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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남한

한국 독점자본의 성격과 그에 따른 노동자 전위의 강령적 임무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국제서기, 201912

 

 

차례

 

I. 몇 가지 일반적 고려 사항

1. 문제의 현실 유의미성

2. 정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구성요건은 무엇인가?

 

II. 남한 독점자본에 대한 개괄

3. 역사적 배경: 급속한 공업화를 가능케 한 이례적인 조건들

4. 고도로 산업화한 현대 자본주의국으로서의 한국

5. 한국 독점자본: 국내시장의 지배

6. 한국 독점자본: 세계시장에서의 글로벌 플레이어

7. 한국 독점자본: 자본수출의 역할

III. 남한의 제국주의로의 전화에서 비롯하는 몇 가지 정치적 문제들에 대하여

8. 노동귀족의 대두와 한국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

9. 남한 제국주의의 정치적 역할과 그 제한적인 독자성

 

IV. 몇몇 반론에 대하여

10. 남한이 여전히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는 스탈린주의적 신화

11. ()제국주의론의 오류

 

V. 반제국주의 강령과 혁명적 전술

12.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

13. 오늘 남한에서 반제국주의적 임무

보론: 역사적 유추 - 1891년과 1914년에 독일에서 맑스주의적 전술

 

 

 

 

I. 몇 가지 일반적 고려 사항

 

이하의 글은 필자의 독자적인 조사연구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RCIT) 남한 동지들과의 집중 토론 및 협력의 결과물이다. 특히 필자는 이미 제국주의 문제에 관한 두 글을 낸 홍수천 동지에게 감사를 표한다.

 

 

1. 문제의 현실 유의미성

 

남한이 반()식민지에서 2000년대에 제국주의로 전화한 것은 맑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이슈다. 남한의 혁명가들에게만이 아니라 전체 아시아 대륙과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문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세계경제에서 한국이 중요한 플레이어가 되었다. 삼성, 현대, LG 같은 한국의 주요 독점체들은 글로벌 엘리트 기업 군()에서 두드러진 멤버들이다.

 

둘째, 한국의 부상은 라이벌 일본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한판 붙어보겠다는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한 결과들 무역전쟁 개시부터 군사협력 협정 파기 (지소미아 종료)에 이르기까지 은 동아시아의 지리적 전략 환경과 이 지역의 미 동맹체제에 큰 파장을 미친다.

 

셋째, 남한의 변화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한반도는 오랫동안 북한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침략·도발을 고려할 때 세계정치에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반도는 거의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지역이다.

 

그 결과로, 이러한 변화는 혁명가들에게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른바 민족해방 (NL)” 조류 남한의 스탈린주의 · 준 스탈린주의 조직들 의 주장과는 반대로, 노동자 전위가 자국의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해야 할 전략적 임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남한 혁명에서 민족해방 과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민족해방투쟁도 실제로는 남한 독점 부르주아지에 대한 사회제국주의적 지지로 되어버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남한이 반식민지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전화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비약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19876월항쟁과 군사독재 퇴장 이후의 시기에 크게 고양된 노동자운동을 봉쇄하고 패퇴시키는 데 독점 부르주아지가 성공한 그 물질적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국에서 노동귀족, 즉 제국주의 초과이윤에서 지불된 프롤레타리아트의 특권적 상층의 형성, 이것이 바로 노동자운동의 개량화와 체제내화, 그리고 그 거대한 관료화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에서 부르주아지가 제국주의 자본가계급으로 전화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개량주의가 한국 노동자운동에서 거둔 (일시적) 승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한 동안 RCIT는 한국이 반식민지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는 것을 분석하면서 이 문제가 가지는 현실 유의미성을 지적해왔다. 우리는 이 연구가 한국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혁명적 투사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하의 연구는 RCIT 남한 동지들과의 토론을 위해 작성하여 얼마 전에 발표한 <테제>를 상세화한 것이다.

 

 

2. 정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구성요건은 무엇인가?

 

남한 제국주의의 특징을 보다 상세히 분석하기 전에 먼저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정의를 간략히 개괄해보자. 우리가 다른 글들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우리의 개념을 요약하는 것으로 한정하겠다.

 

맑스주의자로서 우리의 출발점은 볼셰비즘의 창건자이자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인 레닌이 정립한 바의 고전적인 제국주의 정의다. 레닌은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징을, 경제를 지배하는 독점의 형성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으로의 융합, 상품수출과 함께 자본수출의 증가, 세력권, 특히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을 지적했다.

 

레닌은 제국주의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이론적 글인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내의 분열>에서 다음과 같은 제국주의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가능한 한 정확하고 완전한 제국주의 정의(定意)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국주의란 자본주의의 특수한 역사적 단계이다. 그 특수성은 세 가지다. 제국주의는 (1) 독점 자본주의, (2) 기생적인, 또는 부패해가는 자본주의, (3)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다.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했다는 것이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경제적 특징이고 그 본질이다. 독점은 주되게 다섯 가지 형태를 취하며 나타난다. (1) 카르텔 · 신디케이트 · 트러스트 이러한 독점적 자본가 집단을 낳을 정도로 생산의 집적이 이루어졌다. (2) 대 은행들의 독점적 지위 서넛 내지 다섯 개의 거대 은행이 미국, 프랑스, 독일의 경제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3) 트러스트와 금융과두제(금융자본은 은행자본과 융합한 독점적 산업자본이다)원료자원을 장악하고 있다. (4) 국제적 카르텔에 의한 세계의 (경제적) 분할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국제적 카르텔은 이미 백 개도 넘는데, 이들이 세계시장 전체를 지배하며, 이 세계시장을 사이좋게분할하고 전쟁이 그것을 분할할 때까지는 사이좋게있다. 비독점 자본주의하에서의 상품 수출과 구별되는, 매우 특징적인 현상으로서의 자본 수출은 세계의 경제적 및 영토적 · 정치적 분할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5) 세계의 영토적 분할(식민지)완료되었다.”

 

여기서 보듯이, 레닌은 독점의 형성이 제국주의 시대에 경제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것을 한 점 모호함 없이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점은 위 인용문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레닌의 다른 수많은 진술로부터도 분명하다. 또 하나의 같은 시기 글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경제적으로 제국주의(또는 금융자본 시대’ - 말의 문제는 아니다)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이며, 자유경쟁이 독점에 자리를 내줄 정도로 생산이 크고 거대한 규모를 띠는 단계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이다. 독점은 트러스트, 신디케이트 등등으로, 거대 은행의 전능한 힘으로, 원료자원의 매점 등등으로, 은행자본의 집중 등등으로 나타난다. 경제적 독점이 미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책 <<제국주의론>>에서는 다시 이렇게 강조했다. “경제면에서 보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이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레닌은 독점 자본주의 독점의 형성과 경제에 대한 독점체들의 지배, 열강의 세계정치 지배와 그에 따른 노동자계급 및 타 민족에 대한 억압·착취 가 제국주의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정의는 변증법적 파악이므로 일국을 고립시켜 보아서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할 수 없다. 맑스주의의 방법론적 기초는 우리에게 각각의 사물, 각각의 현상을 고립시켜서가 아니라 다른 사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스탈린주의적 탄압 이전인 1920년대 소련에서 대표적인 맑스주의 철학자 아브람 데보린은 이 문제를 이렇게 정식화했다. “세계에서 어떤 사물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전체의 나머지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의 경우에도, 주어진 한 국가는 별개의 단위로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그 국가가 다른 국가·민족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 국가란 정의상 복수의 국가들로 존재하기 때문에 홀로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이 점은 자명하다. 계급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다른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 없는 부르주아지란 없다. 농업 노동자와 농민이 없는 대지주란 없다. 같은 식으로 식민지·반식민지가 없는 제국주의 국가란 없다. 그리고 단 하나의 강대국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복수의 강대국들이 존재한다.

 

나아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 변증법적 이해는, 그 대상 [제국주의 국가]많은 규정과 관계의 풍부한 총체 속에서 그 대상을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제국주의 열강을 도식적인 방식으로 보아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널리 퍼진 오류가 존재한다. 즉 제국주의 국가는 미국 혼자이고, 제국주의 국가의 모델은 미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글들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이러한 접근법은 사회 일반의, 특수하게는 제국주의 국가의 발전에서의 불균등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이 같은 무시는 중대한 오류를 낳는데, 왜냐하면 레닌이 강조했듯이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발전은 한결 같지 않고 오히려 각 경우마다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실제로도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경제적 수준에서보다 군사적 수준에서 훨씬 더 강력한 강대국이다. 일본과 독일에서는 정반대의 경우가 사실이다. 게다가 보다 큰 제국주의 국가와 보다 작은 제국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중에서부터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까지).

 

이 같은 불균등성은 자연히, ·중처럼 가장 지배적인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그 이외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우에 타 강대국 (말하자면 미국이나 중국)과의 동맹관계 그들이 타 강대국에 타협,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지어는 일정 정도 스스로를 타 강대국에 종속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동맹관계 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가져온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일본·서독의 발전과 그에 따른 그들의 미 제국주의에의 종속이 그 생생한 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같은 유럽의 보다 작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유럽의 선도적 열강에 일정 정도 종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호주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다소간에 종속적인 지위를 점한다. 그리고 한국은, 이제 우리가 보겠지만 또 다른 예다.

