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2017년 10월 9일자 뿌리 칼럼입니다. "기간제교사 정규직화를 결사반대"하고 "서울시의 무기업무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민주노조의 조합원들 — 무엇이 이런 모습을 만들어냈는지 성찰하면서, 다시 한 번 반격을 준비할 수 있는 방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비정규직과의 단결 – 위대한 반격이냐, 가파른 몰락이냐를 결정짓는 전장

 

 

 

비정규직 문제는 최근 15년을 관통하는 한국 계급투쟁의 핵심 화두였다. 전체 노동자를 단결시켜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향해 노동자운동이 전진할 수 있느냐를 규정하는 결정적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줌 밖에 안 되는 자본가계급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총칼로 노동자들을 억압함으로써가 아니다. 강제적 억압은 일시적 효과만을 발휘할 뿐이다.

 

지배계급의 권력이 유지되는 본질적 이유는 총칼 같은 채찍보다는 다른 요인에 있다. 바로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넘어서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을 만큼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한줌 지배자들의 지배의 원천은 피지배계급이 자신의 거대한 혁명적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꽁꽁 묶어두는 것에 있다.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의식을 노동자계급의 목구멍 깊숙이 심는 것,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이 분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노동자계급이 승리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자격, 즉 위대한 혁명계급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이 심어놓은 부르주아적 요소를 목구멍에서 토해냄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전투가 단지 자본가들에 맞선 외적 전투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속에, 심지어는 노동자 운동 속에 침투한 부르주아적 요소들에 맞선 내적 전투를 통해서도 이뤄지게 되는 이유다. 이러한 내적 전투는 자본가계급의 지배가 교묘해지고 학교, 언론, 선거 등 갖가지 부르주아 민주주의 장치들이 더욱 정교해짐으로써, 나아가서 개량주의 의회정당이나 노동조합 관료제가 자본주의 체제의 왼쪽 날개로 자리 잡게 됨으로써 더욱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때로는 노동자 운동 내에서 전개하는 내적 전투에서 충분하고도 완전한 승리를 얻지 못하면, 자본가계급에 맞선 전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도 없게 되는 불행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 ‘비정규직 제도’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치열한 사회적 공방전에서 노동자 운동이 전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봉쇄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불행한 상황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자본가계급의 지배의 뿌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간계급의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자본가계급은 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중요한 버팀목을 얻는다. 하지만 자본가계급의 지배가 강력해지면 질수록, 게다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심화되면 될수록, 자본가계급에 대한 중간계급의 지지는 흔들리게 된다. 더 많은 이윤을 찾아서, 자본가들은 중간계급의 터전을 계속 무너뜨리면서 자본주의 산업을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확산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 산업이 확산되면 될수록, 중간계급은 망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노동자계급이 대체한다는 점이다. 가령 이마트, 홈플러스가 동네상권에 침투하면, 시장 상인들은 사라지는 대신 수많은 유통산업 노동자들이 탄생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은 중간계급이 갈수록 줄어들고 노동자계급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 철의 법칙은 관철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자본가계급의 고민은 시작된다. 이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이것은 한줌밖에 안 되는 자본가계급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다.

 

지배 전략의 핵심 – 노동자계급을 분열시켜라

 

이러한 지배 계획의 심장부에는 항상 ‘노동자계급 분할 전략’이 놓여 있다. 이는 두 가지 노림수를 갖는다. 우선 분열된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강력한 노동자계급을 구성하지 못한다.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원자화된 시민일 뿐 결코 강력하고 위력적인 계급이 아니다. 이렇게 단결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서로 일자리와 임금을 두고 싸우면서 완전히 서로 등을 돌려버린다면 더욱 무기력해질 것이다. 모든 나라 자본가계급이 지배를 위해 우선적으로, 그리고 항상 시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분열 전략이다. 이렇게 분열돼 자본가계급에 맞설 전망과 힘을 상실한 노동자들은 결코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없다는 점을 꿰뚫어본 결과다.

