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평] 평화박물관·손잡고 사태와 한홍구 교수에 대하여 2017·10·18 15:28
 

최덕효(한국인권뉴스 대표겸기자)


‘평화박물관 사태’와 ‘손잡고 사태’를 계기로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하다.  

두 건 모두 표면적으로는 활동가 부당해고 등이 문제로 회자되고 있으나, 그간 필자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 배경에는 ‘사업(운동)’에 대한 견해 차이와 인간관계의 어긋남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평화박물관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죄운동에서 출발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종잣돈으로 2003년 발족해 그간 사업을 진행해온 바 있다.  

그러나 2015년 들어 평화박물관 전 이사인 한홍구 교수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평화박물관>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편찬위)로 사업의 중심을 옮기게 된다.  

이후 <편찬위>는 1년 반에 걸친 조사연구를 거쳐 2017년 2월 16일 열전 수록 여부를 집중적으로 검토할 대상자 405명의 명단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거의 절반이 생존한 상태이기에, 생존자가 2명에 불과한 <친일인명사전>에 비하면 관련 권력의 저항이 어떠할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한홍구 교수는 본인이 직접 편찬위원을 맡아 사업을 주도하는 등 왜 이토록 부담이 큰 작업을 하게 되었을까. 그 연유를 이해하려면 2016년 2월 샌디에이고 강연을 참고하면 대략의 윤곽이 보인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과거를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며 <편찬위> 활동은 간첩사건 조작 등의 반헌법적 행위 범죄자들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사실상 “제2의 반민특위” 활동을 시사한 것이다.

샌디에이고 발언은 기존의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성큼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강연의 요지를 보자(인용 정리: 한홍구 교수 "현재를 바로 세우면 과거도 정리된다" 오마이뉴스 2016.2.10).    

1. 일제는 조선뿐 아니라 일본과 네덜란드의 여성들도 위안부로 동원했는데, 장병들에게 '깨끗한 성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국가에서 직접 성병을 관리했다(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이유).

2. 2차 대전 후 네덜란드 여성을 동원한 일본군 책임자는 실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미국이 조선위안부에 대한 상세한 조사와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해방 후에도 40년 동안이나 철저히 은폐되어 있었다.

3. “은폐 이유”로는 첫째,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정치적 계획과 이익 때문이었다.

둘째, 남한정부 자체가 한국전쟁 당시 위안부를 직접 운영 관리할 만큼 여성인권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다(월남전에도 한국군을 위한 한국위안부 파견을 논의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군상대 기지촌을 국가에서 관리하며 이들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이용).

셋째,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여성들의 절대다수가 무학의 빈곤층 출신이었기에 이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4. 따라서 위안부문제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범죄'라는 민족적 차원으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 일본에서 동원된 위안부도 있었던 만큼, 국가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인권유린이라는 측면과 “계급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5. '대동아공영'이라는 일본의 명분을 순진하게 믿은 조선인들도 실제로 있었기에, 광복 후 태어난 우리들의 '행운'을 남용하여 모든 '친일파'들을 구분 없이 일괄 단죄하려는 접근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6. 해방 이후에까지 독립운동가들을 박해한 친일파는 용서할 수 없고, 그 후손들이 사죄까지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 현재의 한국을 건강히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7.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일제로부터 배워 우리의 사회문화에 젖어든 나쁜 관행들(여성을 군인들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는 것 같은) 역시 반성해야 한다.

8. 그런 의미에서, 제헌헌법의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대한민국의 제헌헌법은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를 채택"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4항(민족적 차원으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 계급적 측면 등)과 5항(친일파 일괄 단죄는 비합리적), 특히 8항(제헌헌법 정신 실현: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을 주장한 한홍구 교수의 관점은 정권교체기를 앞둔 포석으로 <평화박물관> 사업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사업의 중심이 옮겨짐과 동시에 관련된 활동가들의 역할이 결과적으로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는 등 여러 내홍을 낳았고, 오늘에 와서 그 책임소재가 역으로 한홍구 교수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상대적으로 다소 ‘편한’ 사업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무소불위의 폭력적 권력에 맞서 ‘제2의 반민특위’를 주도하고 있는 그를 마치 무슨 ‘적폐’의 하나처럼 몰아가려는 듯한 이른바 운동진영 일각의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