 

그러므로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을, 그들 발전의 이 측면 또는 저 측면만을 가지고서가 아니라, 그 총체성에서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해당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잘못 판단하고 그 결과, 정치적 혼동 속에서 계급투쟁 바리케이드의 올바른 쪽을 취하는 데 실패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끝으로, 운동을 본질적인 것으로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아니더라도 인식하는 것은 변증법의 기본 요건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그의 유명한 <<반뒤링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운동은 물질의 존재 양식이다. 운동 없는 물질은 결코 어디서도 존재해 본 적이 없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우주 공간에서의 운동, 각각의 전체에서의 미소한 물체의 역학적 운동, 열 또는 전류나 자력으로서의 분자운동, 화학적 분해 및 화합, 유기적 생명 등등의 세계의 이 모든 물질원자는 어느 순간에나 이상과 같은 운동형태 중의 어느 하나 또는 동시에 여러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지나 모든 평형상태는 오직 상대적이고 일정한 운동형태와의 관계에서만 비로소 의의가 있는 것이다... 물질 없는 운동과 마찬가지로 운동 없는 물질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운동은 물질 자체와 마찬가지로 창조될 수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는 다를 수가 없는 이유는 모든 물질 자연에서와 사회에서의 은 외적 모순뿐만 아니라 내적 모순에 의해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물질은 모순들의 통일이며, 이 모순들의 발전은 물질의 운동 동력이다. 레닌이 강조했듯이, “대립물의 통일 (일치, 일체성, 동일한 작용)은 조건적, 일시적, 과도기적, 상대적이다. 상호배제적인 대립물의 투쟁은 발전과 운동이 절대적인 것처럼 절대적이다.”

 

이 외견상 순 추상적인 문제는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 분석에 고도로 적실성을 갖는다. 스탈린주의적 사유는 근본적으로 기계론적이며 변증법적 사고방식을 결여하고 있다. AA이고 A로 남는다, ! 모순과 변화 속에서 사고하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은 모순 및 그 모순으로 인한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의 운동을 인정한다. 맑스주의자들은 현실 자체의 리듬과 운동을 반영하는 변증법의 방법에 분석의 기초를 둔다.

 

오직 이러한 변증법적 접근만이 맑스주의자들로 하여금 계급들 간, 국가들 간 관계망의 발전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오직 이러한 변증법적 접근을 통해서만 맑스주의자들은 이 관계에서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고, 따라서 해당 국가의 가능한 계급적 성격 전화를 고려에 넣을 수 있다. 그 자체가 양질 전화 과정의 결과인 이러한 전화는 인류 역사에서 반복해서 일어났다. 7세기와 8세기에 비잔틴 제국이 고대 노예소유주 국가에서 봉건국가로 전화한 것은 인류 역사의 수많은 예들 중 하나일 따름이다. 보다 최근의 예를 든다면, 러시아를 비롯한 그 밖의 나라들에서 스탈린주의의 붕괴가 자본주의의 복고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 1970년대에 포르투갈 식민 제국의 붕괴가 포르투갈이 제국주의 나라에서 반식민지 나라로 전화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 또는 보다 최근의 예로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요컨대, 모순과 운동 속에서 사고할 능력이 없다면, 계급 사회에서 일어나는 바와 같은 발전을 인식하지 못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특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다음과 같은 짧은 정의로 일단 정식화하고 넘어가자. 제국주의 국가란 무엇보다도 그들의 독점체와 국가기구가 세계질서 속에서 타 국가 · 민족을 지배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다. 그 결과, 제국주의 국가는 그러한 초과착취와 억압에 기초한 관계로부터 초과이윤을 비롯한 그 밖의 경제적 · 정치적 · 군사적 이득을 얻는다.

 

 

 

II. 남한 독점자본에 대한 개괄

 

3. 역사적 배경: 급속한 공업화를 가능케 한 이례적인 조건들

 

한국의 제국주의 국가로의 전화는 이례적인 발전의 경우인데, 왜냐하면 미국이나 일본이나 서유럽 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20세기 내내 이들 국가와는 다른 계급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20세기 전체에 걸쳐 한국은 식민지 (1945년까지) · ()식민지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반식민지로의 발전의 특수한 특징들이 남한 독점자본의 형성과 그에 따른 제국주의 국가로의 전화를 가능케 해준 중요한 요인들이 되었다.

 

우리는 1996년에 이른바 "아시아 호랑이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분석한 광범위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특수한 조건들이 국내 시장을 지배하고 자본을 수출하기 시작한 독점자본 형성으로 귀착된 과정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이 연구 결과를 짧게 요약 정리하는 것으로 국한하고 넘어갈 것이다. 남한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스탈린주의 진영 간의 글로벌 대결 처음에는 1950-53년의 파멸적인 한국전쟁에서, 그리고 그 뒤의 냉전에서 에서 언제나 "최전방국가"였다. 이로 인해 사실상 미국이 남한을 점령하고 남한의 정치적·경제적 발전에 대한 통제권을 쥐는 것으로 결과하였다. 이 냉전의 특수한 조건들이 미 제국주의로 하여금 남한의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책에는 40% 정도 토지의 재분배를 가져온 실질적인 농지개혁도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이 농지개혁으로 인해, 자기 토지를 소유한 농민 수가 50%에서 94%로 늘어났다. 이것으로 광범위한 자영농 계급이 창출되면서 부르주아 보나파르트주의 체제의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1987년까지의 전 기간에 걸쳐 남한은 군사독재가 지배했다. 이러한 억압적 국가기구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잔혹한 초과착취를 위한 조건을 담보해주었다. 이와 관련하여 꼭두각시 독재정권들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재정적·경제적 지원 흐름이 상시적으로 존재했다. 예를 들어 1945년에서 1978년까지 미국은 6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독재정권들에게 쏟아 부었는데, 이는 같은 시기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대한 경제원조와 맞먹는 액수다!

 

이 모든 요인들을 통해 급속한 자본축적 과정을 위한 조건이 확보되었다. 1에서 보듯이 40년 동안의 급속한 고정자본 스톡 증가율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을 현격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1: 자본축적: 고정자본 스톡 증가율, 1960-2000(%)

 

발달한 공업국들 남한 중국 인도 브라질

 

1960년대 +5.0% +8.9% +1.9% +4.5% +5.8%

 

1970년대 +4.2% +14.6% +7.2% +4.1% +9.6%

 

1980년대 +3.1% +11.2% +8.4% +4.9% +4.1%

 

1990년대 +3.3% +9.6% +10.9% +6.2% +2.2%

 

 

 

나아가 경제발전에 국가가 개입하여 재벌로 알려진 막강한 대기업집단의 형성을 장려하였다. 재벌이라는 말은 부를 뜻하는 한국말 재()와 씨족을 뜻하는 벌()을 조합한 말이다. 이러한 국가 주도 자본집적 과정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현대적 산업의 창출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이들 재벌은 점점 더 국민경제 내에서 절대적 패권을 행사하는 강력한 독점자본으로 발전하였으며, 정치적으로도 부르주아 정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4년에는 10대 재벌의 생산 총액이 GNP15.1%만을 점했던 데 비해 1983년에 이르러서는 그 비중이 이미 65.2%로 급증했다. 재벌들이 자본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1992년에 한국은 순 자본 수출국이 되었다.

 

그리하여, 1996년에 발표한 이 연구에서 우리는 한국과 대만은 제국주의 국가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대만의 경우에는 아니라고 이 질문에 대답하며, 대만을 선진 반식민지 (advanced semi-colony)”라고 성격 규정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당시에 우리는 이렇게 썼다.

 

한국은 이미 한 걸음 앞서 있다 (대만과 비교할 때). 우리가 실제로 보여주었듯이, 고도의 독점화가 세계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지위를 한국에 허락해주고 있다. 우리는 한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이행 중에 있는 매우 선진적인 반식민지로 성격 규정한다. 왜 한국은 아직 제국주의가 아닌가? 자본수출이 상대적으로 늦게 본질적인 특징이 되었고 그 규모도 여전히 크지 않아서다. 우리는 재벌들이 두 가지 본질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다음 몇 년 안에 판가름 날 것으로 본다. 첫째, 대규모 부채를 줄일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둘째, 다음 몇 년 안에 글로벌 침체가 있을 것이다... 재벌들이 이러한 압력을 버텨내는 데 성공할지,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이다. 이것이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될지, 아니면 선진적이지만 종속적인 반식민지로 다시 빠져들지를 결정할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은 그리고 지역 전체도 1997/98년에 이른바 아시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독점자본은 이 위기에 뒤이은 과정에서 구조재편과 공고화에 성공했다.

 

요약하면, 냉전 최전방 국가로서의 남한의 성격에서 비롯한 일련의 요인들이 어우러져 내국 독점자본의 형성에 이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창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계속 이어진 친미 군사독재 정권들의 존재로서, 이것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엄청난 초과착취와 실질적인 농지개혁,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의 대대적인 정치적 지지와 재정·경제 원조, 국가자본주의적 조절·규제 등을 보장하는 담보물이 되었다. 2000년대에 와서 마침내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했다.

 

4. 고도로 산업화한 현대 자본주의국으로서의 한국

 

한국이 성장하여 고도로 산업화한 현대 자본주의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몇 가지 발전 요인들의 조합 때문이었다. 많은 지표들이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구 5100만의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같은 선도 국가들에 뒤이어 세계 상위 경제권 국가가 되었다. 오늘, 한국 경제는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크고 전 세계적으로는 열두 번째로 크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이미 스페인보다 높다. 한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1인당 국민소득이 1970OECD 평균의 6%에서 201789%로 증가한 사실로도 나타난다.