 

그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결정적인 노림수가 있다. 바로 노동자계급 단결을 이룩할 구심점을 해체하고, 노동자계급 다수와 대립시키며, 한 발 더 나아가 자본가계급 혹은 중간계급의 정신으로 물들여버리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계급 단결을 해체하는 데서도 결정적 수단이 된다.

 

단결의 구심점을 포섭하라

노동자에 대한 엄청난 착취 앞에서, 가장 단결하기 쉽고, 파업과 같은 투쟁의 위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으며, 대규모로 함께 일하는 곳에서 노동자들은 단결에 먼저 착수한다. 여기서 노동자계급의 힘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먼저’ 노동조합을 조직하며, ‘먼저’ 투쟁에 나섬으로써 조직 노동자 운동의 선발대를 이룬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바로 이들이 일어나는 출발점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은 온갖 수단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자본가계급의 저항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착취 체제를 보호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저지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노력은 거기서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몇 십 배 강력해졌다. 반란을 시작한 노동자계급의 선봉 부대를 나머지 노동자계급 다수와 분리시켜 노동자계급 단결의 구심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새로운 지배 전략이었다.

 

이 지배 전략이 한국에서 구체화된 것이 바로 영세 하청, 외주업체를 포함한 비정규직 제도였다. 대노동조합의 조합주의 지도자들을 포섭해, 자본가계급은 분열 정책을 집행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착취를 통해서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고, 그 중 작은 일부를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줄 테니 타협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단 조건이 있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청년 노동자의 고통에 눈 감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대노동조합의 조합주의 지도자들은 노동자계급 총단결을 포기하고 계급타협 전략에 스스로를 얽어맸다.

 

가증스런 자본가계급은 자신이 이런 상황을 조장해놓고서도, 이것을 이용해 ‘비정규직 문제에 눈 감는 노동자 운동’이라고 대대적으로 선동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분열을 가속화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노동자계급 단결이 진척되지 못한, 즉 자본가계급의 지배가 관철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러한 배신이 유발한 효과는 거기에 제한되지 않았다. 노동자계급 형성의 구심점이 돼야 할 조직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정신에 포섭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쟁 논리와 노사협조주의, 정규직 우월주의를 스스로 내면화하는 흐름까지 확산한 것이다.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 기회주의

 

이와 같은 부르주아 의식의 내면화는 최근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어제 오늘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노동자계급 총단결의 관점, 즉 노동자계급 의식에서 벗어나 단사 정규직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노동귀족적 상태로 추락해왔던 약 20여 년간 민주노조 운동 속에 축적된 기회주의가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기회주의는 노동자 운동의 신참들 속에서 가장 명확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필연적이다. 1987년 이래 10년 이상 가열차게 펼쳐졌던 계급 단결투쟁의 역사를 조금도 경험하지 못한 채, 그 운동의 쇠락 국면에서, 아니 그 운동을 탄생시켰던 단결투쟁의 정신을 파괴하면서 성장했던 기회주의의 정신이 위로부터 민주노조들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노동자 운동에 입문한 신참 세대 속에서 기회주의는 거추장스런 외피를 벗어던지고 가장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울교통공사(구 서울지하철과 도시철도) 청년모임의 “서울시의 무분별한 무기업무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 흐름은 그러한 기회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최근 사례다.

 

서울교통공사 청년모임(이하 ‘청년모임’)은 최근 입사한 젊은 조합원들의 모임이다. 근속연수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기존 정규직 직군과 별도의 직군 창설 계획을 포함한 형편없는 수준의 정규직 전환조차 이들은 반대하면서, 노조 탈퇴까지 거론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이 흐름은 젊은 조합원들의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숨길 수 없는 진실

 

물론 청년모임의 항변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공채 시험을 준비해온 젊은이들보다 더 오랜 기간, 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소중한 노동을 해 온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정규직이 돼야 할 마땅한 자격을 갖춘 노동자들이다. 세월호 참사 때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은 학생들을 책임지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대우조선에서, 현대중공업에서, 삼성중공업에서, 발전소에서, 정유공장에서, 구의역에서 가장 많은 목숨을 바치면서 이 사회를 떠받쳐 온 사람들은 바로 비정규직, 외주업체 노동자들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진실이 또 하나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젊은 조합원들은 어떻게 정규직이 될 수 있었는가? 간단하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덕분이었다. 이 계급투쟁은 부끄러울 만큼 부족했고, 여러 약점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서울교통공사의 젊은 조합원들을 탄생시킨 결정적 토대였다.

