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칼럼] 도덕적 위선자들 사회지도층 대접 받는 일 없어야 2015·04·24 15:00
 

마광수(연세대 교수, 국문학)


위선에 대하여 
- '종교적 경건성' 무기삼아 신성불가침적 권위 누리기도

우리는 지금 '이중적 위선'이 기득권 유지와 출세의 수단으로, 심지어는 존경받는 지도층 인사가 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중적 위선'은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이어지고, 기회주의적 처신은 정권의 추이나 사회적 관심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 부(富)와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챙기게 만들어준다. 이럴 때 기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이중적 처신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것은 대개 '수구적 도덕'이나 '전통 윤리' 같은 것들이다. 

해방 이후 수없이 많은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끝까지 살아남아 '품위있게' 지위를 누리고 개인적 이득을 챙긴, 이른바 '지도층 인사 들은 거의가 다 도덕적 보수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해방 후 어떤 정권이건 도덕을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 정권은 없었으므로 그들은'사회 명사'로서의 이름과 지위를 실속있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일부 종교 지도자들 역시 어용적(御用的) 처신으로 일관하면서도 도덕과 형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 경건성'을 무기삼아 일종의 신성불가침적 권위를 누릴 수가 있었다. 

해방 이후 역대 정권 중 도덕을 강조하지 않은 정권은 하나도 없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부도덕하게 권력을 잡은 군사정권 때도 여전히 도덕은 강조되었다. 그래서 5.16 후엔 '재건국민운동본부' 가 차려져 국민들을 옥죄었고, 5.18 후에는 '삼청교육대'가 생겨 사회악 일소와 도덕 확립을 부르짖으며 억울한 피해자들을 많이 낳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위선' 을 변명 또는 포장하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는 명분은 '건강한 성윤리' 이다. 학계 언론계 법조계에 만연된 도덕적 가치관의 이중구조 속에서, 이미 한물 가버린 조선조 시대의 케케묵은 성윤리가 여전히 제도권 인사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패막이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성을 단순도구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방패삼아 아무런 저항없이 날개돋친듯 팔리고 있는 예술상품들. 도덕이니 관습이니 하는 고상한 논리로 성을 터부시하면서도, 음성적인 인신매매와 같은 성도덕의 타락을 잉태해내는 사회의 이중구조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관대한 사회문화적 풍토! 이렇듯 성윤리에 있어 극단적인 이중구조를 가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기득권 지식인들은 '성은 아름다워야 한다' 는 애매모호한 논리로 자신들의 도덕적 경직성과 이중성을 끊임없이 변명해대고만 있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성'이 아니라 '위선적 양면성'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문화의 획일성과 소아병적(小兒病的) 민족중심주의, 그리고 윤리의식의 이중성은 국민들을 위선자가 되도록 강요하고, '전통수호'와 '세계화'라는 상반된 명제에 적당히 양다리 걸치는 머리 좋은 위선자들은 오히려 정치적 제도적 기득권과 물질적 부(富)까지 누리고 있다. 

도덕적 이중구조의 극복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사안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우선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솔직함의 문화풍토' 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한 담론이나 솔직한 주장은 대개 결론을 확실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격을 당하기도 쉽고 어이없는 모럴 테러리즘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의 기득권 지식인들은 언제나 '솔직함' 보다는 '객관적 관찰'을 가장한 '양비론적 어정쩡함'을 표현의 주된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고는 결론을 보류하고 항상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느니 '좀 더 사태의 진전을 관망해보자' 느니 하는 투로 담론을 마무리 짓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보면 늘'자유는 좋지만 한계가 있다' '성은 중요한 문제지만 프리섹스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다' '민주화가 곧 방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투의 어정쩡한 결론으로 도피하게 되고, 활발한 토론 문화는 슬며시 뒷걸음질 치게 되는 것이다. 

위선은 솔직하지 못한데서 나오고, 솔직하지 못한 것은 도덕적 테러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인 것 같다' '…일지도 모른다'는 식의 이상한 어투가 만연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유가 좋다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꼭 '방종'과 대비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성이 즐거운 것이라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퇴폐'를 꼭 동반시켜 자신의 성적 욕구를 구구히 변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도덕성'보다 '솔직성'에 더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풍토가 한시바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전위적인 주장을 하더라도 화를 당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표현의 자유'가 하루빨리 보편화돼야 한다. 위선자들이 보무당당하게 활개 치며 '사회지도층 인사' 대접을 받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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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