 

부문별 한국 경제의 구성은 서유럽 나라들의 구성과 유사하다. 농업 비중(2.2%)은 스페인(2.8%)보다 작다. 한국의 대규모 공업화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서유럽과 미국 등 대부분의 기존 제국주의 나라들의 탈공업화)를 고려할 때, 국민총생산에서 공업 비중(38.6%)은 일본(28%)보다 높고 서유럽과 미국 같은 기생적인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오직 중국(40.0%)만이 대적된다. (2 참조)

 

 

2. 한국의 경제활동 종류별 부가가치, 2016

농업 공업 서비스업

2.2% 38.6% 59.2%

 

한국에서 노동인력 고용 상황을 보더라도 비슷한 그림이 보인다. 농업에 고용된 노동인력 비율은 지난 수십 년간 급격히 감소해 현재는 4.8%에 불과하다. (3 참조). 이 비율은 스페인(4.1%)이나 오스트리아(4.2%)와 같은 제국주의 나라들에 비해 약간 높은 수준이다.

 

3. 한국의 경제활동별 고용, 2018

농업 공업 서비스업

4.8% 24.6% 70.6%

 

한국 독점체들의 강력한 지위를 반영하듯 한국은 상품무역에서 세계 6위 수출국이 되었다. 세계 상품무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3.1%)은 이미 프랑스나 영국, 이탈리아보다 크다. 유럽연합(EU) 내 교역을 제외한다면 한국은 이미 중국, 미국, EU, 일본에 이어 5위다.

 

한국의 수출은 GDP의 약 절반을 점하며 선박, 자동차, 정유, 액정 디스플레이 패널, 산업 기계, 휴대폰과 같은 제조업 및 하이테크 부문의 고부가가치 상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4 참조)

 

4. 한국의 최상위 수출 품목들, 2017

품목별 총 상품수출액 비율

 

반도체 17.1

선박 7.4

자동차 7.3

석유제품 6.1

평면 디스플레이 및 센서 4.8

자동차 부품 4.0

무선 통신장비 3.9

합성수지 3.6

평면압연철강 제품 3.2

컴퓨터 1.6

 

한국 현대화의 또 다른 지표는 인터넷 사용 인구의 높은 비율이다. 유엔의 최근 수치에 따르면, 2019년까지 전체 개인 95.1%가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이는 일본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러한 수치들 그 자체로는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들을 참조할 것), 이미 그 수치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대대적인 따라잡기 과정을 보여주는 강력한 지표를 이룬다.

 

 

5. 한국 독점자본: 국내시장의 지배

 

위에서 말했듯이, 독점자본의 형성이 제국주의의 본질적인 특징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닐지라도 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한줌의 독점체들 이른바 재벌 의 지배로 특징지어진다. 이들 독점기업은 다양한 업종에 걸쳐 수많은 자회사 (“계열사”)를 거느린 가족 소유 기업이다.

 

다음 수치는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점하고 있는 관제고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재벌의 전통적인 정의에 맞는 45개의 대기업집단이 있다. 상위 10대 재벌이 국내 전체 사업자산의 27%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재벌은 LG, 현대, SK, 롯데, 삼성이다. 이들 5대 재벌이 한국 주식시장 가치의 54%를 차지한다.

 

경제개혁연구소가 낸 재벌로의 경제력집중: 그 동태적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GDP 대비 30대 그룹 자산 비율은 100.3%로 나타났다. 한국 최대 재벌 삼성의 자산만 해도 GDP42%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른 연구도 나왔다. 또 다른 연구는 삼성그룹의 매출액이 한국 GDP의 약 20%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에 본사를 둔 기업 평가 웹사이트 CEO 스코어에 따르면, 한국의 10대 기업들이 2017년에 도합 6778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 GDP44.2%에 해당한다. 주도적 독점기업들의 비중이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에서보다 더 크다. 예를 들어, 같은 기간 일본에서는 최상위 기업들이 GDP24.6%를 점했고, 미국에서는 이 비율이 11.8%였다.

 

한국 최대 재벌 그룹들의 지배적 지위를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수치를 보자. <2018OECD 한국 경제조사>에 따르면 상위 30대 그룹에서 4대 그룹의 비중이 2011년에서 2017년 사이에 더 커졌다. 2017년에 오면 30대 그룹에서 삼성, 현대, SK, LG 4대 그룹이 자산 52.7%(+3.6%), 이윤 69.4%(+7.1%)를 점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장 중요한 5대 재벌이 삼성, 현대, SK 그룹, LG, 롯데다. 무선통신 및 반도체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인 삼성은, <<포브스>>지에 따르면 세계 12대 기업이다. 삼성 그룹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 걸쳐 32만 명 이상 (애플 123천명, 구글 88천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을 삼성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삼성은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3위의 자동차 제조업체이며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의 조선회사가 되었다. SK그룹도 다양한 사업 부문이 있는데 그 중 SK하이닉스는 세계 2위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다.

 

이미 언급했듯이, 재벌 기업은 재벌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 각 재벌은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회사들의 방대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지만, 복잡한 순환 출자 구조를 통해 한 가족의 단일 공동 경영·재무 관리 하에 통합되어 있다. 보통 한 사람의 총 회장 (재벌 총수)이 있는데 이 총수가 그룹 전체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다.

 

예를 들어 삼성은 이 회장 일가의 지배를 받는다. 공식적으로는, 이 회장 일가의 소유는 전체 그룹 주식의 1.67%에 불과하다. 그러나 상호출자 방식으로 지배적 지위를 보장 받는다. 다른 재벌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35대 그룹 (재벌)의 계열사 지분은 평균 43.6%에 달한다. 오너 일가는 실제 소유권이 4.4%에 불과한데도, 계열사 지분을 더해 50%에 가까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OECD 한국 경제조사> 최신호는 지난 10년 동안 내부 지분 (inside ownership), 즉 총수 일가와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이 증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 지분율은 1980년대 후반에서 2005년까지 40에서 50% 사이였지만 그 이후로 50에서 60%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 독점자본 주요 일가들은 지난 25년 동안 지배력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최근 발간된 보고서는 오너 일가의 재벌 지배를 다음과 같이 성격규정 하고 있다. "모든 재벌에서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것은 이러한 유형의 대기업집단의 주 특징이기도 한데 그룹 내 모든 중요한 직위는 가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능력본위로 정해지지 않는다. 권력은 보통 장남이나 선택된 후계자에게로 넘어간다."

 

더욱이 재벌들은 또한 전통적으로 국가기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재벌들의 성공은 보조금, 대출, 세제 특혜 등의 형태로 수십 년 동안의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레닌이 제국주의 독점체가 제국주의 국가기구와 하나로 합체되는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두고 표현한 그 국가독점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국이라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6. 한국 독점자본: 세계시장에서의 글로벌 플레이어

 

한국의 재벌들은 국내시장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 앞 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삼성, 현대 등은 자신들 사업 부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기업이다. 이것은 세계 최고 기업 순위 리스트에서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포춘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Fortune Global 500)에 따르면 한국은 3.2%의 점유율로 7위에 (6위인 영국보다 기업 수에서 단 하나 차이로) 올라 있다. (5 참조)

 

5. 글로벌 500대 기업 상위 10개국, 2019

순위 나라 기업 수 점유율 (%)

1 미국 121 24.2%

2 중국 119 23.8%

3 일본 52 10.4%

4 프랑스 31 6.2%

5 독일 29 5.8%

6 영국 17 3.4%

7 한국 16 3.2%

8 스위스 14 2.8%

9 캐나다 13 2.6%

10 네덜란드 12 2.4%

 

2017년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Forbes Global 2000 List)에서 한국은 프랑스와 독일보다 더 많은 기업 수(64)5위까지 올라 있다! (6 참조)

 

6. 국가별 세계 2000대 기업, 2003년 및 2017(Forbes Global 2000 List)

2003 2017

기업 수 점유율 기업 수 점유율

미국 776 38.8% 565 28.2%

중국 13 0.6% 263 13.1%

일본 331 16.5% 229 11.4%

영국 132 6.6% 91 4.5%

한국 55 2.7% 64 3.2%

프랑스 67 3.3% 59 2.9%

캐나다 50 2.5% 58 2.9%

인도 20 1.0% 58 2.9%

독일 64 3.2% 51 2.5%

세계 억만장자/슈퍼리치 순위를 보더라도 비슷한 그림이 나온다. 국제 컨설팅업체 캡제미니가 최근 발표한 <월드 부() 보고서 2018>에 따르면, 한국에 243천명의 이른바 고액순자산보유자 (high-net-worth individuals) [독점 부르주아지가 스스로를 성격규정 하는 가당찮은 범주들 중의 하나!]가 있고, 이는 세계에서 한국이 13번째로 많은 나라다. 또 다른 연례 보고서, 크레디트 스위스가 발행하는 <글로벌 부 보고서 2019>도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 달러 기준] 백만장자 수가 741천명이고, 세계 순위로는 14위다.

마지막으로 후룬 글로벌 부자 리스트 (胡润全球富豪榜) 최신호의 결과를 보자. 앞에서 언급한 기관들과는 달리 후룬연구소는 서방 제국주의 나라들이 아닌 새로운 제국주의 대국, 중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 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백만장자 순위에서 12위 일본보다 단 두 명 적은 13위로 올라 있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수치들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한국인 소유 독점체들이며, 이들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7. 한국 독점자본: 자본수출의 역할

위에서 설명했듯이, 제국주의 국가의 본질적인 특징은 독점의 형성 및 독점의 경제 지배뿐만 아니라 자본수출이다. 실제로 한국은 자본수출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이 여전히 반식민지 성격을 지녔던 시기에 한국은 무엇보다도 외국인 투자의 목적지였다. 그러나 한국 독점자본의 형성과 함께 이 과정은 역전되었다. 외국 자본이 계속해서 한국에 유입되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자본주의국에서 그렇듯이 동안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에 대한 외국인투자를 시작했다.