 

외주화와 이중임금제에 반대하는 투쟁, 현장인력 충원투쟁 등 자신의 안정성을 지키고 나아가서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선배들의 투쟁을 지워보라! 그랬다면 변변찮은 정규직 신규 채용마저도 아예 없었을 것이다! 이 쓰디쓴 진실은 서울교통공사의 젊은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보답하는 것이다. 바로 선배들이 불충분하게 했던 계급투쟁을 선두에 서서 확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후배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다!”

 

역사적 유산

 

하지만 질문해보자. 청년모임의 저 괴물 같은 모습은 과연 누가 만들어 온 것일까? 그것은 저 가증스런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부가 만든 것인데, 그들은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들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괴물의 탄생을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세력은 바로 노동자 운동이었다. 이 노동자 운동이 그 역할을 방기했을 때 나타날 결과는 너무나 분명했다. 지금 청년들과 젊은 조합원들의 상당수가 보여주는 모습 이외의 다른 모습은 절대 불가능했고,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를 갖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워졌다. 밀리면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무한경쟁에서 승자가 돼야만 겨우 안정된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 젊은 조합원들은 지금 외치고 있다. “우리는 이토록 어렵게 들어왔는데, 어떻게 저토록 쉽게 정규직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이 공정한 경쟁인가? 경쟁의 톱니바퀴에 깔려 뭉개진 우리의 고통스런 청춘은 누가 보상해주는가?”

 

서울교통공사의 젊은 조합원들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저 괴물은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변하는 계급투쟁을 최근 20여 년 동안 사실상 포기해 온 한국 노동자 운동의 머리 위에 떨어진 ‘역사의 복수’가 아닌가? 그들의 모습은 한국 노동자 운동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투명한 거울이다. 좌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지하게 성찰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우리의 모습을 비춰봐야 할 바로 그 거울 말이다.

 

계급투쟁 그리고 부끄러운 지도자들

 

노동조합도 없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만들 기회조차 사실상 박탈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아무 조직도 없이 개별화돼 무장해제된 청년들, 바로 우리 노동자계급의 자매형제들과 자녀들을 향해 퍼붓는, 자본과 정부의 저 무자비한 대공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누구였는가? 바로 조직돼 있기에 투쟁할 수 있는 노동자들, 즉 민주노조들이었다. 민주노조 운동이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표해 감행하는 계급투쟁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이 계급투쟁에서 조직 노동자들은 밀려왔고, 심지어는 이 사활적인 계급투쟁을 회피해 왔다.

 

1997년 노동법 개악반대 총파업투쟁에서 민주노총이 밀리자 비정규직 제도는 전면화되기 시작했다. 뒤이어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도 후퇴가 일어났다. 외주화 반대투쟁에서 밀리면, 정규직 일자리는 비정규직이나 외주업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로 즉각 대체됐다. 가령 동희오토 같은 신설 공장들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위한 투쟁을 기아차노조가 방기한 결과는 100% 비정규직 공장의 탄생이었다. 상황은 늘 이런 식이었다. 비정규직 제도와 청년 실업의 대대적인 확산의 뒷면에는 자본가계급의 공세에 맞서 조직 노동자 운동이 전개했던 계급투쟁의 일련의 패배와 좌절, 나아가서 노동자 총단결투쟁의 빛나는 전망에 대한 대기업, 공공부문의 다수 노조 지도자들의 불신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계급투쟁에 대한 두려움에 벌벌 떠는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대기업 회장들과 은밀히 제휴했다. 현대차 정리해고 분쇄투쟁 이후, 정갑득 당시 현대차지부장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내하청을 들여 놓겠다”고 선언했다. 언제까지 피 말리는 공방전을 할 수 없으니, 비정규직을 도입해 경기변동의 완충판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렇게 현대차에서 비정규직들이 대대적으로 탄생했다. 그리고 이 썩어빠진 지도자들은 조합원들에게 호소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눈감자. 그래서 현대기아차를 번영시키자. 그 뒤 회장이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을 통해 거둬들인 천문학적 이윤 중 일부를 공유하자!”

