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포커스] 조국 논란과 개혁 세력 지식인들의 타락 2019·10·11 22:52
 

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조국 논란이 집권 세력과 야권 세력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대결로 확대됐다. 양쪽은 급기야 대규모 집회로 세 대결에 나서고 있기까지 하다. 검찰청이 있는 서초동에서는 “검찰개혁이 시급하며 그 적임자가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에서는 “검찰개혁은 정권의 검찰 장악 음모일 뿐이며 조국은 그 앞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결집하게 했다.

이제 두 집단 사이 대화는 불가능하다. 내년 총선에서 한 쪽이 ‘심판’받기 전까지 한국 정치는 작동 중지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 사회가 조국 장관을 두고 이런 사생결단의 대결을 계속하는 것이 옳을까? 조국 법무장관 임명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한일 갈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한일 간의 무역전쟁으로까지 번진 역사 갈등은 국운이 걸렸다 할 만큼 큰 쟁점이었다.

그런데 조국 논란이 터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세계 언론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침체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한국경제의 침체도 마찬가지다. 자칫 군사적 갈등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북미 간의 협상도 이슈에서 밀렸다. 정세의 위중함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 전체가 한가로운 정쟁만 하는 꼴이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우리는 현 정치적 혼란이 그 누구보다도 개혁 세력으로 불리는 정당, 시민단체, 지식인들 탓에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정치적 이중잣대 때문이다. 조국 장관만이 아니라 개혁 세력 전반이 ‘내로남불’ 정치로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중잣대의 정치로는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국민적 합의도 모아낼 수 없다. 누가 로맨스고 누가 불륜인지를 두고 악무한의 쟁투만 지속될 뿐이다.

둘째, 검찰개혁이 과대하게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혁 세력이 주장하는 조국 임명의 정당성은 검찰개혁의 절박성에 있다. 하지만 권력기관 부패의 핵심은 그 권력기관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에 있다.

현재 검찰개혁은 검찰권은 약화하되 대통령의 권한은 더 키운다. 야당 세력을 설득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권력기관 개혁에서도 일탈한 것이다. 집권 세력의 권력만 더 키우는 검찰개혁은 여야 간의 사생결단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중략>

포퓰리즘 정치와 타락한 개혁 세력의 몰락, 하지만 사회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조국 사태는 포퓰리즘 개혁정치의 실패를 상징한다. 현 집권 세력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확대할 실질적 방안보다 기득권, 보수 세력, 적폐 세력 등 집권 세력 외부의 가상의 적을 상대로 한 섬멸전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이런 정치는 결과적으로 국가의 혼란만 가중하며 정치적 환멸과 각자도생의 사회 파탄으로 이어진다.

참여연대, 민변, 386 정치인, 진보교수, SNS 샐럽들로 이어지는 한국 개혁 세력은 지금도 이런 사회파탄의 길을 열심히 닦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 좌파’로 불렸던 혼란이 2010년대 후반 ‘강남 좌파’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조국 논란을 끝내고 미래를 좌우할 진짜 개혁의 본령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 저성장, 인구 고령화, 수출감소, 경제적 불평등, 한일 역사갈등, 북미 핵 협상, 미중 무역전쟁 등등 현재 한국 사회가 부딪힌 문제들은 장기간에 걸쳐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것들이다.

정당성 없이 갈등만 키우는 조국 장관은 사퇴하고, 검찰개혁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라는 권력기관 개혁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더불어 집단적 ‘내로남불’ 상태에 빠진 개혁 세력의 진지한 자기 성찰도 필요하다. 이들의 집단적 성찰이 없다면 한국 사회는 이들에 의해 또 다시 반(反)보수 같은 허망한 진영대결로 이끌려갈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 또한 엄중한 자기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서초동 집회나 조국 관련 이슈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개혁 세력의 운동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려다녔던 것이 사실이다. 실용적으로 노동 의제를 사회 이슈로 만들기 위해 개혁 세력의 일원으로 행동했던 적도 많고, 집행부가 의식적으로 보수 세력 타격을 1순위로 삼아 조합원을 동원했던 적도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봐도, 오늘날 상황을 봐도, 그 개혁 세력의 정책이 오히려 노동자들을 옭아맸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는 정리해고 시대를 연 민주당에 면죄부를 줬다. 2004년 복권된 참여정부와 386 정치인들이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을 완고한 제도로 뿌리박게 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은 2009년 쌍용차 파업을 외면했고, 2014년 세월호 진실규명 촛불 역시 매년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산업재해의 현장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보수 세력을 타격해 개혁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진영 논리만 촛불의 끝에 남아있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촛불혁명 정부를 자처했던 새 정부는 386 정치인, 참여연대, 민변 등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세력들의 연합정부로 꾸려졌다.

하지만 이 정부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이었다. 올려놓고 다시 내리는 최저임금, 단축해 놓고 다시 유연하게 늘리는 근로시간제, ILO 협약 비준이라며 역으로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노동법개정이 그런 사례들이다. 정부 정책 기조도 시나브로 노동 존중에서 기업 존중으로 바뀌었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자운동은 이제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원래의 포부로 되돌아와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맞는 담대한 개혁 구상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개혁 세력에 끌려다니는 것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끝내야 한다.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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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