UNCTAD <세계 투자 보고서> 최신판의 수치들은 이 과정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3년과 2018년 사이에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연간 유출은 언제나 유입의 2-3배였다. (7 참조)

7. 한국의 FDI 흐름, 20132018(미화 백만 달러)

FDI 유입 FDI 유출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12,767 9,274 4,104 12,10 17,913 14,479 28,318 27,999 23,687 29,890 34,069 38,917


외국인 직접투자 누적 총액 수치를 보면, 2000년대 이래 한국이 반식민지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전화하는 과정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2000년에 FDI 유입 잔액이 유출 잔액보다 두 배 이상 (437억 달러 대 215억 달러)이었던 것이 2018년까지는 이 관계가 역전 된다 (2314억 달러 대 3867억 달러). (8 참조)

 

8. 한국의 FDI 잔액, 2000, 2010, 2018(미화 백만 달러)

FDI 유입 잔액 FDI 유출 잔액

2000 2010 2018 2000 2010 2018

43,738 135,500 231,409 21,497 144,032 387,591


한국 재벌들은 2000년대에 중국, 동유럽, 동남아시아, 인도 등지에 대규모 공장 (자동차, 철강, 정유, 전자 등)을 짓기 시작했다. 한국의 유출 FDI의 많은 부분이 제조업에 집중되었다. 재벌들의 이러한 투자는 현지 시장에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반식민지에 대한 투자의 경우에) 값싼 노동인력을 착취하고 그럼으로써 초과이윤을 뽑아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 중국은 한국 FDI의 가장 큰 목적지들이었다. 대미 투자 동기가 주로 이 거대한 시장에 한국의 자동차, 철강, 전자 생산업체들이 보다 용이하게 접근하기 위한 것인데 비해 대중 투자의 경우는 처음에 상황이 달랐다. 대중 FDI의 주된 동기는 처음에 값싼 노동력 이점을 이용하는 것에서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에는 중국 소비시장의 개발로 동기가 바뀌었다. 이 데이터는 비용 우위 달성에서 시장 모색으로 동기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전에는 대중 투자 중 값싼 노동력에 대한 투자 비중이 27.22%에 달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이 수치는 21.13%로 떨어졌다. 반면 현지시장 공략을 겨냥한 투자는 5.43%에서 40.57%로 크게 늘었다. 특히 현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투자 비율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체 투자의 52.89%였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 이점을 노린 투자 비중은 금융위기 이후 18.1%로 줄었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중국 자신의 변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1990년대 초 자본주의 복고 이후 시기에 중국은 다소 미발달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2000년대 말까지는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전화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점점 더 반식민지 나라들이 한국의 유출 FDI의 중요한 목적지가 되었다. 한국의 투자 흐름은 초기에 선진국들로, 특히 미국으로 많은 부분이 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상대적 저발전 나라들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동남아시아로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의 큰 초점 이동이 있었다. (9 참조)

 

 

 

 

 

9. 한국의 동남아시아 유출 FDI, 순 유출 (미화 백만 달러)

연도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

2001 62 302

2002 99 69

2003 177 372

2004 176 646

2005 168 338

2006 632 658

2007 1505 940

2008 1094 437

2009 782 1007

2010 1384 2321

2011 891 1661

2001-2011 6970 8147


베트남은 특히 중요한 한국의 외국인투자 [해외투자] 목적지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베트남은 한국의 4대 투자 목적지가 되었다. “베트남이 도이모이(Doi Moi) 이니셔티브를 통해 FDI에 문을 열고 한국 정부가 OFDI (유출 FDI)에 적극 나서면서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FDI2014년 말 현재 지난 23년간의 누적금액이 11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미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에서 일찌감치 한국 FDI에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었지만, 20155월에 한국-베트남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이 과정은 가속화되었다. 이 과정은 한국의 베트남 수출 증가와 병행되었다. 10에서는 베트남이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한국 수출의 세 번째로 큰 목적지가 되었음을 볼 수 있다.


10. 한국의 최고 수출 시장 - 나라별 수출액 백분율

 

20142015 2016 2017

중국 25.4 26.0 25.1 24.8

미국 12.3 13.3 13.4 12.0

베트남 3.9 5.3 6.6 8.3

홍콩 4.8 5.8 6.6 6.8

일본 5.6 4.9 4.9 4.7

호주 1.8 2.1 1.5 3.5

인도 2.2 2.3 2.3 2.6

대만 2.6 2.3 2.5 2.6

싱가포르 4.1 2.8 2.5 2.0

멕시코 1.9 2.1 2.0 1.9


또 다른 예는 아프리카에서 한국 독점자본의 비중이 커져가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한국 독점자본은 값싼 노동인력을 착취하고 그럼으로써 제국주의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있다.

 

요약하면, 한국 경제는 전화 과정을 거쳐 내국 독점자본의 형성을 가져왔는데, 이 독점자본은 국내시장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었다. 더욱이 한국 독점자본은 미국과 서유럽 같은 선진 자본주의 경제국들과 중국 같은 신흥 자본주의 경제국들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경제국들 같은 반식민지 나라들에도 성공적으로 침투하였다. 모든 시장에서 경쟁하는 강력한 독점자본의 형성으로 남한은 2000년대를 거치며 마침내 제국주의로 전화하였다.

 

 

 

III. 남한의 제국주의로의 전화에서 비롯하는 몇 가지 정치적 문제들에 대하여

 

 

8. 노동귀족의 대두와 남한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

 

1987년 이후 군사독재의 퇴장과 1989-91년 소련 및 동유럽에서 스탈린주의 지배의 붕괴가 남한 자본주의에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냈다. 1987년과 그 후 몇 년간의 결정적인 시기에 수많은 영웅적인 파업과 공장점거가 이어진 일련의 중요한 계급전투들이 있었다. 노동자계급은 특히 노동조합원 비율이 높은 대사업장들에서 많은 경제적 성과물을 쟁취했지만, 남한이 제국주의로 전화하면서 독점 부르주아지에게 막대한 초과이윤을 공급함에 따라 이로써 계급투쟁 격화를 최종적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맑스주의자들이 노동귀족으로 성격규정 하는 노동자계급 내 특권적 층이 제국주의로의 전화와 함께 생겨났다. 먼저 이 노동귀족 개념을 간략히 개괄하고 넘어가자. RCIT는 노동자계급이 동질적인 단위라기보다는 여러 겹으로, 다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임을 반복해서 지적해왔다. 광범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 노동자계급의 중·하층 과는 대조되는 상층이, 보다 특권적인 층이 존재한다. 맑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이 최상위 부분을 노동귀족이라고 부른다. 이 노동귀족은 일차적으로 더 나은 보수를 받는 숙련 노동자 부분들로 구성된 층이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 부분은 부르주아지가 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미끼로 매수한 부분이다. 제국주의 나라에서 이 층은 반식민지 나라와 비교해서 훨씬 더 많은 비율을 노동자계급 속에서 점한다.

 

제국주의 나라에서 노동귀족을 매수하여 노동자계급의 결속을 해칠 재원은 다름 아니라 독점 자본가들이 반식민지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을 (그리고 제국주의 대도시들로 이주해온 노동자들을) 초과착취 하여 획득한 초과이윤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독점자본은 이 초과이윤의 일부를 제국주의 중심부의 노동자계급 상층 부문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사용한다. 자본가들이 일차적으로 안정을 필요로 하는 곳은 국내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나라에서 노동조합과 개량주의 당을 주도하는 것이 노동관료 그 직접적 지지 기반인 노동귀족과 함께 . 이들 세력이 그와 같이 계급협조주의로 계급투쟁을 가라앉히고 계급투쟁에 대한 브레이크로 기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에 의해 매수된 노동귀족의 창출 및 그로 인한 노동자운동의 개량주의적 관료화는 한국에 특유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제국주의 시대의 시작 이래 존재하는 글로벌한 경향이다. 이 점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아니 일백년 전부터 혁명적 노동자운동이 강조해온 바다. 1919년 볼셰비키 당 8차 대회에서 채택한 강령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조류 [기회주의적 · 사회배외주의적 조류]가 만들어진 것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가 식민지 약소민족을 강탈하여 획득한 초과이윤으로 자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층을 특권적 위치로 상승시켜주고 그들을 매수하고 평화 시에 괜찮은 소부르주아적 생활조건을 보장해주고 이 층의 지도자들을 자신의 부관으로 임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도 19202차 대회의 주요 결의안 중 하나에서 제국주의 초과이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달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혁명적 노동계급 운동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이들 나라 자본가들이 식민지 보유와 금융자본에 의한 초과이윤 획득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크고 더 안정적인 노동귀족 노동자계급의 작은 소수를 이루는 부분 을 창출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윤 증가가 한국 독점 부르주아지를 강화시켜 소수의 노동귀족 상층을 매수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의 하층에 속하는 노동자 수가 상당히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여러 수치들들 통해 이러한 추이를 뚜렷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동자계급 내 분할의 경험적 증거를 ILO가 최근 발표한 연구 속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노동자의 하층 60%2017년 전체 노동 소득 가운데 단지 27.2%만을 차지한다. 이는 30.48%를 차지하는 상위 10분위 (상층 10%)의 소득보다 작은 것이다! 아래의 표 11에서 보듯이, 이러한 정도의 불평등은 일본과 독일 같은 주요 제국주의 나라들의 불평등 정도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11. 한국 · 일본 · 독일 · 미국의 노동소득 분배율, 2017(%)

10개 분위별 노동소득 분배율

 

1 2 3 4 5 6 7 8 9 10

 

한국 1,05 2,38 3,71 5,12 6,54 8,42 10,63 13,65 18,04 30,48

 

일본 1,10 2,53 3,94 5,42 6,89 8,79 11,09 14,13 18,47 27,64

 

독일 1,10 2,77 4,81 6,55 8,30 9,83 11,36 13,27 16,09 25,92

 

미국 1,41 3,04 4,28 5,46 6,70 8,12 9,78 12,14 15,95 33,12

 

임금 불평등 추이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전화 과정의 결과로 한국 노동자계급 내 질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한국 프롤레타리아트 내 소득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OECD의 연구에 따르면 1965-89년 기간에 소득분배 하위 20% 대비 상위 20%의 소득 비율은 국제평균치에 크게 못 미쳤다.