 

자본가 정부의 전투 계획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동조합들 속에서 이런 계급타협 전략이 야금야금 확산돼 온 지난 20여 년간 임금격차는 천문학적으로 벌어졌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는 일종의 특권계급 일자리로 둔갑해버렸다. 정규직 일자리들이 무언가 대단히 좋아져서가 절대 아니다. 이것은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 청년들이 실업과 저임금, 생활의 불안정성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역사의 복수가 시작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착취해서 더 이상 뜯어먹을 고기가 부족해진 자본가계급은, 그 동안 전체 노동자계급으로부터 고립되고 계급투쟁 능력을 잃어왔던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조합들에게 송곳니를 들이대고 있다. 사전 정비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조 운동이 책임지지 못해 온 비정규직들과 청년 예비 노동자들에게 약간의 정규직화와 일자리 확대라는 떡고물을 던지면서, 민주당과 자본가 정부는 이들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흡수해가고 있다. 이런 ‘정치적 기반다지기’가 성공한 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문재인 정부는 이런 개량을 뒷받침하는 비용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비용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다만 여기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문재인이 말하는 ‘협력’은 무슨 뜻인가?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들에게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이 비용을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으로 압박해서 임금삭감을 비롯한 대대적인 양보를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전면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자본가 정부가 전력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노사정위는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통로’다. 그게 통하지 않으면, 이 노조들의 반발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비정규직과 청년들을 향한 약간의 개량은 이런 제압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무기’를 장착하기 위한 ‘투자비용’인 셈이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집행됐던 자본가계급의 지배 전략이 최근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놀랄 만큼 확산된 비정규직 제도, 그리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 문제가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방치한다면, 장기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저항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협조주의, 즉 계급타협 전략을 수십 년간 관철함으로써 조직 노동자운동의 상층 지도자들을 충분히 포섭했고, 나아가서 대중 차원에서도 대노동조합들에서 자본주의 분열의식을 상당히 내면화시키며 노동귀족적 의식을 확산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 결과, 자본가계급은 비정규직 제도를 아주 약간 완화하는 것을 알리바이로 삼아 대기업, 산업, 전국 차원에서 노사정 계급타협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는 것도 모자라, 비정규직 같은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을 자본가 정부의 지지 세력으로 포섭하고, 더 나아가 조직 노동자 운동을 자본가계급과의 타협의 우리에 가둬 질식시키는 데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결정적 격돌의 장 – 비정규직 문제

 

노사정위로 대표되는, 완전한 계급타협의 울타리로 조직 노동자 운동을 몰아넣는 데서 자본가계급이 동원하는 알리바이이자, 결정적 무기는 바로 비정규직 문제다. 문재인 자본가 정부의 지휘 아래, 일차적으로는 공공부문에서 이차적으로는 민간부문에서 그 본질은 바꾸지 않은 채 약간만 비정규직 제도의 겉모습을 손 본 정책을 자본가계급은 집행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개의 비수를 숨기고 있다.

 

하나는 비정규직 조건 개선을 볼모로 조직 노동자 운동의 상층에 득세하고 있는 타협주의 세력이 노사정위에 참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합주의 관료집단의 영향력에 방치된 결과, 노동귀족적 습성이 퍼져왔던 대기업 정규직 노동 운동을 더 확실히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 총단결의 구심을 더욱 철저히 파괴하고 제압하는 것이다. “우리 자본가계급은 최소한 이 정도는 비정규직 문제에 신경 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 조직 노동자 운동을 대표하는 대기업 노조 조합원들은 이것조차 거부하면서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느냐?” 바로 이것이 한국 자본가계급이 광범위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조직 노동자 운동의 모습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런 시도는 도박이다. 우선 점차 조직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가 정부의 기만적인 조치를 뛰어넘어 진정한 권리를 쟁취하고자 일어서고 있다. 이들은 결코 자본가 정부가 쳐놓은 선에 갇히지 않고 더 멀리 전진하려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도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기업 조직 노동자 운동의 상태는 그 선진 부위에게 정면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노동자계급 분열을 방조하지 말라! 조직 노동자 운동의 선봉 부대를 다시금 계급 단결투쟁의 중핵으로 세워내고, 조합주의 관료들과 노동귀족적 정신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하라!”

