시적인 삶의 질 향상이 있더라도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빈곤 문제는 끊임없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