 

1980년대 후반 및 1990년대에 계급투쟁의 고양으로 임금 불평등은 심지어 줄어들었다. OECD 수치에 따르면 1984년에서 1994년 사이에 한국의 임금 격차는 국제적 추이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5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후 계급전투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패배하고 남한 제국주의가 부상한 결과로 이러한 추세는 급격히 역전되었다. 자본가계급은 잉여가치율을 높일 수 있었다. 또는 일단의 부르주아 IMF 경제학자들의 말로 옮기자면, 노동소득 증가율이 1990년 중반 이후 이윤에 비해 감소하였고, 그로 인해 노동소득 분배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5G20 회의를 위해 준비한 연구에 따르면, 1991년에서 2012년 사이에 한국의 조정 노동소득 분배율은 10% 하락하였다!.

 

이 같은 추이와 연동된 것이 남한 노동자계급 내 임금 격차의 대폭 확대, 즉 프롤레타리아트 내 증대되는 불평등이었다. 또 다른 IMF 경제학자들의 연구는 이렇게 보고한다. “1990-1997년 기간 동안 노동소득 증가율은 10% 이상으로 높았고 전 소득 분위에 걸쳐 상대적으로 균등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은 급격히 감소했고 소득 집단에 따라 불균등해졌다. 실제로 소득분배율 하위 10%의 노동자는 소득이 거의 증가하지 않은 반면 상위 10%의 노동자는 연간 약 6%의 성장을 경험했다.” 아래 표 12에서도 같은 추세가 나타난다. 그 결과로 한국은 OECD에서 두 번째로 임금격차가 큰 나라가 되었다.

 

12. 임금 불평등: 한국 임금 취득자 상위 10%와 하위 10% 간 소득 격차, 1980-2008

1980 1990 2000 2008

4.1 3.2 3.7 4.7

이러한 추이에서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비정규직 노동자 부문 (즉 기간제, 파트타임, 파견· 용역 노동자)의 창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8년 하반기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을 점하며, “시간당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2/3 수준을 받는다. 임시직 노동자의 숙련도가 상용직 핵심생산인구(prime age worker)의 숙련도에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회보장 및 이른바 사내 복지에 대한 접근권이 취약하기 때문에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13도 참조)

 

 

 

13.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 및 임금 비율, 2016

고용 인원

[전체] 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19627천명 6444천명 (32.8%)

 

정규직 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노동자 시간당 임금 (정규직 노동자 = 100)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100.0 65.4

특히 여성 노동자가 이러한 임금 불평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2016년 여성 평균 임금은 남성 평균보다 37% 낮았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크다. 이런 상황의 중요한 원인은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불균형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2016년 여성 피고용자의 41.1%가 비정규직으로, 남성 26.4%에 크게 대비된다.

 

임금 불평등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 간에도 존재한다. 2013년 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중위 임금의 3분의 2가 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거의 1/4에 달했는데 이는 OECD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한국 독점 부르주아지가 다시 군사독재를 불러들이지 않고 민주주의 반혁명을 통해 노동자 전위를 패퇴시킬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다름 아니라 한국이 제국주의로 전화함에 따라 한국 독점 부르주아지가 강화된 것에 있다. 한국 독점 부르주아지가 1987년 이후 성립된 제한적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폐지하지 않고서 노동자운동을 패퇴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9. 남한 제국주의의 정치적 역할과 그 제한적인 독자성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신흥 남한 제국주의는 역사적 특수성을 띠고 있다. 남한 제국주의는 강력한 경제적 지위에 있지만, 1945년 이래 미 제국주의의 지배적인 영향력에 의해 그 정치적 역할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미국은 한국에 수많은 군사기지를 세웠다 (현재는 폐쇄된 곳이 많긴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약 28,500명의 미군 병력과 함께 수백 대의 탱크와 공군이 주둔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소위 사드 미사일 포대를 한국에 배치했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정치적 지배를 마주하고 있다.

 

이른바 민족해방(NL)” 조류의 각 조직들은 미 제국주의의 이러한 지배적인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들어 한국을 제국주의로 성격규정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강조했듯이, 이러한 상황은 제국주의 국가에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일본에도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점령된 이후 비슷한 형국이 존재한다. 5만 명의 미군 병력과 함께 오키나와 미군기지, 그리고 일본 헌법의 강요된 평화주의적 성격은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의 제한적인 정치·군사적 자율성을 반영한다. 1990년까지 서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존재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나라들 (제국주의 나라들을 포함하여)은 경제적 · 정치군사적 구성이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자본주의 나라들은 불균등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경우에 부르주아지는 경제적 분야에서는 강력한 자본가계급으로 발전했지만, 정치·군사적으로는 더 강한 제국주의 강대국에 지금까지도 종속적인 지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공산당은 1945년 이래 오늘까지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부인해오면서 그 스탈린주의적 본질의 한 측면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데서 보여주었듯이, 일공은 미국의 지배적인 정치·군사적 역할을 들어 그 같은 터무니없는 부인을 정당화했다. 결국 그러한 부인은 "반제국주의"를 가장하여 내국 독점 부르주아지에게 사회제국주의적으로 투항하는 것, 오직 이러한 결말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더욱이 한국의 정치적 지위는 유의미한 변화를 겪고 있다. 2019년에 시작한 일본과의 무역전쟁은 남한 제국주의의 독자적인 정치적 역할이 커져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 한·일 무역전쟁은 미국에게는 아시아의 두 주요 동맹국이 연루되어 있으므로 확실히 이득 될 게 없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 지배의 쇠퇴로 인해 한국도, 일본도 모두 정치적 독자성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 측이 이니셔티브를 쥔 대일 무역전쟁은 제국주의 한국이 경제 열강만이 아니라 정치 열강으로서도 부상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강력한 증거다.

 

한국 지배계급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역사의 트라우마로 인한 시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능숙하게 악용하고 있다. 일본의 강제징용과 성노예 만행은 한국 인민의 기억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한국 부르주아지는 반일 배외주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러한 감정을 활용한다. 한국 부르주아지는 일본 라이벌들을 밀어내서 국내시장에서 더 큰 점유율을 획득하기 위해 (대중적인 일본 불매운동을 통해) 이러한 배외주의 캠페인을 이용한다. 또 부르주아지는 독자적인 정치 열강으로서의 한국 역할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도 이러한 감정과 캠페인을 이용한다.

 

또 다른 중요한 정치적 문제는 남북 관계, 특히 한반도 통일 문제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50-53년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분단으로 결과했다. 오랜 동안 미 제국주의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도발과 군사적 위협을 지속해왔다. 최근에 양측 간에 모종의 협상이 진행되어 왔지만 이것이 어떤 합의로 결과할지는 불분명하다.

명백히 한반도 통일에는 큰 정치적 장애물들이 전통적인 남북 정권 간 적대에서부터 미국·일본 같은 강대국들의 반대까지 놓여있다. 그러나 독일의 사례는 한국 독점 부르주아지에게 준 그 깊은 인상을 잃지 않고 있는데, 왜냐하면 1990년 독일 통일은 이 제국주의 국가를 강화시켜준 중요한 한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에서 자본주의 복고 과정의 시작은 이 나라에 새로운 부르주아지가 대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계급, 자본가계급은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에 합류하는 데 관심과 이해를 가질 수 있다. 당연히 새로운 북한 부르주아지는 가난한 반식민지 대신에 남측 제국주의자들의 하위 파트너가 되고자 할 것이다.

 

 

 

IV. 몇몇 반론에 대하여

10. 남한이 여전히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는 스탈린주의적 신화

 

이제 남한의 제국주의적 전화에 대한 우리의 분석을 강하게 거부하는 스탈린주의 민족해방조류의 입장을 다루어보자. 부분적으로, “민족해방조류는 현재 지속되고 있는 미 제국주의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들어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위에서 밝혔듯이, 그러한 주장은 한국 독점자본의 형성 및 세계시장에서의 그 강력한 지위를 전면 부인한다. 그러한 주장은 레닌이 제시한 바의 제국주의론 전체를 암묵적으로 거부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독점자본의 중심적 지위를 그러한 주장이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러한 주장은 그 지지자들을 매우 위험한 논리로 이끄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한국의 제국주의적 성격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 그리고 그 밖에 제국주의 강대국에 정치적으로 종속된 (나토 내에서 또는 유럽연합 내에서) 여러 작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성격도 역시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러한 입장은 곧바로 사회제국주의 진영으로 반제국주의를 가장하여 미국에 대항해 한국 제국주의나 일본 또는 독일 제국주의를 편드는 것으로 빠져든다.

