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현대중공업과 서울메트로 노조
노동조합주의 운동의 발전 그리고 그 한계
노동자공동투쟁
지난 3월 5일 현대중공업노조, 서울메트로노조, 현대미포조선노조, KT노조,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 서울시공무원노조, 전국교육청공무원노조연맹 등 40여 개 노조가 참여하여 가칭 ‘새희망 노동연대’가 출범했다. 이들은 취지문에서 “노동운동의 청렴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섬기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노동운동을 지향한다”고 밝히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노동운동” “투쟁보다 정책‧공익노조 지향”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노조로 거듭날 것” 등을 결의했다고 한다. 현재 조합원 규모가 12만 명 정도이지만 내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조합원 규모가 23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한다.
바야흐로 ‘복수노조의 시대’를 맞이하여 노조운동의 이합집산, 사분오열을 예상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허영구 전민주노총위원장은 말한다.
“희망연대의 면면을 보면 사업장의 비정규직노동자가 죽든 말든 정규직노동자들의 이익만 옹호하다 금속노조에서 제명된 노조, 공공운수연맹 소속으로 있으면서 사측의 노동자 구조조정 시 투쟁을 방기하고 상급단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제명직전까지 몰렸던 노조들이다. 노동조합의 임무인 조합원의 권익은 물론이고 비정규직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방기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상층노동관료들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권과 자본의 노동자탄압과 착취에 노조와 노동자들을 헌납하고(할―인용자) 가능성이 높다. (허영구 칼럼니스트,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제3노총?」, ��폴리뉴스��, 2010. 3. 6.)
그는 현대중공업노조와 KT노조를 비판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임무인 조합원의 권익은 물론이고 비정규직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방기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것” “상층노동관료들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 노조를 “활용”하는 것, “정권과 자본의 노동자탄압과 착취에 노조와 노동자들을 헌납하고” 있는 것 또한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비난이 “새로운 조직”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한치도 틀림이 없이 적용된다는 데에 있다. “새로운 조직”이 한나라당에 줄을 서고 있다1)면 민주노총이 민주당의 2중대인 민주노동당에 줄을 서고 있다는 것만 틀릴 뿐이다.
노동조합이란 노동력을 보다 좋은 조건으로 판매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조직적으로 단결하여 자본가와 투쟁하고 협상한다. 그런데 판매하기 위해서는 구매자가 있어야 한다. 자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지불능력이 있는 자본가가 필요하다. 만약 노동력을 보다 좋은 조건으로 판매하기 위한 노동자의 투쟁이, 오히려 자본가의 지불능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파산시켜 구매자를 없애버린다면, 노동자는 보다 좋은 조건으로 판매하는 것은 고사하고 판매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들의 투쟁은 억제되고, 끝임없이 “노사상생”이라는 유혹에 흔들리게 된다.
만약 내 노동력상품을 안정적으로 괜찮은 값에 팔 수 만 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잘려나가는 것에는 눈감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정규직 노동조합이 공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신경을 쓰거나, 그들의 문제로 공장을 멈추어 자본의 지불능력(구매력)을 저해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조합원들은 판매할 것이 노동력상품이지만, 노조관료들의 판매상품은 노동조합 그 자체이다. 조합원들의 삶, 노조운동을 만들어낸 동지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바쳐진 목숨은 자본가들에게 판매할 매우 값진 상품이 된다. 그들은 애초에는 노동조합의 힘을 무기로 조합원의 이익을 자본가와 거래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힘으로 관료자신의 이익을 자본가와 거래하는 것이 관료와 자본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노총위원장은 대통령후보가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 노조위원장은 구청장이 되고 적어도 구의원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적 출세를 위해서만 판매하지는 않는다. 총자본가인 국가에게, 혹은 개별기업의 자본가에게 직접 금전적으로도 거래한다. 민주노총의 보조금이 그 예이고, 수년전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던 민주노총간부들의 비리사건이 또한 그 예이다. 단위기업에서 노조위원장, 심지어 대의원들에게 각종 형태로 은밀하게 혹은 제도적으로 자본이 제공하는 것들이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토록 “민주노총의 브랜드가치, 민주노총의 격”이 중요한 것이다.
노동력을 보다 좋은 조건으로 판매하기 위해서 개별기업과 투쟁하고, 이것이 발전하여 법과 제도를 쟁취하기 위해서 정부와 투쟁하는 것, 그 조직적 무기로 노조를 만들고 노총을 만들고 노동자정당을 만드는 것, 이것이 이른바 1987년 이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였다.
노동조합운동이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상거래 의식도 발전하여, 가장 유리하게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보다 높은 값을 받고 판매하기 위해서는 구매자와 투쟁하는 것만이 아니라, 구매자끼리의 투쟁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매자와는 협상과 상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투쟁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대공장노동자와 중소기업노동자,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 등등의 분열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노조의 관료들 또한 발전하였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보다 비싸게 사줄 수 있는 넓은 시장을 발견했다. 그들은 구태여 자신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상점, 즉 민주노총이 만든 당인 민주노동당을 통해서만 자신의 상품을 판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비싼 값을 준다면 어디든 노동조합을 팔 준비가 되어있고 또 팔고 있다.
노동조합주의에 기반을 둔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주의정치운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휘황찬란하게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1) “2007년 대선 당시 오종쇄 위원장, 정연수 위원장 등 희망연대 주도 인사들은 대선 사흘 전인 12월 16일 이명박 대통령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민주노총 전‧현직 노조활동가 747명 지지선언’을 내세운 당시의 캐치프레이즈도 ‘새로운 노동운동’이었다.” (정용인 기자, 「새희망노동연대, 새로운 노동운동?」, ��위클리경향�� 867호, 2010.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