 

기아차, 전교조, 교통공사 등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비참한 모습은 노동자 운동이 자신 속에 침투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오염물을 토해내고 노동자계급의 정신으로 재무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 부패가 너무나 적나라해서, 조금이라도 깨어 있는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이런 비참한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각오를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운동 속에 침투해 이제 거대한 괴물로 성장한 기회주의에 맞선 내적 전투에 대담하게 착수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운동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점이 누구에게나 너무나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운동에 착수할 수 있는 소중한 출발점이다.

 

위대한 반격

 

이 투쟁은 이미 25년 전부터 일관되게 전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사활적인 전투였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그 힘과 정신을 모아 노동자계급 투쟁정당으로 선진 부위가 진격하는 결정적 실천 무대였다. 나아가서 이 투쟁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 단결의 중핵 대오 속에 심어놓은 오염물을 뱉어내며,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공동체주의적 본성을 일깨우고 개화시키는 결정적 실천 무대였다.

 

이제껏 조직 노동자 운동의 선진 부위는 이 결정적 전투에서 밀려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던진 결투 장갑 앞에서, 이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고 또한 물러나서도 안 된다는 점을 이들은 자각해가고 있다. 한국에서 진정 강력한 노동자계급을 형성하고, 그 필사적 전투의 성과를 모아 노동자계급 정당을 향해 진격할 것인지, 아니면 더 뼈저린 후퇴 속에서 자본가계급에 더 깊이 종속될 것인지가 바로 이 전투의 향배에 달려 있다.

 

자본가계급의 지배 전략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어떤 지역, 사업장에서 실천하든 자신의 실천을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란 관점에서, 그리고 자본의 지배 전략을 파탄내면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힘을 벼려낸다는 관점에서 실천하는 선진 투사들만이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향한 위대한 운동’을 이끄는 전위 투사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 정당은 바로 이 투사들을 통해서만 건설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신뢰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강령이란 무기를 갖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은 백 배의 각오와 책임감으로 이 전투의 선두에 서야 한다.

 

다시 일어서는 우리

 

노동자계급을 더 철저히 분할하고, 민주노조 운동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박살내려는 자본가계급 정부의 비열한 계획을 저지할 수단은 무엇인가? 바로 노동자계급 총단결투쟁이다. 허울뿐인 정규직화에 맞서 진정한 정규직화를 쟁취하고자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가 정부의 계획을 파탄 내는 선봉에 서 있다. 여기에 “모든 비정규직의 완전한 정규직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내걸고 비정규직, 청년들과 단결해 투쟁하는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반드시 더해져야 한다.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노동자들은 다시 일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웬 파업이냐는 자본가 언론들의 엄청난 비난을 뚫고 수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의 투쟁으로만 개척할 수 있다”며 6.30 사회적 총파업으로 일어났다. 삼성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 등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기만적인 자회사 정규직화에 맞서 SK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사측의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는데 발 벗고 나선 대가로 20억 원의 손배를 맞은 정규직 해고 활동가가 있다. 그는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전투적 활동가들이 젊은 조합원들, 보수화된 기존 조합원들과 논쟁을 하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실천하고 있다.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도 30%의 대의원들이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 찬성했다.

 

이렇게 역사의 복수를 깊이 성찰하고, 20년의 민주노조 운동의 약점을 곱씹으면서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 단결투쟁의 깃발 아래 다시 일어나고 있다. 자본가계급과 문재인 정부의 비열한 계획에 맞서 한국 노동자계급을 무적의 세력으로 결집시키고, 진정 노동자다운 정신과 자세로 재무장시키며,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린 계급투쟁의 힘을 키워갈 대안은 오직 이들에게만 있다. 바로 이들을 통해서만, 자본가계급이 심어놓은 것들을 토해내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노동자 운동의 위대한 미래가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