 

스탈린주의 민족해방조류의 입장을 방어하는 또 다른 논거는 재벌이 사실상 한국의 독점자본이 아니라 미 제국주의 또는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이라는 주장이다. 흔히 이러한 입장은 별 증거도 없이 제출되고 있는데, 이 입장을 사실들로 입증시켜보려는 일부 강단학자들의 시도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서울대 교수 장경섭은 한국 경제에 관한 새로운 책에서 자본 자유화 과정이 대규모 외국인 (제국주의) 자본 유입을 가져왔고, 이것은 외국인 자본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한국 주요 기업과 은행의 많은 주식이 이미 IMF가 정한 바겐세일 조건 (명목주가 급락, 환율 하락, 충격요법식 고금리 환경에서)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각됐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한국 제조업체와 은행의 새로운 대주주로서 글로벌 금융기관들과 투자자들은 일반 한국 시민들로부터 거둬들일 세금으로 재정적 뒷받침을 받는, 한국 정부의 부활한 선제적 산업정책에 호의적으로 기울어 왔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노동소득을 억제하여 기업 수익의 지속적인 증가를 보장하는 정부 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측면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또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2006년부터 30대 재벌 대기업들에서의 외국인 소유 주식에 대한 몇몇 수치를 제시한다.

 

인도의 대학교수 지텐드라 우탐도 2014년에 발표한 책에서 비슷한 주장을 편다. 그는 한국 경제 상태를 자유주의적 금융 정책 하에서의 외국인 자본 지배라고 성격규정 하며,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자본주의적 정책이 폐기된 것을 안타까워한다.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헤게모니와 씨름하다가 한국의 국내 엘리트들은 지배적인 글로벌 지식 시스템에 정책적 자율성을 내맡겼다... 한국에서 운영된, 위기 이후의 자유주의 금융 정책은 기업 투자를 적절히 촉진하지 못하고 금융 중개자로서도 성과가 미흡했으며, 오히려 한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외국인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수치를 제시한다.

금융 정책의 변화로 인해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점유율은 1997년 말 14.6%에서 199921.9%, 200136.6%, 2004년 약 43%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비록 새롭게 부상한 글로벌 모순에 직면하여 2008년에는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외국인 자본은 한국에서 시장 지배자가 되었다. 은행업계의 외국인 자본 점유율은 199716.4%에서 200350.2%, 2007957.8%로 높아졌다. 2008년 말 외국인 지분율은 7개 시중은행 중 한국 정부가 소유한 우리은행을 유일한 예외로 한 채 6개 은행에서 50%를 넘었다.”

 

두 저자 모두 기본적으로 결론에서 틀렸다. 첫째, 그들은 한국 경제에서의 외국인 자본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물론, 1990년대 동안 남한 국가가 세계시장의 압력 하에 재벌들 및 재벌들과 금융시장의 관계를 재편한 것은 사실이다. 또 남한 국가는 외국인 자본에 국내시장을 개방했으며, 동시에 한국 독점자본가들이 해외시장에서 수출과 투자를 늘리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한국의 재벌과 은행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본의 점유율이 증가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외국인 자본 점유율은 전 세계 모든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실로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난 세계화의 일반적 특징이다.

 

다음 수치들은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6년 한국에서 총고정자본형성 (GFCF) 대비 유입 외국인직접투자 (FDI)2.6%를 기록했다. GDP 대비 유입 FDI 잔액은 13.1%에 달했다. 이들 수치를 다른 선진 제국주의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이들 나라에서 외국인 자본 비중은 단연코 한국보다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 참조)

 

14. 한국,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에서 유입 FDI, 2016

FDI 유입 (GFCF 대비 %) FDI 잔액 (GDP 대비 %)

 

한국 2.6% 13.1%

 

독일 1.4% 22.2%

 

스페인 7.6% 45.2%

 

영국 57.9% 45.5%

 

프랑스 5.4% 28.3%

세계화 시기에 한국 재벌들 대부분은 세계시장에서 다른 기업들과의 격화하는 경쟁에 더 잘 대처하기 위해 외국인 자본가들과의 동맹을 창출해냈다. 이것은 많은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난 과정이다. 르노-닛산-미츠비시 또는 피아트-크라이슬러 국제동맹은 많은 예 중의 일부일 뿐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외국인 자본이 실제로 경제와 재벌 그룹들을 지배하느냐 아니냐다. 우리가 위에서 각종 수치들을 가지고 보여주었듯이, 한국 경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재벌들은 대부분이 오너 일가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위에서 언급한 OECD 연구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내부 지분, 즉 총수 일가와 계열사가 보유한 주식을 통해 지배적 한국 독점자본가들이 외국인 주주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재벌 대기업들에 대한 지배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음을 보여준 연구 말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말부터 2005년까지 내부 지분율은 40-50% 사이였는데, 그 이후 50-60%로 증대했다. 실제로 서방 기업과 기관들은 한국 기업들의 투명성 결여에 대해 정기적으로 개탄한다! 한국 재벌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OECD 보고는 없다. 한 예를 보자. 무역과 투자 장벽은 한국의 GDP 대비 FDI 잔액이 201413%OECD 국가 중 밑에서 세 번째인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낮은 FDI 잔액은 명시적 장벽 외에도 비즈니스 환경을 비롯한 그 밖의 국내 규제를 반영하며, 따라서 규제개혁이야말로 한국에 더 많은 FDI를 유치하는 데 열쇠가 되고 있다.” 2년 뒤에 또 다른 OECD 보고서도 다시 개탄했다. “4대 그룹에서 창업자 일가의 소유지분이 평균 2%에 불과함에도 이들 그룹은 창업자 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총수 일가는 그룹 계열사에 대한 보유 주식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며, 기업 지배구조가 취약한 상황에서 계열사 주주들의 이익을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외이사제도 의무화 조항이 있지만,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는 드물다. 투명성의 결여는 한국 기업의 낮은 가격-수익률의 일 원인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부 맑스주의강단학자들이 한국 경제가 이른바 외국인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서방 제국주의의 대표자들은 한국 경제가 소수의 재벌총수 일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한국 경제학자 박형준이 보여주듯이, 지난 20년 동안 대부분 이득을 본 것은 외국인 자본이 아니라 한국의 재벌 오너 일가다. 이 저자에 따르면,

 

전체 상장기업의 배당금 총액은 200138000억 원에서 200714조 원으로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시적으로 배당금이 87000억 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꽤 빨리 반등했다. 2010년과 2011년 국내 증시 상장기업들은 주주들에게 13조원 이상의 배당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배당금 지급은 200112000억 원에서 200756000억 원으로 늘어나 총 배당금 지급액과 비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재벌 총수 일가는 누구보다도 배당금 지급이 급증한 덕을 봤다. 재벌 닷컴에 따르면, 재벌 총수 일가의 배당소득은 2001240억 원에서 20071580억 원으로 늘었고, 나아가 2011년에는 1720억 원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들은 외국인 자본에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화 과정에 합류한 것이 최종적으로 한국 독점자본의 종속 과정이 아니라 강화 과정으로 결과하였음을 반영하는 수치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지배적 자본가들이 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반대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장경섭과 지텐드라 우탐은 외국인 자본의 역할을 극도로 과대평가한다. 한국 경제학자 성태윤과 김도연이 발표한 한 연구는 1996년에서 2015년 사이에 재벌 상장 제조업체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9%에서 15%로 증가한 반면, ()재벌 상장 제조업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기본적으로 5% 수준에서 정체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재벌 기업들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백한 지배적 지위에 있는 것은 여전히 내국인 재벌총수 일가다.

 

요약하면, 1990년대 이래 자본 자유화와 세계화 시기는 한국 시장을 외국인 자본에 개방한 것과 동시에 한국 자본에 의한 해외투자가 대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결과하였다. 또 한국 독점체와 외국 독점체 간의 동맹 창출로 결과하기도 했다. 요컨대 이 과정은 한국을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에 종속된 반식민지 나라로 묶어두는 것으로 결과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한국 자본가들의 지위 강화와 한국의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전화로 결과하였다.

 

 

11. ()제국주의론의 오류

 

남한에 대한 계급적 성격규정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또 다른 예는 <노동자 연대>라는 이름의 신문을 발행하는 한국 조직 다함께의 아제국주의론이다. 이 다함께와 같은 입장에 있는 국제사회주의경향(IST)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제국주의 문제에서 사이비 맑스주의적, 중도주의적 방법을 따르며 레닌주의적 제국주의 이론을 거부한다.

 

SWP/IST의 새로운 제국주의 정의에서 핵심 요소는 아제국주의론의 옹호다. 이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960년대에 브라질 사회주의자 루이 마우로 마리니다. 이 이론은 세계를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제국주의 나라와 ()식민지 나라로 구분하는 레닌의 방법을 거부하며, 3의 범주의 나라들 (“아제국주의나라들)이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미 다른 곳에서 이 이론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비판을 제시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갈 것이다.

 

아제국주의론의 근본적인 방법론적 결함은 착취·억압 관계를 그 분석의 중심에 놓는 데 실패하고 있는 데 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이 중심 문제 맑스주의자들에게 중심적인 를 서술적, 절충적 방법으로 대체하여 나라들을 후진국”, “중진국”, “선진국으로 각각 성격규정 한다. 또는 보다 큰 착취국과 보다 작은 착취국이라는 식의 질적 구분을 도입하여 이 양자 간의 기본적인 동일성을 흐리게 한다.

 

이 이론의 파산은 구체적으로 오늘날의 세계에 적용할 때 특히 분명해진다. 이 이론의 많은 옹호자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그와 같은 아제국주의국가로 그릇되게 성격규정 하고, 그리하여 중·러가 제국주의 열강임을, 즉 그들의 라이벌들인 미국이나 서유럽이나 일본과 대등한 제국주의 강대국임을 부정한다. 따라서 이 이론은 사회주의자들을 아제국주의진영 (즉 중·)을 편드는 방향으로 오도함으로써 결국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사회애국주의적 투항과 다를 바 없는 결과로 빠져버린다.

 

SWP의 대표적 이론가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IST는 맑스주의의 그러한 속류화가 어떤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생생한 본보기다. 캘리니코스는 1991년에 다음과 같은 나라들을 아제국주의나라들로 성격규정 했다. “이스라엘, 이란,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터키... 인도, 베트남, 남아공, 나이지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30년 뒤에도 그가 이 잡탕 목록에 계속해서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도 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클리프 파 SWP/IST는 이른바 아제국주의나라가 제국주의 강대국의 침공에 직면했을 때 이 나라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기 위해 이 얼토당토 않는 아제국주의론을 사용한 바 있다. 1982년에 말비나스 전쟁에서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공격했을 때의 이야기다. IST가 그들의 중립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 식의 아제국주의 버전을 사용한 때는, 아르헨티나를 편들고 영국의 패배를 내거는 것이 반제국주의적 맑스주의자들의 실제 의무였던 때였다. 그러나 캘리니코스와 IST는 정반대를 주장했다. 이 전쟁은 반()식민 투쟁도, 피억압 민족과 억압 민족 간의 투쟁도 아니다. 다투는 양측은, 하나는 지역적· 대륙적 제국주의 특징을 가진 신흥 자본주의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뚜렷한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세력인 기존의 오래된 제국주의 열강이다. 여기에는 진보적 진영도, 반동적 진영도 없다.”

 

간단히 말해서 아제국주의론은 쓸모없고 위험한 이론이다. 변증법적이고 계급 지향적인 맑스주의 개념과는 달리, 아제국주의론은 오히려 앵글로색슨 식 엉금엉금 경험주의”(데보린)의 결함을 고수하는 접근법이다.

 

 

 

 

V. 반제국주의 강령과 혁명적 전술

 

 

12.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남한에 대한 우리의 분석으로부터 도출되는 강령적 · 전술적 결론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겠다. 두루 알다시피, 제국주의 나라 내에서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맑스주의적 강령은 패전주의, 또는 보다 정확하게는 혁명적 패전주의로 알려져 있다. 이 강령을 간단한 정식으로 요약한다면 이러하다. i) 개개의 그리고 모든 제국주의 국가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지지도 거부한다. ii) 이들 제국주의 국가 중 그 어디든 그에 대항하는 모든 해방투쟁을 지지한다. iii) 모든 나라에서 제국주의 지배계급에게 패배를 안길 수 있도록 계급투쟁을 촉진하기 위해 모든 국내적 위기와 난국을 이용한다. RCIT는 이미 이 문제에 관한 수많은 책자와 논설을 발표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한 요약정리로 국한하겠다.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혁명적 패전주의에 관한 테제>에서 이 강령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분쟁·충돌 시에 맑스주의자들은 전 세계의 노동자·인민 조직들에게 단호히 국제 노동자계급 연대의 원칙을 기초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그들이 양쪽 어느 진영도 지지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상대방 제국주의 진영뿐만 아니라 자국지배계급의 편에 서는 것 또한 거부해야 한다.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타도하라! 사회주의자는 지배계급의 그 어떤 배외주의적 선전도 전면 거부한다. 사회주의자는 자국지배계급을 지지하지 않으며, 비타협적인 계급투쟁을 제창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칼 리프크네히트가 제창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유명한 구호를 받아 안아).

 

전쟁 시에 이 전략은, 1914년에 레닌과 볼셰비키 당이 정식화한 바,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전쟁 조건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쟁취 투쟁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같은 정신으로 우리는 무역전쟁을 국내의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정치적 계급투쟁으로 전화할 것을 제창한다. 이 같은 강령이야말로 세계의 노동자계급을 국제주의적 기초 위에서 통일 단결시키는 단 하나의 길이다. 애국주의적단결로 노동자들을 자국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및 노동자운동 내 이들 부르주아지의 시종들과 한 데 묶어놓고 있는 사슬을 깨는 단 하나의 길이다.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은 단지 전쟁이 발발해야만 유효성을 가지기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그 때에야 비로소 그 강령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한다면, 이미 늦을 것이다), 지금부터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RCIT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제국주의 국가 간 분쟁에서 다음과 같은 전술을 배치할 것을 촉구한다.

i) 사회주의자들은 한 나라 인민의 다른 나라 인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적 배외주의에 단호히 반대한다. 이 같은 국수주의는 노동 인민의 의식을 타락 오염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그 어떤 형태의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 강대국 지지에 대해서도 단호한 반대 투쟁을 펼쳐야 한다. 그 강대국이 자국제국주의 부르주아지든, 외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든.

ii) 제국주의 경쟁국에 대한 모든 종류의 경제제재 및 무역전쟁 조치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다.

iii)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강대국 간 군사주의와 군비경쟁과 전쟁에 반대하여 투쟁해야 한다.

iv) 노동계급 조직들이 의회 기구에 대표자를 두고 있는 나라에서는 이 같은 일체의 배외주의적 조치들에 반대투표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다. 그러나 결정적 계급투쟁 영역은 의회가 아니라 공장·직장을 비롯하여 지역, 학교·대학, 병영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선전물을 배포하고 계급투쟁적 행동(시위, 총파업으로 나아가는 파업, 항쟁·봉기 등)을 선동해야 하는 곳은 여기다.

v) 분쟁에 있는 제국주의 나라들 각각에서 혁명가들은 국경을 가로질러 사회주의자들, 노동조합, 그리고 그 밖의 노동자·인민 대중조직들의 공동 성명과 공동 활동을 제창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들은 구체적인 국제적 노동자계급 연대의 강력한 시그널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레닌이 발전시킨, 그리고 이후 초기 코민테른과 이어서 트로츠키의 제4 인터내셔널이 옹호한 바의 그 강령이다. 레닌의 접근법에 깔려 있는 핵심 사상은 혁명가들이 계급투쟁 방법을 통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촉진하고 국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타도를 위해 전쟁 또는 기타 분쟁 이 야기한 위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로 전쟁에서 국 정부의 패배를 위한 분명한 입장이 나온다. “혁명적 계급은 반동적인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자명한 공리다. 의식적인 사회배외주의자 도당이나 그들의 영혼 없는 시종들만 이 공리와 다툰다.” 이러한 접근법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볼셰비키의 중심 슬로건은 내란이었다. “현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단 하나의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슬로건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은 전쟁 시에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와 싸우는 전쟁 시에만이 아니라 평화 시에도 기본 강령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엥겔스와 레닌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모든 군사적 충돌의 핵심을 요약한 19세기 초 프로이센 군사 이론가 클라우제비츠를 즐겨 인용하곤 했다.

 

이 말을 레닌은 다음과 같이 옮겼다. 전쟁과 관련하여, 부르주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플레하노프가 그리도 파렴치하게 왜곡시킨 변증법의 근본 명제는 전쟁은 단지 다른 (즉 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사의 가장 위대한 저술가 중 한 사람인 클라우제비츠의 명제이다. (그의 사상은 헤겔로부터 자양분을 공급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입장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어떠한 전쟁도 주어진 시기에 관련 강대국들의 그리고 이들 나라 내부의 각 계급들의 정치의 계속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

 

이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전쟁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접근법은 계급들 간의 투쟁의 그 밖의 측면들에 대한 접근법과 다르지 않으며 또 다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 정치는 전쟁 시에나 평화 시에나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계급 ( 및 그 분파들)으로부터 계급 독자성을 방어하는 데 맞추어진다. 또 전쟁 시에나 평화 시에나 자본가계급을 타격, 약화시키고 나아가 타도하는 투쟁에 맞추어진다.

 

레닌은 전쟁 시에 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근본적으로 동일한 계급투쟁 원칙들을 지적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 모든 전쟁은 그것을 낳는 정치체제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해당 국가가, 그 국가 내의 해당 계급이 전쟁 전 오랜 시간 동안 추구한 정치는 필연적으로 전쟁 중에도 그 동일한 계급에 의해 단지 행동의 형태가 달라질 뿐 계속되게 마련이다.”

 

 

13. 오늘 남한에서 반제국주의적 임무

 

이러한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은 현 시기 남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혁명가들은 더 이상 남한을 다른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억압 받는 반식민지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맞았지만, 10년도 더 전부터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남한의 혁명가들이 미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 제국주의 열강과의 충돌 시에 자국을 방어하는 것이 의무였지만, 이제 더 이상 유효타당하지 않다.

 

오늘, 남한의 혁명가들은 주적은 국내에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한에서 맑스주의자들이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남한과 같은 제국주의 나라에서 민족해방이란 내국 제국주의 독점 부르주아지에 대한 사회애국주의적 지지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한국의 혁명가들이 국 정부의 배외주의적 대일(對日) 무역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의 혁명가들은 경제제재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소비자 보이콧 캠페인도 거부해야 한다. 당연히,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제재에 반대하는 것도 똑같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반동적 캠페인은 인민대중을 조종하고 종속시키려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할 뿐임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명가들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의 국제적 통일단결을 요구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역전쟁은 반일 배외주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대중적 감정을 이용하는 한국 부르주아지의 이해에 봉사할 뿐임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일본 라이벌들을 밀어내고 국내시장에서 더 큰 점유권을 획득하기 위해 그러한 캠페인을 이용한다. 또 한국 부르주아지는 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제국주의 열강으로서 한국의 역할 증대를 갈구한다.

 

이것이 혁명가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이 자행한 강제징용과 성노예 만행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한국 시민들 ( 및 그들의 가족)의 정당한 우려를 무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반대로 혁명가들은 일본 기업과 일본 국가에 대한 그들의 배상 요구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전쟁범죄로 인한 한국인 희생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위한 투쟁은 이들 희생자와 가족에게 배상하는 것으로 되어야지, 재벌에게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귀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혁명가들이 대중적, 선동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혁명가들은 불매 캠페인이 피해자·희생자 한국 시민의 이익이 아니라, 삼성, LG, 롯데의 이익에 봉사할 뿐임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한 캠페인을 통해서 일본 라이벌들을 밀어내고 더 큰 시장 점유율을 획득할 수 있는 재벌들의 이익 말이다.

 

요컨대 현재 일본과의 분쟁에서 한국 혁명가들의 임무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일 제국주의 무역전쟁 타도! 배외주의 반대! 보이콧 캠페인 반대! ·일 노동자의 국제주의적 통일단결! 무역전쟁을 계급전쟁으로!

 

또 혁명가들은 한·일 제국주의 양측의 독도/다케시마 영유권 분쟁에서 양측 제국주의 모두에 반대해야 한다. 여기서도 지배계급의 영유권 주장은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자신들 국가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데 복무하는 것일 뿐이다.

 

남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다고 해서 남한에서 우월적인 정치·군사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미 제국주의와 싸워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이 점은 특히 미군기지와 28,500명의 미 주둔군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현실 관련성을 갖는다. 중국을 겨냥한 사드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도 쟁점이다. 혁명가들은 다음을 요구해야 한다. 주한미군 전원 철수! 미군기지 해체! 사드 배치 반대!

 

나아가 미 제국주의를 비롯한 그 밖의 제국주의 열강의 도발·공격에 대항하는 북한 방어도 혁명가들의 중요한 임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북한에 대한 제재 (대북 제재)에 반대하며 전쟁 시에 북한의 적의 군사적 패배를 요구한다. 당연히 이러한 방어는 평양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적 독재에 대한 단호한 반대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술은 한반도의 혁명적 통일 전략의 일부이며, 남한 부르주아지와 함께 북한 스탈린주의-자본가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투쟁의 일부다.

 

끝으로, 남한 독점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은 개량주의 세력 및 노조관료 지도부의 악영향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요구한다. 반일 배외주의 캠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데서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듯이 이들 지도부들은 사회애국주의 강령을 옹호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지배계급이 성공적으로 그 지배를 지속해온 것은 그들 자신의 내적 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개량주의 노동관료로부터 받는 지지 때문이라는 것을 되풀이해서 강조해왔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 공산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의 역사적인 지도자 제임스 캐넌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본주의의 힘은 자본주의 자체나 자본주의 제도들에 있지 않다. 자본주의가 살아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가 노동자 조직들 속에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오직 그 때문이다. 지금 보듯이, 러시아 혁명과 그 여파로부터 우리가 배운 바로 볼 때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열에 아홉은 노동자 조직들 당을 포함하여 속의 부르주아 영향력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이와 같이 이들 개량주의 · 중도주의 세력이 국제 노동자계급의 해방투쟁에 가로놓인 장애물이라는 것은 언제나 맑스주의자들의 견해였다. 따라서 노동자 전위를 일관된 반제국주의 강령 쪽으로 전취하는 투쟁은, 사회제국주의 · 사회평화주의 세력들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정력적인 투쟁 없이는 전진할 수 없다. 볼셰비키의 다음과 같은 선언 1919년 강령 속에서 표명한 은 지금도 완전히 유효 타당하다.

 

원칙의 문제에서 단호한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공식 사민당 · 사회당 지도부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적 왜곡에 대항하여 무자비한 투쟁이 수행되지 않는다면, 이들 조건은 실현될 수 없다. 그러한 왜곡은 한편으론, 말로는 사회주의를 공언하지만 실천에서는 배외주의적인 기회주의적 · 사회배외주의적 경향으로서, 일반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1914-1918년의 제국주의 전쟁 중에는 탐욕스런 조국 이익의 방어를 은폐한다... 다른 한편으로 중도주의운동도 사회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적 왜곡이다. 이 운동도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발견된다. 이 중도주의 운동은 사회배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를 동요하며, 사회배외주의자와의 연합을 내걸고 파산한 제2인터내셔널을 되살려내고자 애쓴다.”

남한의 혁명가들은 스탈린주의 민족해방조류를 노동운동 내 남한 제국주의의 사회애국주의적 하수인 [남한 제국주의가 노동운동에 심어놓은 사회애국주의적 프락치]이라고 비난한다. 이들 스탈린주의자들은 반제국주의를 가장하여 독점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봉사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의 많은 스탈린주의 당들이 걷고 있는 배반 행각을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NL 사회제국주의는 맞은편에 일본판 스탈린주의적 사회제국주의를 두고 있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본공산당은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1945년 이래 오늘까지 부정하고 있다. 일공은 미국의 지배적인 정치·군사적 역할 때문에 일본은 제국주의 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공은 NL 사회애국주의자들이 남한에 대해 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방법을 일본에 적용한다. 일공은 미국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 종속을 들어 제국주의 모국에 대한 지지를 변명한다. 남한의 노동자 전위는 이러한 사회배외주의적 영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NL 사회애국주의 타도!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적 통일 단결 만세!

 

남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동·서의 모든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하는 세계적 차원의 투쟁의 뗄 수 없는 일부이며,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국제적 투쟁의 일부다. 이 투쟁은 모든 진정한 혁명가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남한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통일 단결시킴으로써만 비로소 수행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RCIT가 모든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에게 혁명적 세계당 전 세계적인 제국주의 타도와 억압·착취 없는 사회주의 사회 구축을 위해 일관되게 싸우는 당 건설 투쟁에 우리와 함께 나설 것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러한 세계당 건설은 무엇보다도 먼저, ‘국 독점 부르주아지 또는 다른 어느 나라 독점 부르주아지에 영합하는 모든 사회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을 요구한다. 이러한 세계당은 모든 제국주의 열강 기존 제국주의 강대국들인 미국·EU·일본과 새로운 제국주의 강대국들 중국·러시아 모두 에 대항하는 투쟁에 기초한, 그리고 강대국 또는 강대국의 반동적 마름 정권에 대항하는 노동자 · 피억압 인민의 모든 해방투쟁을 지지하는 강령을 필요로 한다.

 

 

보론: 역사적 유추 - 1891년과 1914년에 독일에서 맑스주의적 전술

 

교훈적인 역사적 유추로 이 문서를 끝맺겠다. 우리는 한국의 많은 진지한 진보 활동가들이 한국의 피억압 민족으로서의 긴 역사 먼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그 다음엔 미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당한 를 염두하여 국 국가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인정하길 꺼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세기 전에 독일의 맑스주의자들이 직면했던 도전 과제들을 상기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19세기의 후반부에 맑스와 엥겔스는 몇몇 가능한 또는 실제 일어난 전쟁에서 독일 편을 드는 것에 찬성하는 주장을 폈다. 심지어 1891년 시점까지도 엥겔스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있을 수 있는 침공에 대항하여 독일을 방어할 것을 요구했다. 후에 이 진술들은 악용되는데, 1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 다수파가 자신들의 배반적인 사회애국주의 · 사회평화주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1890년대 초부터의 엥겔스의 진술들은 맑스주의자들 사이에 일부 혼동을 야기했다. 그러나 레닌과 볼셰비키는 독일 사회민주의자들의 엥겔스 인용은 조금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차 세계대전 중 볼셰비키의 핵심 저작인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레닌과 지노비에프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러시아의 사회배외주의자들 (플레하노프를 필두로 한)1870년 전쟁 당시 마르크스의 전술을 인용하고 있다. 또한 독일의 사회배외주의자들(렌쉬와 다비트 및 그 일파들 같은)은 러시아와 프랑스에 대항하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조국을 방위하는 것이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임무가 될 것이라는 엥겔스의 1891년 진술을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인용은 부르주아지와 기회주의자들을 위해 마르크스 · 엥겔스의 견해를 터무니없이 왜곡한 것이다.”

 

이것이 왜곡인 이유는 국제정세의 성격이, 그리고 그에 따라 독일을 비롯한 그 밖의 열강들의 계급적 성격도 1891년에서 1914년 사이에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임을 레닌과 지노비에프는 설명했다. 전쟁 기간 동안 레닌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던 지노비에프는 그의 책 <<전쟁과 사회주의의 위기>>에서 이 몇 년 동안에 역사적 시기가 바뀌었고, 따라서 혁명적 전술도 바뀌어야 했음을 이해하는 것이 맑스주의자들에게 필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1893]에는 차리즘이 주적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내셔널 전체가 차리즘 반대!’ 슬로건 하에 통일될 수 있었다. 1907, 1912, 1914년에는 이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이제 인터내셔널의 슬로건은 차리즘 반대만이 아니라, 특히 제국주의 반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레닌도 이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또 한 사람의 지도적 볼셰비키 이네싸 아르망에게 보낸 편지에서 레닌은 “1891년의 국제정세와 1914년의 국제정세를 동일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둘을 비교하는 것조차도 비역사성의 극치입니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많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이십여 년의 기간 사이에 정세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을 이해하길 거부했다. 자국이 1891년에는 제국주의가 아니었지만, 1907년과 1914년에는 그러한 제국주의 열강이 된 것이다. 따라서 1890년대 초에는 자국을 방어하는 것이 정당했지만, 20세기 초에는 더 이상 같은 정세가 아니었다. 실제로 1891년에는 혁명적이었던 것이 1907년과 1914년에는 반혁명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남한의 혁명가들도 비슷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20세기 동안에는 혁명가들이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그들의 모국을 방어하는 것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의무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늘, 그러한 방어는 남한 독점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제국주의 국가를 지지하는 것과 같아진다. 달리 말하면, 1990년에는 아직 정당했던 것이 2010년에는 반혁명적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레닌은 1917년에 맑스주의자들은 낡은 정식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진술은 오늘 더 유효타당하다